새 사람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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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 금요 찬양예배에 김기업 목사님께서 귀한 말씀을 전해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 본문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절-24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렇습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어떻게 심령이 새롭게 되었습니까? 내가 결심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주인이었고, 내가 주인공이었습니다. 내 의지가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의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삶도 새 사람을 입은 것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놀라운 일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가져오는 결과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삶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고 다르게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에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예수 믿기 전과 믿은 후가 없다고 생각하여 아무런 차이가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이 나의 주인이 되었음을 마음으로 고백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은 반드시 삶을 다시 보게 합니다. 결코 이전대로 살 수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여전히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당연시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늘 생각하며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결코 무기력해지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됩니다. 사단 마귀는 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뜻하신 길로 가는 것을 계속해서 가로막을 것입니다.
때로는 사탕발림으로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잘 했어. 그렇게만 해도 충분하지.
때로는 위협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 네 인생은 너의 것. 네가 판단해. 네가 삶을 쟁취해. 네가 삶을 주도하는 것이 인생이야. 그것이 행복이야.
때로는 타협하게도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 너도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3:14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나 그 달음질은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가십니다. 그가 달려갈 힘을 주십니다. 그 분을 의지하여 인내로서 달려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새 사람을 입고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생각해보겠습니다.
25절

먼저는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우선적으로 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속이지 말고 진실만을 서로에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장하거나 축소하는데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한 일은 과장합니다. “내가 군대에서 축구할 때에 날아다녔어. 축구할 때마다 골을 3골 씩은 넣었지” 거짓말입니다. 많이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이 한 좋은 일은 축소합니다. “그 사람이 3골씩 넣었다고 아니 맨날 골 앞에만 앉아 있다가 줏어먹기만 했지.”
반대로, 남의 허물은 과장합니다.
난 스시가 싫어라고 하면 일본사람을 싫어한다고 소문이 납니다.
자신의 허물은 축소합니다.
내가 거짓말 한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내 평생에 거짓말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이렇게 우리는 거짓말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제가 런닝맨을 즐겨 보다가 안보기 시작한 이유가 있습니다. 너무 속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웃음 거리가 될 수는 있지만, 속임수를 너무 희화시켜서 속여도 목적만 달성하면 괜찮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진실을 알면서 속이는 것을 통해서 약간의 웃음을 주는 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런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말주변이 없습니다. 진실을 모두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일상에서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말하고 가르치고 배우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지요.
“진리가 무엇이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참된 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또 성경이 바로 예수님을 가르치고 증언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이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징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함께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보다는 세상적인 잡다한 이야기만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세상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은 따분하게 생각하고, 세상 일을 나누는 것만을 즐겁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라는 것은 우리 눈에 진리처럼 보여도 항상 거기에는 과장과 축소를 통한여 거짓이 담겨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만날 때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여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를 그렇게 살아보면 좋겠습니다. 지체들과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읽은 성경 중에 이렇게 은혜로운 말씀이 있었어. 내가 오늘 큐티를 하면서 이런 도전이 있었어.
혹은 설교를 들으면서 찬양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이런 것들이었어.
우리의 대화의 주제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나눔이 되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무엇을 보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시켜서 판단하는 훈련들을 해가시기 바랍니다.

새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1.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편에 설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2. 고상하고 아름답다 진리편에 서는 일 진리 위해 억압받고 명예 이익 잃어도 비겁한 자 물러서나 용감한 자 굳세게 낙심한 자 돌아오는 그 날까지 서리라 3. 순교자의 빛을 따라 주의 뒤를 좇아서 십자가를 등에 지고 앞만 향해 가리라 새 시대는 새 사명을 우리에게 주나니 진리따라 사는 자는 전진하리 언제나 4.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 진리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도 당하리 우리 가는 그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함께 계셔 항상 지켜주시리 아멘
<기도 제목>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참, 진리 편에 서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복음 전파, 진리 전파의 일에 더욱 힘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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