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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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지난 주에 새사람을 입은 사람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에 25절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라는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지요.
우리는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세상의 거짓된 지식을 버리고, 완전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 나누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누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영화, 드라마, 정치, 경제 어떤 대화를 나누어도 결국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보고 또 적용하며 사는 것이 새사람을 입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여 참된 것을 말하는 복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그 다음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분을 내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분낸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분을 내지 않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돈을 바꿔주고 제물을 위하여 장사하는 자들을 보시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들이 예배의 본질을 왜곡하고, 형식적인 예배 분위기를 조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전에는 반드시 세겔이라는 유대인 돈으로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온 사람들은 로마의 돈을 가졌기 때문에 성전에서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갈 때에 그 나라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그 나라 돈으로 환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 동물제사를 드릴 때에도 흠이 없는 것을 드렸어야 했는데, 멀리서 동물을 데리고 오다보면 자칫 동물이 다치거나 몸에 문제가 생겨서 제물로서 드릴 수 없게 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앞에서 그런 흠 없는 동물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와 같은 좋은 마음으로 시작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보다는 습관적이고 종교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들을 돕기 위하여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위하여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결국 예배가 돈벌이 수단이 전락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해도 됩니다. 세상의 불의한 일들을 보면서 분노를 억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잔학하게 학대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사람을 학대하거나 평화를 깨뜨리거나,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또한 필요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분노는 그 모든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분노가 죄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학대하는 악인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나, 그 사람을 똑같이 학대하거나 그 보다 더 가혹하게 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죄라는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는 분노하게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상대방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부주의한 말한마디에 상처를 입었다고 상대방을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영화인데, 짤막한 홍보 영상을 보았습니다. 주차 문제로 서로 시비가 붙었는데, 한 쪽 남자가 여자에게 미안하다고만 하면 아무일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하냐며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을 거기까지인데, 암시하는 것은 그 남자로부터 어떤 해꼬지를 당한 것 같습니다. 바로 우리의 분노가 죄를 짓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분노가 죄를 짓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망입니다. 또한 그것은 관계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 인하여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여 죄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관계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바로 거기가 사망의 자리이고 지옥의 자리인 것입니다.
분을 내어도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만약에 해가 지도록까지도 분을 품고 있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틈을 준다는 것은 기회를 선사하다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선사하다 바치다라는 뜻을 가진 것입니다.
분을 해가지기 전까지 풀지 않고 품고 있는 것이 바로 마귀에게 죄를 지을 기회를 선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마귀에게 선물을 주고 싶으신가요? 마귀에게 좋은 기회를 나누고 싶으신가요?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분을 해가지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먼저 자신에게 선포하십시오. “용서해라”
먼저 자신에게 선포하십시오. “용서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용서해라” 이것을 되뇌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분노를 다스려 주옵소서.
때로는 실패할 것입니다. 분노가 사라지거나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도 계속 기도하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 분노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또한 분노가 마귀에게 틈을 주어 죄로 연결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 과정은 끊임 없이 자신의 분노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것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25절에서 말한 참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말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나 부모, 자녀에게 분노가 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나 다른 지체들에게 분노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노가 죄로 연결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분노가 거룩한 분노가 되어, 정당한 분노라면 상대방을 섬김으로서 변화를 가져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연결어진 분노는 공동체를 깨뜨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