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
Notes
Transcript
언어와 문화
언어와 문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참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How are you? 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인삿말로 쓰이는 건데, 너 기분이 어때? 라고 묻는 말이죠. 그럼 대체로 I’m fine 나 기분 좋아, 괜찮아 라고 답변하는 것이 흔한 인삿말입니다. 저는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이 기분을 물어보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보통 식당같은데 가면 그냥 바로 주문하고 주문 받고 끝! 하면 되는데, 식당을 가든 편의점을 가든 마트를 가든 이 “기분이 어때?”라는 말로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거에요.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사실 한국에도 상대방의 기분을 묻는 말이 있더라구요. 물론 안녕하세요 라는 말 자체가 안녕하시냐고 안부를 묻는 말이긴 하지만, 거기다가 대고 예 안녕합니다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한국인은 상대방의 기분을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습니다. 한국에서는 식사, 밥을 먹는 행위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나이드신 분들에게 식사 한 번 걸렀다가는 아주 큰일이 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이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고 할 지라도 사람으로서 어느정도 통하는 것이 있구나, 세상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은 면이 있구나 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삶의 양식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공통된 무엇인가를 언어를 배우다 보면 많이 찾을 수 있는데요,
세상의 언어는 원래 하나
세상의 언어는 원래 하나
오늘 본문말씀인 창세기 11장은 그런 언어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잘 아시는 바벨탐에 대한 내용이죠. 1절에서도 보시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 사람들의 말이 전부 하나였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지난 주에 저희가 노아의 자손들의 족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과 나라들로 노아의 자손들을 뿔뿔이 흩으신 모습을 보았는데요, 당연하게도 그 시작은 같은 언어와 같은 민족에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근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될까요? 사람들이 한 언어로 소통하면 더 편할 것 같은데, 제가 미국 유학가려고 고생고생해서 영어 공부 안해도 됐을 것 같은데, 왜 바벨탑 이야기의 시작이 언어가 하나였다라고 시작할까요?
언어가 하나인게 아니라 그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언어가 하나인건 괜찮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말이 하나인 것으로 인해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고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그런데 5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은 결국 사람들이 아무리 높은 탑을 쌓고 하나님께 닿으려고 해봤자, 진짜 하나님의 영역에는 결국 닿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 탑을 보시기 위해서는 내려와야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탑 건설을 걱정하시는데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한 족속이고 언어가 하나이므로 이런 일을 시작했다, 이 후로는 이 일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어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래서 실제로 사람들은 그 도시, 그 탑을 건설하기를 멈추게 되었구요,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끝내는 이 바벨이라고 불리는 곳에서부터 뿔뿔이 흩어졌다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가 되는 것이 혼돈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혼돈이다
이 말씀을 읽다보면 참 의문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는 부분인데요, 제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에는 항상 하나님의 창조는 질서를 세우는 창조다,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바로세우시는 창조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오히려 질서에서 혼돈으로 역행하는 것 같아요. 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흩어버리셨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렇지요? 오늘날에도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혼잡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당장 우리나라 안에만 해도 경상도 사람들이 사투리 하는 걸 보면 막 서로 싸우는 것 같은데, 경상도 사람한테 “왜 그렇게 화내고 싸우세요?”라고 물어보면 안 싸웠대요. 반대로 충청도 사람이랑 대화해서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아 대화를 잘 마쳤구나”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서 보면 화가 났었대요. 이 두 사람 붙여보면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답답해 할 겁니다.
당장 우리나라 안에서만 해도 서로 말이 다르고 지역마다 문화가 달라서 서로 지역감정 가지고 싸우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혼돈을 원하신 걸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먼저 9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사람들이 탑을 쌓던 그곳을 바벨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하는데요, 이 바벨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이스라엘이 70년간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과 같은 히브리어를 쓰는 같은 지역입니다.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는 잘 아시다 시피 앗수르 이후에 부흥해서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아주 큰 제국이었어요. 그리고 그 바벨론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gate of god, 즉 신의 문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4절에 나오는 하늘에 닿는 탑 꼭대기가 바로 바벨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바벨론의 왕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그래서 하늘에 닿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온 인류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바벨론의 특성, 하늘에 닿아서 하나님을 향한 문을 열겠다는 바벨론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바벨론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다른 나라의 얼굴이 반반하고 머리가 좋은 소년들을 데려다가 자기내들의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다니엘서 1장 4절 말씀을 보시면,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우리나라도 이런 일을 겪은 바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때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하게 하고, 한국어를 못쓰게 만들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로 수업을 했습니다. 한국인이면 한국어를 쓰고, 일본인이면 일본어를 쓸 것이지,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만을 쓰게 하니까 민족성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문화를 말살시켜버리는 것이죠.
창세기 1장 2절에 등장하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라는 말씀은 또한 바벨론에 끌려가는 백성을 보며 탄식하는 예레미야의 탄식에도 등장합니다.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한 세상에서 빛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바로세우시는 창조를 사람들을 흩음으로 인해서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수많은 다른 민족들과 언어들이 있는 가운데 바벨론에 사람들을 끌어들여와서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흩으시고 혼잡하게 하심이 질서다
흩으시고 혼잡하게 하심이 질서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시는 것은 혼돈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7절과 9절에 등장하는 혼잡하게 하다 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발랄 이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혼란하게 하다, 혼잡하게 하다 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섞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레위기 말씀에서도 구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 이라고 할 때 이 섞어 라고 하는 단어가 바로 발랄이라는 단어인데요, 무엇을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달라지죠.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여기서 기름을 부으셨다, 라고 할때 이 부으셨다라고 하는 말이 똑같이 발랄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신선한 기름을 나에게 섞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높이시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결국에 바벨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언어를 섞고 혼잡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마치 일본어를 쓸수 밖에 없던 우리 역사 속의 한국인, 바벨론에 끌려가서 갈대아 사람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밖에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겁니다.
또한 바벨탑 이야기에 바로 뒤에 등장하는 내용이 셈과 데라의 족보, 즉 노아의 자손인 셈에서부터 아브람까지 이어지는 족보가 등장하는데요,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이어지는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이렇게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서 떠나서,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하나 였던 상태에서 흩어져 떠나서, 새롭게 내가 보여줄 땅에 섞이고 들어가라 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흩어지고 섞이는 것에 구원이 있다
흩어지고 섞이는 것에 구원이 있다
요즘 대선 때문에 많이 시끄럽죠? 아직 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아서 앞으로 6월 3일 대선이 치러지기 전까지는 이런 형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서로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이 좋다고 그러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다 악마고 사탄인것처럼 여기는 행태가 어찌보면 혼잡하고 분열된 것이 혼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옳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관련된 뉴스, 발언, 생각에 묶여있다보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는 때로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제도 선교사님이 오셔서 은혜로운 간증을 해주셨는데, 아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집트, 말레이시아, 중국 등 돌아다니다 보니까 아이가 여러 언어를 말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잖아요?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듫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거기서 복음이 흘러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말레이시아든 세계 어느 나라든 가서 한국어로만 이야기한 다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붙들고 내가 말하는 언어만 하게 되니까 나라가 분열되고 혼돈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하나님의 흩으심과 섞으심을 경험하게 되면, 거기서 구원이 시작됩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을 체험했던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니까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듣기 시작하는거예요. 다만 흩어지고 섞이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흩어진 그곳에서 구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모아다가 한 언어로 만들려던 바벨론을 흩으시고 섞으신 것처럼, 저희가 다른 이들의 언어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자리에 흩어짐을 통하여서 그 가운데 복음이 흘러들어가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선이 한창인데, 한국에 좋은 지도자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 만큼은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다만 자기의 언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붙들고 있다보니 사람들이 대화보다는 싸움만을 택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들어주며 다른 말을 하는 이들을 경청할 때에 화합과 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의 방식대로 흩어지고 섞이며 함께 좋은 나라를 잘 만들어나가고, 또한 좋은 지도자가 선출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다른 사투리정도의 일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 가서 복음이라는 언어로 다시 대화하고자 하는 선교사님들이 계십니다. 계속해서 교회와서 간증도 해주시는데, 먼 타지에서 복음을 위해서 힘쓰시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