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4) 부르심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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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로마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심오하고 영향력 있는 책으로 꼽힙니다. 이 한 권의 책이 기독교 사상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고, 수많은 이들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인 야콥 슈페네는 “성경이 반지라면, 로마서는 그 반지에 박힌 귀한 보석”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때는 주후 57년경,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 머물며 그의 3차 전도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복잡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진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곳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이방 교회들의 헌금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이 헌금은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 간의 연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다른 한편, 그의 시선은 이미 서쪽,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당시 땅끝으로 여겨지던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로마는 단순한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장되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일찍이 그는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어느 한 민족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교회 세계 교회로 거듭나는 웅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기로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한 로마가 그 비전에 있어서 지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들이었지만, 바울은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라고 말할 만큼 깊은 애정과 영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로마서는 단순한 안부 편지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방문과 서방 선교라는 두 가지 큰 사명을 앞두고, 바울이 자신의 신학과 복음의 정수를 집약하여 제시하는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는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나아가 그들을 세계 선교의 동역자로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토록 장엄한 배경 속에서 기록된 로마서의 첫 문장, 그 첫 단어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4절 말씀을 통해, ‘부르심을 받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자 합니다. 바울이 로마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서바나를 향한 비전을 품었던 그 모든 동력과 정체성이 이 짧은 구절 안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1. 종,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여기서 ‘종’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고용된 일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래의 뜻은 자신의 의지나 권리가 없이 전적으로 주인에게 소속된 존재, 주인의 뜻에 따라 살고 죽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현대 사회에서 ‘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갖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누구에게 예속되는 것을 꺼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기꺼이, 자랑스럽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선언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속박되고 묶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의 그 어떤 속박으로부터의 참된 자유를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죄의 종이었던 옛사람에서 벗어나, 사랑과 은혜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은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 가치관 전체를 결정하는 핵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입술로는 주님을 주인이라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돈의 종으로, 성공의 종으로, 쾌락의 종으로, 혹은 자기 자신의 욕망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사용하는 우선순위가 우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증명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주로 섬기면 다른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대한 소망을 품었던 것도, 예루살렘의 위험을 감수하려 했던 것도, 지금 이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모든 생각과 계획과 행동의 중심에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의 삶의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고, 그 주인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목적이 이끄는 삶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부르심, 삶의 특별한 이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되고 지명되었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에 의해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는 문자 그대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특별한 목적으로 사명을 주어 보냈다는 어감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권위 있게 전달하며, 교회의 기초를 놓도록 보냄 받은 이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특별히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의 부르심은 명확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이 땅에 아무런 의미 없이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향한 독특한 부르심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바울과 같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떤 이는 교사로, 어떤 이는 사업가로, 어떤 이는 예술가로, 어떤 이는 가정주부로, 어떤 이는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부르심은 단지 직업이 무엇이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이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의 뜻을 이루도록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연히 그곳에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여러분은 지금의 가정, 지금의 직장, 지금의 교회, 지금의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 부르심의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의 일상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거룩한 소명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기 원하시는지 묵상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택정함, 복음을 위한 거룩한 구별

바울은 이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말합니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본래 ‘분리하다’, ‘구별하다’, ‘따로 세우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레위인들이 성전 봉사를 위해 특별히 구별되었듯이,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다른 목적들로부터 구별되어 따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택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목적 안에서의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아니 창세 전부터 이 사명을 위해 예비되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갈 1:15 참조). 이 ‘택정함’은 그에게 특권의식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르심에 대한 깊은 책임감과 헌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복음의 빚을 모든 사람에게 갚아야 할 자로 여겼습니다 (롬 1:14).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택정함을 입은’ 존재들입니다 (벧전 2:9). 이 택정함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고 따로 떼어 구별했다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 즉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고, 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택정함’의 의미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추구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어떻게 우리가 ‘택정함을 입은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자리에 부르시고 택정하신 이유가 있을진대, 우리는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며 그 구별됨을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처럼, 우리의 삶이 복음을 위해 구별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전히 드려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복음, 영원한 계획의 성취와 나의 자리

본문 2절부터 4절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요약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사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그분의 사역,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의 장구한, 아니 영원한 계획과 경륜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입니다. 다윗의 혈통을 따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인성),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되신 예수님(신성), 이분이 바로 우리 복음의 중심이요, 우리 신앙의 전부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치밀하고 장대합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역사, 선지자들의 예언,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나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작고 미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영원한 계획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그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우연의 연속이거나 무의미한 조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드라마에 참여하는 소중한 한 부분이며, 그 안에서 우리 각자의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순종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데 기여하며, 우리의 삶 전체가 그분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뜻, 말씀과 기도로 발견하는 소망

바울은 이처럼 자신을 부르시고 택정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그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의 근원이었습니다. 서두에서 보았듯이,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험난한 여정과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가려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소망과 계획은 개인적인 야망이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순응이요, 그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자신의 소망과 일치시킬 수 있었을까요? 끊임없는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구약 성경에 정통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점검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내 삶을 향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단번에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다 파악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때로는 세미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잘 생각하야 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소망을 그분의 계획과 정렬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세상적인 성공이나 안락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며 나도 그렇게 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거룩한 소망으로 변화될 때, 우리는 바울과 같은 담대함과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고백했던 바울처럼, 우리를 부르시고 택정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는 능력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로마서 1장 1절에서 4절 말씀을 통해 바울 사도의 자기 정체성과 사명 선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영원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부르심은 바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복음을 위해 살아가도록 택정함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 택정함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작은 삶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의 일부임을 믿고 있습니까?
바울이 로마를 향한 편지를 써 내려가며 품었던 그 뜨거운 심정과 비전이 오늘 우리에게도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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