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회개해야 하나요?(회개의 단계)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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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발전 단계를 설명하고, 근원적인 죄에 대한 사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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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회개 일반”을 통해 회개하기 싫은 이유, 회개의 의의, 회개의 종류, 회개의 능력,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회개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회개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회개’라는 말을 참 많이 듣습니다. 여러분은 회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이가 들수록 회개할 게 줄어든다고 느끼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어져야 합니다.
기도, 말씀, 봉사, 섬김 등의 모든 신앙 활동에는 깊이가 있습니다. 비슷한 활동으로 보여도 전혀 다른 활동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회개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회개의 단계라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단계를 구분하는 것에는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1단계보다 2단계, 2단계보다 3단계의 사람이 더 탁월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계가 높아진다고 우리가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야구를 처음 배울 때 배트를 잡는 것도 서투릅니다. 처음에 배트를 잡고 휘두르면 손목이 꺾이면서 상당히 아픕니다. 공을 맞히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공을 맞히게 되고, 안타를 치고, 어려운 변화구도 홈런을 치기도 합니다.
신앙의 깊이가 깊어진다는 것은 이것과 같습니다. 더 익숙해지고, 더 잘해지고, 솜씨가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야구선수가 배트를 휘두르는 솜씨가 좋아졌다고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서 회개가 깊어진다는 것, 회개의 단계가 높아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있어 솜씨가 더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죄에 민감하게 되고, 작은 일에도 회개하게 되고, 더 깊은 회개가 가능해집니다. 그 결과로 죄를 미워하시는 주님께 더 가깝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더 탁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부활 때 신령한 몸을 입는 또 한 번의 변화를 합니다. 그러나 그 중간 기간에는 우리에게 질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아기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의 모습 그대로 자라가듯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갑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보다 죄에 대해 더 자유해졌고,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으며, 예수님과 친밀함이 커졌지만, 그럼에도 저는 거듭났을 때 존재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단계를 말하는 이유는 신앙에는 발전하는 모습이 있고, 그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깊이가 깊어지는 과정이 성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성화가 어떤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 개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2. 회개의 단계
회개를 3단계로 나누어 보려 합니다. 이것은 저의 경험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만, 성경에도 이런 구분을 뒷받침해 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영성가들도 3단계의 성장을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의 경험이지만 그렇다고 자의적인 구분은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1) 1단계: 행동의 죄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거듭남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진짜 회개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나서 제일 먼저 하는 회개를 1단계라고 하겠습니다. 이때는 행동에 초점이 많이 맞추어집니다. 두드러진 죄 된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고 회개하게 됩니다.
술을 마시던 사람은 술을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법을 어기는 범법행위를 한 사람은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주일 예배를 빠진다던가, 거짓말을 한다던가, 남을 속이고, 물건을 훔친다던가 이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타인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면 당연히 죄책감을 느낍니다.
주로 많이 회개하는 부분이 분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한 죄 중에 분노는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짓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다른 사람을 부분적으로 죽이는 폭력이고 통제하려는 억압입니다. 누군가에게 분노하면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죄책감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죄책감이 배가 되고,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의식,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의식이 생겨 하나님께 회개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이 반복되는 죄로 굳어지지 않았다면 눈물로 회개하고, 후회하고, 결단하며 행동을 바꾸려고 할 것입니다.
1단계에서는 행동의 죄와 씨름합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행동이 바뀌기도 합니다. 주일 성수를 잘하게 되고, 거짓말이 줄어들게 되고, 화도 덜 내게 됩니다. 그래서 나름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완전히 끊어지기는 어렵습니다. 행동은 결국 내면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행동의 죄와 씨름하던 사람은 내면의 죄를 인식하게 됩니다.
2) 2단계: 내면의 죄
2단계에서는 내면의 죄를 회개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에서는 생각, 감정, 의지(욕심)의 혼과 관련된 부분의 죄를 마주하게 됩니다. 자랑하는 생각, 자기를 높이고 싶은 생각,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생각, 음란한 생각, 겉으로 화를 표출하진 않았지만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 다른 사람을 향한 시기, 낙심, 절망, 돈을 사랑하는 욕망, 부해지려는 욕망 등입니다.
1단계에서도 이런 부분을 느끼곤 하지만 행동의 죄에 더 집중하게 되고, 내면의 죄도 간혹 회개하곤 합니다. 1단계를 지나고 나면 이제 내면의 죄와 본격적으로 씨름하게 됩니다. 내 안에 생각과 감정, 의지에 속한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악한 죄인지 실질적으로 느껴집니다. 당연히 이 죄들을 그대로 용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회개하게 됩니다.
저는 대학생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죄에 대해 전혀 다른 감각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여겨지지 않았던 생각이 분명한 죄로 여겨졌습니다. 큰 두 가지 생각이었는데 교만과 음란이었습니다. 교만과 음란의 생각이 수시로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럴 때마다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을 대적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거의 7년을 그렇게 씨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런 생각들의 빈도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어느 정도 승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7년이나? 그랬습니다. 저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 생각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내면의 죄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칭찬을 받을 때, 좋은 성과를 내었을 때, ‘저런 건 누구나 하는 것 아니야?’, ‘자기가 얼마나 잘났다고 저렇게 뻐기지?’ 이런 생각들입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부아가 오르고 이런 것이 내면의 죄입니다. 누군가 내가 낸 의견에 잘못된 부분을 말한다거나, 내가 한 일에 대해 부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 상대방이 나쁜 의도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내면의 죄입니다.
2단계에서 내면의 죄와 씨름한다고 해서 1단계의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빈도는 확연히 줄어드나 행동의 죄도 여전히 범합니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부터 행동이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 죄가 존재하니 행동의 죄도 짓게 됩니다. 긴장하고 내면의 죄와 싸울 때는 행동으로 죄가 나타나지 않으나, 긴장을 늦출 때는 행동으로 죄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내면에 분노가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긴장하고 조심할 때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그럭저럭 관리합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는 긴장이 느슨해지고, 작은 자극에도 분노가 표출될 수 있습니다.
3) 3단계: 근원의 죄
2단계에서 내면의 죄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근원적인 죄를 보게 됩니다. 내면의 죄라고 말한 생각, 감정, 의지에 관한 죄는 근원적인 죄에서 파생되어 나온 가지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시기’라는 감정과 ‘시기’하는 생각의 죄를 봅시다. 시기에 관한 감정과 생각이 있기 전에 ‘시기’라는 죄 자체가 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받는 상황에서 상대를 시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서 떠오른 것입니다. 생각이 떠올랐다고 하면 생각이 나온 근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기’라는 죄입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고 인정받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내가 최고로 인정받고 싶은 ‘교만’입니다. ‘시기’라는 죄의 근원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분노’의 감정을 생각해 봅시다. ‘분노’는 아주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다른 내면의 죄보다 인지하기 쉽습니다. 여러분에게 분노가 일어나면 어떻습니까? 화가 날 때 아래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지 않습니까? 강한 에너지가 올라옵니다.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내 안 어딘가에서 올라옵니다. ‘분노’에서 ‘분노’의 감정이 나오는 것입니다. 분노는 내 뜻대로 되게 만들려는 강한 의지와 통제 욕구의 표출입니다. 자기 보호의 반응이기도 합니다. 자기 이미지를 보호하거나, 자기 영역, 자기 이익 등을 보호하려는 반응입니다. 분노는 ‘내 뜻대로’, ‘내 힘으로’라는 ‘교만’으로부터 나옵니다.
생각, 감정, 의지라는 내면의 죄와 싸우다 보면 근원의 죄를 인식하게 됩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죄를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한 그것입니다. 이 죄와 싸우기는 너무 힘듭니다. 이 죄는 깊은 곳에 있는 죄이기에 생각, 감정, 의지의 죄로 드러나기 전에는 잘 인지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자기 존재 자체를 회개하게 됩니다. 나는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그냥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의 존재와 죄가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자연스레 낮아지게 됩니다. 사람이 겸손함은 선행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당연한 태도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내면의 죄를 대면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3단계라고 해서 2단계 죄가 없어진 것도 아니고, 1단계 죄가 끊어진 것도 아닙니다. 1단계 죄는 빈도가 더 줄어들고, 2단계 죄의 강도나 빈도도 줄어들지만, 여전히 존재합니다.
3단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1, 2단계에서도 그렇지만, 근원의 죄를 다루는 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려는 결단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근원적인 죄는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삶의 큰 고난과 고통을 통한 연단으로 근원적인 죄를 다루시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10여 년 전에 3개월 정도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기도도 하지 못하고, 성경도 읽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1달에 2번씩 성경을 읽고, 매일 기도하기를 힘쓰면서 제 안에 있는 교만이 교만에 대한 근거를 얻었고, 하나님께서 다루실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고통을 통해 저를 다루셨습니다. 3개월의 시간을 지나고 제 안에 교만이 정말 많이 다루어져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다루심을 통해 근원적인 죄가 없어지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야곱처럼 자기가 강한 사람은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됩니다. 여기에서 빠르게 순종하는 것이 고난의 시간을 단축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모든 근원적인 죄가 고난을 통해서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큰 고난이 아닌 삶의 소소한 어려움으로도 얼마든지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속적인 기도를 통한 자기 성찰과 깊은 회개,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에 자기를 맡기는 수동적인 자세 등이 하나님께서 근원적인 죄를 다루시기 쉽게 합니다. 이런 순종의 태도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이삭과 같이 고난이 적고, 복이 많은 삶을 살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내 삶의 고난은 ‘내가 완악하기 때문이가?’라는 단순한 적용을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가 고난이 아니기에 간단히 언급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단계별로 회개의 깊이가 깊어지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 근원적인 죄
회개의 단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떻게 회개가 깊어지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셨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신앙의 성장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회개가 깊어지는 데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계속 깊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빠지기도 했다가 좋아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깊어집니다. 어떤 경우에 나빠지고, 어떤 경우에 좋아지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좋아지는 것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죄를 미워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나빠지는 것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죄를 거절하지 않는 자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2가지 사례를 들어보려고 하는데, 하나는 제의 경험이고,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사례입니다.
1) 사례1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교회 사역이 많았었는지, 많이 피곤했고, 마음 상태도 부드럽지 않았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일주일에 2-3번 정도 같이 기도실에서 1시간 정도 기도합니다. 가족 모두가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들이 저에게 “아빠, OO 형이 로드 자전거 샀는데, 저도 로드 자전거 사주면 안 돼요?” 당시 아들에게 MTB 자전거를 사주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바로 역정을 내며 “안돼! 지금 자전거 사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사달라고 해? 너 지금 키로는 로드 자전거 못 타. 자전거 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로드 자전거는 위험해.”라고 말했습니다. “아빠한테 그냥 말해본 거예요. 왜 이렇게 화내요. 나는 아빠한테 뭐 사달라고 말도 못 해요?” 그날은 많이 억울했는지,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아들이 저에게 울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분명한 명분과 논리가 있었습니다. 위험하다. 자전거 사준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다. 친구가 산다고 다 사는 거냐.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갈등의 핵심은 저의 짜증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화낸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명분과 논리 만을 가지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우겼습니다. 다음 날 제 잘못이 분명했기에 아들을 앉혀놓고 사과했습니다. “아빠가 어제 화낸 것은 잘못했어. 분명히 인정할게.” 그리고 차분히 어제의 논리와 명분을 설명했습니다. 아들도 잘 알아듣고 수긍했습니다. 키가 좀 더 크면 아빠 로드 자전거를 주기로 약속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로드 자전거를 주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죄를 지었음에도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죄를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주장하는 논리를 끝까지 붙들고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면 저는 한 걸음 후퇴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런 작은 선택들의 총합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한걸음 성장하고, 그런 선택이 쌓여 회개의 단계가 깊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죄를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그런 선택이 쌓인다면 회개의 단계가 깊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는 멀어지고 죄에는 가까운 죄의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자기 합리화를 벗어버리고, 인정과 회개에 빨라야 합니다.
2) 사례2
악에 가까운 사람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유명한 작가인 스캇 펙 박사의 ‘거짓의 사람들’에서 나오는 사례입니다. 로저라는 아이를 상담한 사례인데, 로저는 15살 남자아이로, 공립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생활지도 선생님으로부터 진학은 할 수 있으나 성적이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 정신과 진단을 받아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스캇 펙 박사 앞에 온 로저는 우울한 상태였습니다.
스캇 펙 박사가 로저에게 아무 것이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을 얻고 싶냐고 물었고, 진짜로 중요한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스캇 펙 박사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고 감지하고 로저에게 부모님께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해봤는지 물었고, 부모님이 안 된다고 했다고 답합니다.
스캇 펙 박사는 로저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양육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로저의 부부는 40대 초반의 아주 세련된 부부였습니다. 표현도 명확하고 차림새도 흠잡을 데가 없고, 집안 형편도 아주 부유한 것 같았습니다.
로저의 어머니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저희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로저가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이유도, 우울해진 이유도 전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담이 진행되면서 이상한 점이 드러났습니다. 부부는 로저가 기숙사 학교에 가고 싶다고 요청했던 사실을 처음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억났다고 말을 바꿨고, 기숙사 학교는 돈이 많이 든다며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부는 자신들이 매우 좋은 부모이며, 로저가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박사는 로저의 부모의 말과 그들의 행동이 괴리를 느꼈습니다. 로저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하면서 로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청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스캇 펙 박사는 로저를 기숙사 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조언과 본인이 계속 치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다른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로저의 부모는 로저를 기숙사 학교에 보내지도, 추천한 정신과 의사에게 데려가지도 않았습니다.
첫 상담 이후 7개월이 지나서 로저와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두 번째 방문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진학한 로저가 학교에서 인정받고 적응을 잘하고 있었는데, 학교의 은퇴 신부님 방에서 개인 소지품을 훔치는 비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로저를 아까워하며 공범 학생 2명은 이미 퇴학했지만, 로저에게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박사는 로저와 상담하는 가운데 은퇴 신부님의 물건을 훔칠만한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상담 이후 부모님이 로저에게 스캇 펙 박사의 조언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저의 비행과 연관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저가 장애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모범이 된 결과로 뉴욕에서 열리는 정신 장애 주제 회의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부모님이 못 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방 청소를 못 하는 아이는 그런 곳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캇 펙 박사는 로저의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지난번에 왜 추천한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로저의 부모는 “박사님께서 저희들에게 그것은 로저 본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인상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로저한테 직접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셨죠? 저희는 그 애가 아무런 말이 없길래 ‘아, 가고 싶지 않은 거로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저의 부모는 아주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들이 스캇 펙 박사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책임을 스캇 펙 박사와 로저의 책임으로 돌려버렸습니다.
스캇 펙 박사는 뉴욕 여행 취소 건을 언급했고, 그 일로 로저가 크게 상심하고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로저의 부모는 자기들은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이 심리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아이의 그런 내면을 알 수 있느냐고 변호했습니다. 이어 로저의 부모는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로저를 뉴욕에 못 가게 한 조처에 대해 다양한 소소한 이유로 자신들을 변호했습니다. 그러면서 로저에게 타고난 선천적 결함이 있지 않은지 스캇 펙 박사에게 물어왔습니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로저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기숙학교에 보내는 게 좋겠느냐는 로저 부모의 질문에 ‘지금은 옮기지 않는 게 좋겠다, 로저는 지금 학교를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옮기면 오히려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캇 펙 박사는 결국 로저가 아니라 로저의 부모에게 문제가 있고 심리 치료를 받는게 좋겠다고 권고했고, 화가 난 로저의 부모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로저의 엄마로부터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감사 표현과 박사님의 권고를 따라 로저를 기숙학교로 보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사례에서 로저의 부모는 시종일관 자녀에게 관심이 많고 잘 양육하는 부모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변호하기에 바빴습니다. 자신들의 분명한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변명하고 오히려 책임을 아들에게, 스캇 펙 박사에게 돌렸습니다. 교묘한 말장난 같은 논리를 통해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자기기만으로 일관했습니다. 로저의 부모는 자녀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며, 훌륭한 부모라는 이미지, 자신들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는 자기 인식을 지키는 데만 집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캇 펙 박사는 이들을 악한 사람, 거짓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교묘한 논리로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자기를 속입니다. 자기 이미지를 지키지 위해서는 자신의 죄는 숨기면서 다른 소소한 이유와 논리로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이런 악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악을 따르는 사람이 있고, 악을 거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는 사람이 있고, 일관되게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회개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선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악을 거절해야 합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여러분의 모습을 만듭니다.
4. 결론
회개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1단계는 행동에 대한 회개, 2단계는 내면의 죄에 대한 회개, 3단계는 근원적인 죄에 대한 회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에 힘써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죄 없으신 우리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것은 죄와 멀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회개가 깊어지기 위해 죄를 미워하는 마음과 죄와 싸우는 열심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자기를 합리화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기에 빨라야 합니다. 매일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풍성함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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