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에서 소명으로(에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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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1. 들어가기
1. 에스더서의 특징
1. 에스더서의 특징
성경을 펼쳐보면, 언제나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펼쳐 보면, 모세를 찾아와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출애굽 가운데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장면이 등장을 합니다. 열왕기에 보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과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렇지 않는 왕과 나라는 패망에 이르게 하는 장면이 등장을 합니다. 시편을 보면 다양한 저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일하심을 찬양하고, 때로는 절망의 순간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는 장면도 등장을 하게 됩니다.
신약은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등장을 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지내는 장면이 나오고, 이후에 사도들의 서신에도 보면 그들이 교회를 세워가는 중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돕고 역사하는지에 대해서 수 없이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성경 중에 참 독특한 성경이 있습니다. 그 성경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거론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전면에 나서서 일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이 책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은 에스더의 내용 속에서 분명히 살아계심을 느끼게 됩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요. 책 자체에서는 거론되지 않는 하나님이 읽다가 보면 “역시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라는 책 속의 하나님을 “무대 뒤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일컫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에스더서를 통해 말하고 자하는 것
2. 에스더서를 통해 말하고 자하는 것
이렇듯 ‘무대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하는 에스더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이 책은 단순한 포로 귀환 시대에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그린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포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한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그 은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소명이되어 자기 민족을 구원하고 더 나아가 포로된 그 곳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며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 그리고 소명
3.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 그리고 소명
에스더서를 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에스더 만큼이나 정처없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던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은혜 자체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제 에스더와 같이 우리 각자에게 소명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의 큰 일에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전환) 오늘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즉, 에스더에게 어떤 은혜가 임하였고, 그 은혜가 어떻게 그녀에게 소명으로 다가왔는지를 살펴보고, 오늘 우리 삶에는 어떤 큰 은혜가 임했고, 은혜 받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떤 자리로 부르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론
2. 본론
1. 본문의 배경
1. 본문의 배경
오늘 에스더서를 잘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본문의 배경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야기 형태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배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경을 제대로 알아야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1) 포로 귀환의 역사
1) 포로 귀환의 역사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남북이 갈라진 이스라엘, 곧 남쪽의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고 많은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끔찍한 포로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패망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을 때, 곧 기원전 538년에 고레스 칙령을 통하여 포로 귀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 포로 귀환은 총 3차에 걸쳐 진행이 되어졌습니다. 1차는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2차는 에스라를 중심으로 되었으며, 마지막 3차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에스더서는 이런 포로 귀환 역사 중에 제1차 귀환과 제2차 귀환 사이의 시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아직 페르시아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의 이야기이고, 본토로 귀환하지 않고 있던 유다 공동체의 삶과 하나님의 섭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포로의 삶과 하나님의 섭리
2) 포로의 삶과 하나님의 섭리
포로 귀환시대가 열린 시기였지만,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유다인들은 여전히 차별과 핍박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에스더서를 읽다가 보면, 이야기가 반전을 향하여 나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뭔가 억압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비록 단 한번도 이 책에서 거론된 적이 없지만 여전히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으로 등장을 하십니다.
2. 에스더서의 전반적인 내용
2. 에스더서의 전반적인 내용
에스더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와스디가 폐위 된 이후에 다른 왕후를 간택하고자 많은 여인들이 모았고, 그 중에 유다의 여인 에스더도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가 왕후가 됩니다. 에스더의 사촌 오빠이자 보호자인 모르드개는 하만이라고 하는 자에게 굽히지 않는 일로 인하여 갈등이 생겼고, 그 가운데 하만은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그의 민족인 유다인들까지 몰살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 가운데 에스더의 결단과 남아 있던 유다인들의 금식 기도를 통하여 오히려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몰살하려고 했던 하만이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고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유다 민족이 목숨을 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3. 에스더에게 임한 3가지 은혜
3. 에스더에게 임한 3가지 은혜
우리는 에스더서를 볼 때 그냥 이런 내용만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주목해야 될 점이 있습니다. 무대 뒤에 계시지만,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은 그저 번쩍이는 기적을 통하여 에스더서의 내용을 이끌어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들풀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에스더’에게 ‘3가지의 큰 은혜’를 주셔서 에스더서의 내용을 이끌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세 가지 은혜는 무엇일까요?
1) 모르드개를 통한 아버지의 은혜
1) 모르드개를 통한 아버지의 은혜
첫 번째 은혜는 “모르드개를 통한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2장 7절의 말씀을 보도록하겠습니다.
에스더 2: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7절은 에스더가 어떤 인생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포로 생활 가운데 일찍 단명을 했거나, 아니면 포로로 끌려오기 전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도의 추측만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부모가 없다는 것은 “그녀의 삶에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때, 그녀는 누구에게도 부르짖을 대상이 없었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운동장에 뛰어놀다가 엎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엄마~”하면서 웁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그럴 대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저 혼자 남겨진 “들풀 같은 인생”이 그녀의 인생이었습니다. 비록 7절의 말씀은 에스더의 용모가 곱고 아리따웠다고 말하지만, 부모가 없는데 아무리 아름다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은 사촌 오빠 모르드개를 통하여 은혜를 주십니다. 7절의 말씀은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냥 혈연적 관계 가운데서 나온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들풀 같은 인생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에스더에게 임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딸 같이 양육했습니다. 그냥 양육한 것이 아닙니다. 찬 밥 한 덩이를 던져주며 생색내는 그런 양육이 아니라, 정말 귀한 딸처럼 키웠다는 겁니다. 이런 은혜가 있어 훗날 에스더의 모습 속에서는 신앙의 모습도 있고, 믿음 안에 자아 정체성도 뚜렸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에게 이런 은헤를 주지 않았다면, 에스더는 그저 포로 중에 한 명에 그쳤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되었던 우리가 어디에도 하늘의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제는 그분의 양자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구절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도 에스더만큼이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들풀과 같은 인생이 하나님이 없었던 우리내 인생이었습니다. 목소리 높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지만 부를 수 없던 것이 죄인이었던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입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2) 헤개를 통한 스승의 은혜
2) 헤개를 통한 스승의 은혜
하나님은 부모가 없는 에스더의 인생에 아버지와 같은 모르드개를 은혜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나아가 왕후로 간택 되는 일 가운데 ‘헤개’라는 사람을 보내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얻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헤게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제국의 풍류와 미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왕후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정치적 경쟁 구도와 맥락을 읽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왕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에스더가 들어왔습니다. 함께 에스더 2:8-9을 보겠습니다.
에스더 2:8–9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개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으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특별히 9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헤개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은혜를 베풀어’라고 합니다. 이것도 그저 에스더가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기에 그렇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됨에 있어서 모든 단어를 차치해두고 “은혜를 베풀어” 곧 히브리어 ‘헤세드’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이 가운데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헤개를 통해 왕후 간택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왕후가 되기 모인 여인들은 모두 왕에게 간택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 준비했지만, 에스더는 달랐습니다. 15절 말씀도 보겠습니다.
에스더 2:15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 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에스더는 ‘헤개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다른 무언가를 많이 준비한 사람보다 에스더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헤개를 통한 스승에 대한 은혜를 주셨고, 에스더는 그런 헤개의 말에 순종하고 그의 말을 잘 따랐더니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자가 되었고, 결국 그녀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는 참 중요합니다. 어릴 때 참 고마웠던 선생님이 누구나 있습니다. 기겄해야 1년 정도 담임을 하신 선생님이지만 평생 감사할 분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최악의 선생님도 있습니다.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도 평생을 갑니다. 이런 점에서 에스더의 삶이나 우리의 삶에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스더는 헤개라는 좋은 스승을 만났고,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구나 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좋은 스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바른 길인지, 진리인지 가르쳐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6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에스더가 헤개의 말에 순종하며 나갔을 때, 왕후의 자리에 올갔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아하수에로를 통한 신랑의 은혜
3) 아하수에로를 통한 신랑의 은혜
마지막으로 에스에게 임한 은혜는 바로 왕 아하수에로를 통한 신랑의 은혜입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볼 때는 아무리 왕후라고 할지라도 왕이 부르기 전에는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을 통해서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 전체의 위기가 생겼을 때,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과 함께 왕앞에 나갑니다. 함께 5:1-3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더 5:1–3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에 갔을 때, 왕이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왕이 에스더를 보니 매우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손에 잡았던 금규를 에스더에게 내밀었고, 에스더는 그 금규를 만지며 왕에게 말을 건냈던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에게 왕후 에스더를 사랑스럽게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에스더는 죽음을 맞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랑으로서 아하수에로를 통해 에스더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 문제를 아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신랑되신 예수님의 은혜가 함께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어떤 순간에도 사랑해주십니다. 더 나아가 연약한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언제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십니다. 에스더만 이 은혜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도 이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4) 소결론
4) 소결론
이처럼 에스더에게는 아버지와 스승과 신랑이라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인생은 들에서 핀 풀이었지만, 결코 들판 핀 어느 꽃보다 향기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까지만 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서론에서 말씀을 나누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오라고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일에 그녀를 사용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달리말해 ‘소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녀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4. 은혜에서 소명으로
4. 은혜에서 소명으로
1) 에스더와 자기 민족이 처한 상황
1) 에스더와 자기 민족이 처한 상황
당시 에스더와 에스더의 민족인 유다민족이 처한 상황은 하만의 간계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민족이 몰살 당할 위기에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 천, 몇 만의 목숨이 잃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그분이 보호하시는 백성이 이방 민족에게 완전히 강탈 당하며 죽임을 당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님은 유다 민족의 포로 생활 가운데서도 여전히 살아계시며 동시에 자기 민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2) 에스더에게 임한 은혜가 소명으로 이어짐
2) 에스더에게 임한 은혜가 소명으로 이어짐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부모없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에스더에게 스승과 같은 헤개를… 사랑 받는 일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던 에스더의 인생에 아하수에로라는 페르시아 왕을 통하여 신랑의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4장 14절의 말씀입니다.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는 모르드개의 말은 에스더에게 임한 은혜가 그녀에게 소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말입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임한 은혜와 소명
5. 오늘 우리에게 임한 은혜와 소명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에스더에게 임한 아버지, 스승, 신랑의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는 에스더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소명으로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살리신 우리에게도 각자의 삶과 환경에 따라 부르심의 소명을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내가 받은 은혜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가지고 지금 내가 선곳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그곳이 꼭 교회가 아니라할지라도… 그곳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신 곳이고, 그곳이야말로 소명자로 부르신 자리인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서 끝내면, 정말 나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올 그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볼 낯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가지고 소명자의 자리로 나아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신대로 쓰임 받는다면, 우리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우리 귀에 들려올 때에 두 팔을 벌려 “마라타나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결론
3.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은혜는 소명으로 이어집니다. 에스더에게도 그랬고,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저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해주신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인데, 이제 받은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들에 핀 풀과 같은 인생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은혜주시고 자신의 일로 부르셔서 어떤 아름다운 꽃들보다 더 귀하게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기억하고 새겨서, 받은 은혜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감사하며 더 나아가 소명자의 자리까지 나아가서 일평생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