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영광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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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3:7-11
“더 큰 영광”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2025. 5. 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더 큰 영광”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옛 언약의 영광과 새 언약의 영광을 비교하면서, 새 언약이 더 영광스럽고 찬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단락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세 번의 대죠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데요. 
    먼저 첫번째 대조입니다. 율법 조문의 직분과 영의 직분, 이 두 가지를 대조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7절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아멘. 
    율법 조문의 직분과 영의 직분을 대조하면서 비교하고 있죠. 지난 시간에 율법 조문이 뭐라 그랬습니까? 돌에 새긴 모세의 율법이라 그랬죠.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서 살면 유익해요.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율법도 못 지키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낙심을 하게 되고, 결국에 죄 속에서 죽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 조문을 죽이는 것이라 그랬어요. 
    그런데 7절 말씀에 보니까 바울이 이 율법 조문에도 영광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의 상황을 말하고 있죠.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못 쳐다봤거든요. 모세가 여호와를 대면하여 만날 때, 여호와의 영광이 모세의 얼굴에 비추었는데, 그 영광의 흔적이 모세의 얼굴에 남아있었던 겁니다. 뜨거운 불 앞에 있다가 오면, 얼굴에 열기가 남아있는 것처럼, 영광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거예요. 
    그런데 백성들은 그 영광의 흔적만 가지고도 감히 쳐다보지를 못했어요. 왜냐하면 흔적일 뿐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다. 아무리 흔적만 남아서 곧 없어질 영광이라도, 어쨌든 그것도 영광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율법 조문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율법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겁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도 잘 지켜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율법을 지키기에 앞서서 먼저 해야 되는 것이 있어요.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게 뭡니까? 바로 성령을 받는 겁니다. 성령. 자, 8절 같이 읽어볼까요? 8절 시작,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아멘.
    영의 직분. 영이 뭐예요? 성령.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됩니다. 율법 조문에도 영광이 있지만, 그 영광은 곧 없어질 영광이에요. 하지만 성령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은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따르기보다 성령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7절과 8절의 이 내용은 바울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이 됩니다. 바울이 과거에는 율법 조문을 따르는 사람이었거든요. 율법 조문의 영광을 따라서 교회를 핍박하고 파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희미한 영광을 압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만나버리니까, 이제까지 자기가 따르던 모든 것이 태양 앞의 등불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영광이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곧 없어질 영광과 영원한 영광. 다시 말해서 율법과 성령. 우리가 당연히 뭘 따라야겠습니까? 성령을 따라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첫번째 대조입니다. 이어서 두번째 대조가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 9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아멘.
    이번에는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이 나와요. 정죄의 직분, 정죄의 직분도 율법을 가리킵니다. 율법이 본래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활지침이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못 지키니까 정죄하고 정죄하다가 결국에는 율법이 꼭 백성들을 정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여겨지게 됐죠. 그래서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결국에는 정죄로 끝이 나요.
    하지만 그래도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도 영광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에 있는 영광보다도 더욱 영광이 넘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의의 직분입니다. 
    여러분, 의의 직분은 뭘까요? 아까 율법이 정죄로 끝났다면, 의의 직분은 의로 끝나는 것이겠죠. 여러분, 무엇이 우리를 의로 끝나게 할까요? 바로 복음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하고, 의로 끝나게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의롭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두번째 대조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대조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아멘.
    여기서는 없어질 것과 길이 있을 것으로 대조를 하고 있죠. 자, 없어질 것은 뭡니까? 없어질 것은 옛 언약이에요.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맺으신 옛 언약. 이 언약도 영광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언약에 지금도 있습니까?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옛 언약은 사라졌습니다. 새로 계약을 맺었는데, 옛날 계약서 갖고 와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무 소용 없는 거예요.
    옛 언약은 잠시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효력이 있었던 임시계약이었습니다. 거기에도 나름대로 영광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옛 언약은 사라지고 새 언약이 있어요. 더 큰 영광이 새 언약에 있습니다. 그래서 11절 끝에,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이처럼 바울은 세 번의 대조를 통해서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하고,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새 언약을 따라야 돼요. 새 언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령으로 역사하고, 우리를 의롭게 하며, 영원히 있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 언약의 영광을 위하여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더 큰 영광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복음을 따라, 성령을 따라, 바울이 달려간 그 길을 우리도 경주하여서 더욱 풍성한 영광 가운데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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