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0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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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크신 은혜로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다들 지난 연휴 잘 보내셨나요? 공교롭게도 시험기간이 끝난 이후에 주어진 연휴이고, 날씨도 꽤나 따뜻해지다보니 모두에게 아주 달달한 연휴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요, 우리에게 달달했던 연휴의 시간이지만, 사실 모두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사실은 요즘들어 사회가 처한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죠. 당장 나라를 이끌 대통령이 공석인 상황이고, 한달뒤에 있을 대선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별별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에서도 보컬이 우스갯소리로 왜 자신이 올때마다 대통령이 없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죠. 아마 그들도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이 뿐만 아니죠. 경제적으로는 어떨까요? 미국에서 불어닥친 관세 전쟁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를 흔들다보니 당장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도 미치고 있죠.
근데 최근에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냐,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지구를 공격하고 있고, 인도와 파키스탄도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상황까지 치닫고 있습니다.
아직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전쟁들이 또 생겨날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죠.
그런데다가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진, 이상기후 등 재난까지도 그 혼란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말세가 가까이 왔구나’
실제로 말씀은 말세가 가까이 왔다는 징조로 전쟁과 지진, 기근과 같은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리고 말씀이 한가지 더 말세의 징조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뭐냐,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말씀에서 그 말세에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진리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곧 들이닥치게 될, 혹은 이미 들이닥치고 있는 이 거짓 진리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말씀을 통해 확인하고 말세를 잘 대처할 수 있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계속 나누고 있는 이 디모데후서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삶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기록했던 말씀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애제자 디모데에게 마지막을 두려워하지 말 것과 교회를 지혜롭게 잘 양육할 것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난번 나누었던 2장의 말씀에서는 교회 안의 천히 사용되는 그릇들, 거짓 진리를 전하는 이들과 소모적인 말싸움을 하지 말고, 잘 훈계하여 그들을 교육할 것을 전해주었죠.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마지막 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가장 먼저 바울은 마지막 때, 말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지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어떤 모습을 제시하고 있나요? 2절부터 4절까지 쭉 나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여러 좋지 않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죠.
뭐, 하나하나 따지면, 자기애, 탐욕, 교만 이렇게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요, 결국에는 간단하게 한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아닌, 다른 것들이 사랑의 대상으로 들어차 있다는 것이겠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나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권력을 사랑하는 등 다른 것들을 사랑의 대상, 목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바울은 그러한 잘못된 사람들이 교회 바깥에 존재하는,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없으니 다른 것들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겠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요, 바울은 이어지는 5절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에 뭐라고 해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 사랑이 아닌 다른 것들을 채운 이들도 경건의 모양,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전혀 없는 이들이 굳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성도들도, 사실 그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앞서 말세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보통 어떤 것들을 떠올리냐, 요한계시록에나 나타날법한 머리에 뿔달리고 험상궂은 표정을 한 악한 악마와 같은 이들이 삼지창을 들고 우리 성도들을 공격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한 모습과 다릅니다. 누가봐도 적그리스도처럼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고, 겉으로는 경건을 지키는 것처럼, 마치 성도인 것처럼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에게 적용해볼까요? 우리가 쉽게 현재 상황에서 말세의 증거로 뽑는 집단들이 있죠. 바로 사이비들.
신천지, 통일교, JMS 등등 전혀 딴소리를 하면서 교주를 재림 예수라고 말하는 그 집단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출현과 그들이 가진 엄청난 세력들을 보면서 적그리스도가 이 땅에 나타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죠. 하지만 오늘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렇게 대놓고 행하는 자들만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놓고 경건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죠. 세상에서 다니면서 갖가지 폐는 다 끼치고 있잖아요.
그런데 무서운 것은 뭐냐, 교회 안에서 나는 경건한 성도입니다! 라는 모습만을 갖추고, 사실은 그 속내로는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 삶은 그 믿음대로 살지 않는 것이죠.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에는 아멘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온갖 세상의 이득을 누리려는 모습들.
세상에서 고난이 있으나, 결국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을 믿지 않는 결과인 것이죠.
그러니 경건한 모양, 말씀에 아멘하고, 교회에서는 잘 지키는 행세만 하고, 실제 삶에서는 그 경건의 능력이 나타날 것을 전혀 믿지 않으니 전혀 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 무서운 것은 무엇이냐, 이어지는 6절과 7절에 나타납니다.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바로 다른 이들에게까지 그 잘못된 진리를 설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연약한 자들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죠.
‘말씀대로 사는 거 좋지. 근데 삶은 현실이야. 너도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야 되지 않겠냐.’
‘잘못하다가는 거지꼴난다. 사람들한테도 무시받고 그렇게 살 수 있겠냐.’
‘세상에서도 인정받아야 말씀을 전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실제 삶에서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의 연약한 믿음을 무너뜨리고, 주님을 주일에 교회에만 계시는 분으로 만들어버리게 됩니다.
그러한 시도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7절처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워도 그것이 나의 삶과 단절되어 있으니, 그저 지식에 그치고 진리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뭘 해요? 다른 세상의 지식을 찾는겁니다. 세상 철학자들의 말을 찾고, 정치인들의 말에 공감하고, 인플루언서들의 말에 위로받고.
왜요? 그들의 말하는 세상의 말들은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성경은 딱딱하고 내 삶하고 와닿지 않지만, 그래서 전혀 딴소리하는 것 같아서 안들어오지만, 그들의 말은 직접적으로 와닿거든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는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볼까요? 8절과 9절을 보면, 바울이 언급하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라는 인물인데요, 이들은 말씀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여러 초대교회의 문헌들과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모세에게 대항했던 마술사들이라고 여겨집니다.
출애굽을 위해 바로 앞에서 여러 기이한 이적을 보이는 모세에게 대항해서 나름대로 마술을 부리며 비슷한 일들을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들은 모세가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면, 비슷하게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고, 마치 랩배틀 하듯이 마술배틀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에는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항복을 하죠.
이 사건은 아무리 세상의 것들로 흉내를 내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능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죠.
그리고 동시에 무엇을 보여주느냐, 진짜는 결국 드러나게 된다. 증명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이 사건을 오늘 말씀에서 언급한 것도 이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이야기들이 진리와 같고,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 같이 느껴질지라도, 그것은 진리를 흉내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밈중에 ‘대륙의 무엇무엇’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뭔지 아시나요?
중국이 한창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 워낙 짝퉁을 많이 만들어서 팔다보니, 별 이상한 것들까지도 짝퉁으로 만든다면서 보여주는 밈이었죠.
진짜 별별 이상한 것들도 많았는데, 그 중에 제가 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어떤 것이었냐면, 미역이었어요.
보통 미역을 팔면, 건조시킨 상태로 팔거든요? 그래서 그걸 사서 물에 불리면, 건조가 풀리면서 미역이 엄청 불어나고, 그걸로 요리를 해먹게 되는 거죠.
근데, 어떤 사람이 미역을 되게 싼값에 샀는데, 아무리 물에 불려도 불어나지가 않아서 다시 확인했는데, 알고보니 이게 미역이 아니라, 검은 비닐봉지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닐봉지를 어떻게 굳혀서 마치 건미역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런 겁니다. 아무리 비닐봉지를 열심히 굳혀서 사람들이 속아서 살정도로 건미역과 비슷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미역으로 변하나요? 그렇지 않죠.
그 짝퉁들은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요리할려고 불리는 순간 비닐의 모습을 드러낸다는거에요.
세상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집니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진리인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진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고 대적하게 만듭니다.
‘말씀이 뭐가 중요하냐, 좋은 이야기긴 한데, 그건 그때만 적용되는 거지.’
‘그 고대시대때 이야기가 지금하고 맞아? 지금은 현대인데, 당연히 다르지.’
‘말씀이라고 다 맞겠어? 지금 상황을 살아보지도 않았을텐데.’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 자신들이 말하는 것들이 적합하고 유용한 것처럼 주장하고 따르도록 합니다.
신앙인의 삶과 현재의 삶을 나눠놓고 말씀은 현재의 삶과 맞지 않으며, 현재의 논리를 따라야 맞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맞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정말 그 논리대로 살아갔더니 당장 삶이 좋아지거든요.
하지만 오늘 본문 9절은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열심히 마술로 흉내내더라도 결국 두손들고 포기한 것처럼, 세상의 방식도 결국에는 그들이 조잡한 유사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이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디모데와 교회에,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냐. 말세의 때에 나타날 세상의 진리들, 특히 경건한 것처럼 모양만 갖추고 실제는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잘못된 것들로부터 돌이키라는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잘 보고 피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죠. 그 잘못된 것들, 경건의 모양만 갖춘 진짜 무서운 적그리스도가 뭐냐는겁니다.
차라리 신천지 통일교같이 딱 드러나는 것들을 말한다면 보고 피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앞서 본 것처럼 오늘 말씀은 그걸 말하고 있지 않아요.
경건의 모양은 갖췄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면 우리 성도들중에 누구일까요? 우리안에 숨어든 프락치, 마피아들을 찾아야 할까요? 우리 안에서 마피아게임하듯이 서로 찾아내야할까요?
아니요. 그럼 결국 정죄밖에 남지 않겠죠.
그럼 대체 바울이 돌아서라는 그 존재는 대체 뭐냐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릴까요? 그 정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자. 다시 한번 바울이 이야기했던 그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볼까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부모 거역하고 이런 다양한 모습들, 여러분에게 해당되지 않나요?
그래요.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잖아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적그리스도가 될 수 있냐는겁니다. 앞뒤가 안맞잖아요.
맞아요. 언뜻 보면 앞뒤가 안맞죠.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서만 나타나지 않아요. 말씀에 수없이 등장하는 모습들입니다.
말씀을 겉으로만 지키고 속에는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있죠?
그렇죠. 예수님하고 맨날 싸우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그들이 그랬죠.
그들만 그랬을까요? 아니요. 또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바로 근처에 있었던 열두제자들도 사실 그랬습니다.
앞에서는 예수님 잘 따르고 예수님 아니면 죽음을 각오할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당신 그러면 안된다고 다그치기까지 했죠.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는 베드로 앞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결국에는 예수님의 뜻에 대적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은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무엇이 그들을 적그리스도로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안에 옛사람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열심히 지키면서도 예수님과 매번 부딪쳤던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말씀의 메시야가 예수님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메시야는 민족을 구원할 메시야였죠.
열두제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역시도 예수님이 자신들의 민족을 구원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 마음에 가장 사랑했던 것은 하나님과 이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국가와 민족, 그리고 그 안에서 누릴 자신들의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모습 가운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인 스스로 말씀을 따르겠다 다짐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고백 속에 나타나는 주님은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주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주님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맞지 않다면,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고 거부하고 대적하고 말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 안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러한 모습은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열두제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안에는 주님이 아닌, 나 자신, 재물, 명예와 같은 것들이 주님의 자리를 뺏어 앉고 있다는 말이 되겠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만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확신하나요?
유대인들도, 열두제자도 동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지키는 자들이라 생각했고, 열두제자들은 자신들만이 예수님 우편에 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과는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아닌 오히려 적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죠. 오늘 본문이 말하는 대로 항상 배우고 열심을 다했지만 진리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요. 이제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적그리스도가 바로 우리 스스로라는 것을 알겠어요. 그러면 이제 문제의 핵심에 나아가야죠. 어떻게 돌아서느냐. 나를 괴롭히는 나 스스로의 모습, 그 적그리스도로부터 어떻게 돌아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유대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의 예수님을 향한 질문과 예수님의 답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 진리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듭나야 그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바로 거듭남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우리 안에 있는 적그리스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거듭남이란 뭘까요. 우리 안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간단하게 말씀드리면요, 이전의 나. 적그리스도 같은 나는 완전히 죽고, 새로운 나. 경건의 모양뿐만 아니라 경건의 능력도 믿는 새로운 나로 완전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우리를 그의 능력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결국 뭐에요? 오늘 바울이 말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뭘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이 하실 거니까 그 사실을 믿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분명히 지금 세상은 말세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며 자기애와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어쩌면 그 안에서 헤메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께 택함받은 우리를 주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내 안의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온전한 경건을 행하는 진정한 성도의 모습을 가지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생각과 시선 속에서 세상의 적그리스도들이 답인 것 같고, 진리인것 같아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진짜 진리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하임공동체 모두가 그 사실을 신뢰했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로 경건을 행하기 위해 겉치레로 경건의 모양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주님을 신뢰함으로 우리 안에서 경건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여러분, 혹시 거짓 진리들 때문에, 그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것 때문에 미래가 불안하고 걱정이 되시나요?
여러분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그들의 어리석음, 그들의 모순, 그들의 거짓됨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치며 주의 오실 날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가짜는 진짜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바로 그 진짜입니다. 여러분 안의 진짜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모두가 힘들다고 말하는 말세를 소망함으로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귀한 하임공동체 한사람 한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