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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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1–12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부유함이란 무엇일까요?
부유함이란, 단어를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가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서 빌립보서 4장 18절에서는, 이 부유함을 가리키는 두 가지 동사가 사용되는데, 하나는 ‘페리슈오’이고, 다른 하나는 ‘플레로오’입니다.
빌립보서 4:18 NKRV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페리슈오’라는 단어는 ‘풍부하다’로 번역되었고, ‘플레로오’는 ‘풍족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페리슈오’는 넉넉한 상태를 가리키는 동사이고, ‘플레로오’는 가득 채워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단어들을 통해서 볼 때, 결국 부유함이라는 것은, 결핍되지 않고 넉넉하고 가득찬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부유함이 항상 마음의 부유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많은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자살이나 여러 가지 도덕적 타락의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유는, 물질적 부유함이 마음의 부유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적 부유함을 누리면서도, 마약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는, 물질적인 부유함을 누리면서도 마음의 부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인간의 물질적 부유함이 내면의 부유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5 NKRV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그리고 물질적인 부유함을 누렸던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7 NKRV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주님은, 물질적으로 부유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오히려 그들이 곤고하고 가난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부유함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저희 딸에게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습니다.
걱정이나, 두려움은 결핍의 감정이기 때문에, 이 감정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부요하다는 것이겠죠.
물론 저희 딸은, 가진 재산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의 부요함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부모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정한 부유함이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 안에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 안에 있을 때, 진정한 부유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진정한 부유함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하신 말씀이라고 해서 ‘산상수훈’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 1-12절의 말씀은, 그 산상수훈 가운데서, 8가지의 복이 기록되어 있는, 팔복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 팔복의 내용은, 그야말로 역설의 신비입니다.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들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결코 복이 있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세상의 방식으로는 진정한 부요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죠.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래서 팔복은, 복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들인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목회자였던 존 스토트는 산상수훈의 내용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산상수훈 전체는 실제로, 복음을 받아들임, 회심과 중생에 대한 체험, 성령의 내주하심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서술한다. 그래서 팔복은 하나님께서 그런 성품이 형성되도록 그 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는 사람들에게 공로에 대한 상이 아니라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복들을 제시한다.”
심령이 가난해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함은 복의 조건이 되고, 또 하나의 행위 구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성품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팔복을 포함한 산상수훈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성품과 태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성품이 기록되어 있는 팔복에서, 첫 번째 내용인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가난하다”라는 단어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시 14:7; 잠 14:21), 즉, 사회적으로 무력해서, 특히 부자와 권력자에 의해 억압받는 불쌍한 사람들(암 2:7; 8:4; 사 11:4; 29:19; 32:7; 61:1; 사 11:4; 욥 24:4; 습 2:3), 불쌍하고 약하고 고통을 겪으며(시 10:17; 22:27; 25:9; 34:3; 37:11; 69:33; 147:6; 149:4; 사 61:1), 겸손하고 낮아진 처지의 사람들(민 12:3-모세; 잠 3:34; 16:19)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지혜문헌에서 이 용어는 주로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이 아무런 힘이 없기에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모습, 곧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겸손합니다(예, 습 2:3; 시 9:13, 22:27; 25:9).
스바냐 2:3 NKRV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그런데, 마태복음은, 누가복음과 달리, 단순히 가난한 자가 아니라, “심령”에 있어서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라는 것은, 물질적인 가난이 아니라 영적인 가난이라는 점을 표현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가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영적인 가난이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임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공로가 없어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찬송가 494장 ‘만세 반석 열리니’의 3절 가사의 원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손에 아무것도 드릴 것 없어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만 매달립니다. 벌거벗은 나, 주님께서 옷 입혀 주시기를 바라며 나아옵니다. 의지할 곳 없어 주님의 은혜를 기대합니다. 더러운 나, 샘으로 달려갑니다. 구주여, 나를 씻어주소서, 그리 아니하시면 내가 죽겠나이다”
이 찬양의 고백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고백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자비와 은혜만을 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주님 안에 있을 때에만이 진정한 부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청교도인 아이작 앰브로즈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닿는 기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갈망합니다

오, 주님, 내가 목마릅니다. 내가 한 방울의 자비를 갈망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오, 하나님, 내가 주의 긍휼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가련하여 떠는 나의 영혼이 피 흘리신 구주의 복되신 팔에 안길 수 있다면,

내게 온 세상의 영광과 부와 쾌락이 있다 해도,

내게 만만의 생명이 있다 해도,

그것 모두를 기꺼이 내려놓겠습니다.

앰브로즈는 세상의 부와 영광과 쾌락과 만만의 생명, 이 모든 것이 있다 해도, 오직 주님의 한 방울의 자비만 얻을 수 있다면 모두 내려놓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진정한 영혼의 부유함은,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 안에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물질적인 가난 속에서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누리는 부유한 자들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를 떠났지만, 그는 이내 매마른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좋은 옷과 좋은 음식과 금 가락지를 끼우고 아버지의 부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동생을 질투하는 첫째를 향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5:31 NKRV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우리가 아버지 안에 있으면, 아버지의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되어, 우리는 아버지의 무한한 자원을 누리는 부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아버지 안에 있을 때 진정한 부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5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2:5 NKRV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고린도후서 8장 9절의 말씀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9 NKRV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심령의 가난함으로, 오직 아버지의 자비와 은혜만을 구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그러했듯,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붙잡았을 때, 그가 이겼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또 탕자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비굴하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가 아버지의 부유함을 누리게 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공로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아버지와 그분의 은혜만을 붙잡을 때, 아버지께서는 오히려 주님을 붙잡은 그 두 손을 들어, 우리에게 “네가 이겼다”라고 승리를 선언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참된 부유함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붙잡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6장 3-10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3–10 NKRV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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