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1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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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예배의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크신 사랑과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다들 연휴 잘 보내셨나요? 힘들었던 시험기간을 잘 마치고 꿀맛같은 5일간의 휴식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모두가 그랬듯 5일이 아니라 5초같이 지나갔을 것 같긴 하지만요.
꿀맛같이 쉬고 나니 이제 현실이 다가오고 있죠? 제가 듣기로 수목금 시간동안 중간고사 점수확인을 했다고 들었는데, 참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13기 고3들은 모의고사를 봤다더라구요. 참 연휴 끝나자마자 또 이런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요. 다들 고생많으셨을테니 함께 서로에게 인사를 해줄까요? 모두 수고했어!
정말 다들 수고많았습니다. 뭐 이제 곧 체육대회도 있고, 좀더 있으면 우리 하임 체육대회도 있으니 5월의 시간동안 그래도 조금은 즐겁고 활기차게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할텐데요, 오늘은 새로운 성경 말씀을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편의 말씀인데요, 시편은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여러 인물들의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시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본 119편은 교회를 좀 다녀본 친구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유명한 시편의 말씀입니다.
혹시 어떤 것으로 유명한지 아시나요?
그렇습니다. 바로 가장 긴 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성경이죠. 여러분들 성경책 가지신 분들은 보시면 아시겠지만, 총 176절인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통독을 할때, 시편까지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좀 힘들게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매일 5장씩 읽기로 했는데, 한장이 176절이다보니까 속에서 이거 어떡하지 고민부터 드는 순간인 것이죠.
그래서 때로는 왜 이 말씀이 이렇게 긴거지? 궁금하게 될텐데요,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119편의 시가 어떤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마 좋은 성경책은 그 표시가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 시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단어를 넣어서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말 알파벳은 ㄱ 부터니까 이런거에요.
그가 나에게 걸어온다.
가림막을 걷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
고고한 그의 걸음걸이
나는 그가 좋다.
눈 속에 그를 충분히 담고 싶다.
낮에도 밤에도 그를 보고 싶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더 깊게 더 많이 그를 알고 싶다.
둘도 없는 그를.
이런 식으로 알파벳 별로 길게 기록을 하다보니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이 119편은 그러한 형식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는 시인의 하나님을 향한 굳은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 본문은 그 중에서도 멤이라는 알파벳과 눈이라는 알파벳을 넣어서 표현한 부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부분의 말씀을 보면서 시편의 시인이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인 97절부터 시인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백일까요? 바로 사랑고백이죠. 주의 법, 즉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씀을 사랑하기에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린다고 말합니다. 말씀이 너무 좋아서 매번 중얼중얼 말씀을 읊조린다는 거에요.
그리고 이어서 또 어떤 말을 하나요? 자신이 사랑하는 말씀이 나와 함께 늘 있으므로 말씀이 자신을 원수보다 지혜롭게 한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에요? 내가 말씀을 사랑하는데, 그래서 같이 있으니 말씀이 나를 지혜롭게 한다.
말씀이 자신에게 지혜를 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계속 그 지혜를 찬양하는데요, 말씀으로 인해 명철함이 모든 스승보다도 낫고 많은 노인들보다도 낫다고 말합니다.
자 우리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얻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따르면 우리에게 지혜가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모든게 밝혀졌어요. 여러분들이 시험을 못본 이유는 말씀을 안 읽었기 때문입니다. 면학시간에 수능특강 말고 성경책 봤으면 시험 잘봤을텐데. 그렇죠?
뭐 진심으로 들으신 분들은 없으시죠? 당연히 농담이죠. 물론 시인의 고백대로 말씀을 읽고 따른다면 지혜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지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시험을 잘보는 지능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냐. 성경의 수많은 지혜가 담겼다고 알려진 잠언 말씀을 볼게요.
잠언 9:10 NKRV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의 근본이 뭐래요? 여호와를 경외하는거래요. 그리고 어떤 것이 명철이래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래요.
그렇습니다.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지혜는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죠? 말씀을 사랑하여 읽고 묵상하고 따라하면 말씀이 항상 나와 함께하기에 하나님을 잘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잘 경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그래서 이어지는 101절과 10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잘 알고 경외할 수 있기에, 악한길로 가지 않고,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시인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4절에서도 명철하게 되어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결국 말씀을 잘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모든 악한 길에서 떠나 주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씀을 사랑하여 자신에게 나타난 이 모든 모습을 바라보며 103절의 고백을 합니다. 말씀의 맛이 어찌 단지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말씀이 정말 꿀과 같이 단가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만 말씀을 읽다가 너무 달아서 단잠을 자지는 마시구요.
자. 그렇게 시인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의 고백을 한 이후에 또 105절의 고백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이건 어떤 이야기일까요. 말씀이 내 발의 등이라는데, 발의 등하면 뭐가 생각나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발등이 좀 높아가지고 캔버스 같은 신발은 못신고 이런 볼이 넓은 신발을 신는데, 이런 발등을 이야기할까요? 아니겠죠.
여기서 말하는 내 발의 등은 등불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보통 이 당시에 등불을 쓰게 되면 이런 식으로 기름으로 불을 붙여서 들고다닐텐데, 그러면 어디만 보일까요? 내가 불을 들고 있는 주변만 보이게 될거에요. 그럼 결국 발 근처에만 불이 보이게 되겠죠. 그것을 가지고서 바로 내 발의 등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럼 왜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등불을 비추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길을 선택해 걸어가듯이, 말씀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해준다는 것이죠.
그럼 내 길의 빛은 어떨까요? 이것은 넓게 자신의 인생길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인생길을 말씀이 비춰주기에, 내가 어떠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 방향과 목적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결국 종합하자면, 시인은 말씀이 나의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앞으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라고 고백을 한 것이죠.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길을 결정합니다. 어떻게요? 106절. 의로운 규례들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말씀을 사랑하는 시인은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어 자신의 길을 말씀을 더욱 지키는 길로써 걸어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자 그런데, 바로 다음 107절에서 이 시인의 상태가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이에요? 고난이 매우 심하다고 합니다. 그냥 심한 것도 아니고 매우 심하대요. 정말 쉽지 않은 상황에 이 시인이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주세요. 나를 구원해주세요. 이 고난으로부터 건져주세요.
내가 구하오니 내가 주님께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주님의 공정함을 내게 보여주세요.
내 생명이 늘 위태롭고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함정도 파고 있지만, 저는 말씀을 잊지 않고 떠나지도 않았습니다.
이 부분만 봐도 이 시인이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는지를 볼 수가 있죠. 사실 자신이 너무나도 쉽지 않은 고난의 길에 있으면, 말씀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바라보고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시인은 너무 사랑하다보니 더욱 말씀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11절에서 시인의 놀라운 고백이 나타납니다. 111절 뒷부분 하반절을 보시면, 내 마음의 뭐가 된대요? 즐거움이 된다고 표현을 하고 있죠.
놀랍습니다. 여러분. 방금 이 시인이 처한 상황이 어떻다고 했었죠? 매우 심한 고난에 처해있었죠. 심지어 목숨이 늘 위태롭고, 곳곳에 적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파놓은 그러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시인이 뭐라고 했다고요? 즐거움이 된다고 표현을 합니다. 즐거움. 즐겁대요. 놀랍지않나요?
무슨 인생을 게임처럼 생각해서 이거 아주 하드모드구만, 내가 이 함정들을 다 파훼해주지. 뭐 이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자신의 인생이 당장 끝날 수도 있는 고난의 상황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느냔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이 시인이 고난 중에서 즐거워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그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일단 먼저 이 시인이 처한 고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봅시다.
사실 그래요. 여러분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구요. 시인이 앞서 말씀을 어떻게 생각했죠?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말씀으로부터 뭘 얻는다고 했죠? 지혜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을 알 수 있어요.
자. 그럼 여러분. 이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할 것 같아요? 한번 추측해봐요.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는 이 시인. 삶이 평온하고 행복해야 할까요? 아니면 고난이 넘치고 불행해야 할까요? 당연히 우리는 전자라고 생각을 할거란 말이죠.
하나님은 말씀 잘 따르면 복 주시는 분인데, 당연히 말씀 사랑하고 잘 따르니까 복이 있어야될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런데 현실은 어땠어요? 불행했어요. 아니 고난이 너무 극심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이게 아이러니라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어때요? 여러분들의 삶도 생각해보자구요.
여러분 왜 교회다녀요? 물론 부모님 따라서 다니고 하긴 하겠지만, 지금 여러분 곁에 부모님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왜 이 자리에 왔어요?
어쩌면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들었던 말씀들 중에, 믿음생활 잘하면 복이 있을 거야. 하나님이 함께해주실거야. 이런 이야기를 한번 듣고, 아 교회를 잘 나가면 뭔가 좋은 일이 있겠지. 열심히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면 나에게 좋은 성적이라는 복을 주시겠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요?
그러면 어때요? 하늘고 생활하면서 그 성적의 복 누리셨나요? 누리셨다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아요.
오히려 신앙생활하니까 더 힘들죠. 왜? 하지 말라는 게 많아. 괜히 말씀 열심히 읽었더니 이것도 하면 안되고, 저것도 하면 안되고. 괜히 마음만 찔려.
그리고 그것 외에도 애초에 하늘고 생활 자체가 고난이 될 때도 많겠죠. 공부도 잘 안되는데, 면학실에서 쟤는 왜 저러고 있는지. 왜 쟤랑 쟤는 만나서 연애질이나 하는지. 정말 수많은 고난들이 존재해요.
그래서 우리는 주로 어떤 마음을 갖죠? 주님 저 너무 힘들어요. 고난이 날 너무 힘들게해요. 이거 빨리좀 어떻게 해주세요. 복 주신다면서요. 왜 안주시나요.
이게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 고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거에요.
그런데 오늘 시인은 어떤 모습을 보였다고요? 즐겁대요.
오 주님, 제가 좀 고난이 많아요. 어제는 잠깐 물마시러 갔는데 화살 맞아 죽을 뻔했구요, 그저께는 발을 헛딛어서 넘어졌는데, 알고보니 그 옆에 부비트랩이 있더라구요. 근데 저는 지금 말씀 잘 지키고 하나님이 저랑 함께하시는 걸 알고 있으니 너무 즐겁네요.
여러분. 어떤가요?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해 보일 정도로 우리와 모습이 정반대입니다. 대체 뭘 먹었길래, 저런 죽음을 앞에 둔 고난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불법적인 어떤 약을 먹지 않는 이상 저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여러분. 이 시인의 이러한 고백들이 나올 수 있는 비결.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가 읽었던 본문 맨 첫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시편 119:97 NKRV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그렇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말씀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었던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도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실래요? 저도 말씀 사랑하는데요?
그렇죠.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에 말씀 미워하는 사람 있어요? 말씀을 막 증오하고 보기도 싫고 있어요?
그러면 뒷문으로 나가주시면 됩니다.
없잖아요? 맞아요. 여러분들도 말씀 사랑할거에요. 그런데 왜 우리는 저 시인처럼 고난을 즐길 수가 없는 것일까요.
자. 그럼 우리가 이 시인의 말씀을 사랑하는 모습을 다시 봅시다.
시인은 말씀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씀이 지혜를 주고 나의 길을 밝혀주고, 그래서 나는 말씀을 따르기로 정했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잘 한번 유심히 살펴보자구요. 그러면 이 시인은 말씀이 자신에게 지혜를 주고, 길을 밝혀줘서. 그래서 말씀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가요?
그렇지가 않다라는 거에요. 그가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게 아니에요.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저 말씀을 사랑하는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뭐냐. 시인은 말씀이 말씀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입니다. 말씀이 어떻기 때문에, 말씀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냥 말씀 그 자체로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오히려 말씀을 더 잘 붙들도록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이 다가오면 더 말씀을 열심히 읽고 붙잡게 될테니 그것이 더 기쁜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 고난의 상황을 즐겁다고 표현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죠?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말씀을 따르면 분명히 복이 있어야 하는데, 왜 복이 없지? 왜 고난이 오지? 지혜가 주어진다는데 왜 이렇게 이겨내는 것이 힘들지?
어떤 부분이 이상한거에요? 말씀을 따르는데 고난이 오는 것 자체가 이상한거에요. 그러면 우린 말씀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요?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지혜가 있으면 악한 길에 안간다. 곧 말씀은 악한길을 가지 않게 해주는 것.
말씀을 사랑해야겠다! 이런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말씀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말씀이 주는 효과들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에 관심이 더 많았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실제 현실에서 삶에 고난이 닥치니 어떻게 되요? 우리가 생각했던 삼단논법. 말씀을 읽으면 악한 길을 안가! 라는 명제가 깨어지니까. 어디까지가요? 말씀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왜 신앙생활을 하는가. 말씀이 좋아서? 하나님이 좋아서?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말씀을 읽고 하나님 잘 믿으면 이럴거래! 라는 그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는가? 성적, 친구, 돈, 명예 이런 것들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러분. 주님은 그러한 신앙생활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신앙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들도 그 자리는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임공동체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도로서 살아가고 싶다면, 다른 거 사랑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을, 그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 말씀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그 어떤 적들도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이 발에 등이 되시고 길에 빛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앞길을 밝혀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즐거워할 수 있고, 우리의 미래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효과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말씀을 사랑하여 주님의 함께하심을 누리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모든 우리 하임 공동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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