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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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11:25-26(신약 110쪽)
설교제목: 부활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부활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에서 참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갖게된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말해 부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부활을 아는 것 참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뭘까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부활은 새 창조의 사건입니다. 이는 부활은 단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보면, 나사로, 야이로의 딸 등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납니다. 성경은 그것을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활은 생명이 연장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으면 지금의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 부활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부활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이 될지 모릅니다. 특별히 현재의 삶에 불만족을 가지고 있거나 고통을 앉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현재의 삶이 영원하다는 것은 저주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부활은 이와 다릅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또는 새가 알 속에 있을 때,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을 때, 새가 알을 깨고 나왔을 때 보다 크고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부활도 이처럼, 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실 부활은 신비입니다. 신비라는 말은 감춰져 있다는 뜻인데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 밖에 있는 것입니다. 도무지 뱃속에서 알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활은 아직은 감춰진 것이고 짐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부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은요. 성경이 부활에 관해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해 보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100%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높은 분이시고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이십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마치 개미가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은요.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로써 우리가 부활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고 제대로 알수도 없음에도요. 성경이 말해주는 것을 통해 부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새롭게 창조되는 것입니다. 창조란 없는 것에서 만들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부활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창조된다는 것은요. 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요.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에 특별한 몸을 지니신 것을 봅니다. 가령, 잠긴 문을 통과해서 제자들 숨어 있던 장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렇다고 육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물질 이상의 몸을 지니셨음을 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변화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려워서 문을 걸어잠그고 숨어지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변화하였습니다.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고요. 예수님이 참 신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일로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음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 당당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그들을 박했던 이들이 변화되었고요. 아주 소수에 불과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에는 전세계에 손꼽힐만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믿게 된 이들은 변화된 삶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은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믿음으로서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죽음이 모든 것에 끝이라면 현재의 우리의 삶은 고통과 고난으로만 이해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현재의 삶이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고요. 실상 세상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가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혹은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것을 내가 정할 수도 없는데, 태어난 환경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면 또한 그것이 죽을 때까지 변함없거나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그렇게 허무한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넘어선 세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요? 또한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공평과 정의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세계를 사모하고 그 세계를 기다리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주장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현재의 삶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꿈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을 믿고 살아감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요. 죽음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것은 현재의 삶이 연속되거나 지속되는 상태가 아닙니다. 현재의 문제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와 상태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꿈꿔왔던 이들의 삶이 있습니다. 유명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나치 독일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시도를 모의하다가 체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함께 있던 이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입니다. 그에게는 부활에 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하고 포악한 권력자에게 항거하고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목회자였던 마틴 루터킹 주니어는요. 흑인과 백인들의 갈등과 흑인에 관한 차별이 심했던 시절에요. 약자였던 흑인들의 편에서 흑인들의 인권을 변호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멤피스 설교가 있던 날 그는 모인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 눈은 이미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의 설교가 어떤 위험과 파장을 일으킬지 그는 짐작했습니다. 실제로 다음날 그는 반대자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 역시 앞선 본회퍼처럼 죽음을 넘어선 부활신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는요. 1919년 3.1운동을 하다가 붙잡혀서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도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죽어도, 민족은 다시 일어납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 말은 기독교 신앙에 바탕이 되었던 것인데요. 그는 일찍이 기독교학교에서 복음을 들었고 개인의 부활을 넘어 민족의 부활을 믿고 꿈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다릅니다. 그 인생 속에는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삶이 사실 후대에 꽃을 피우고요. 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본회퍼, 마틴 루터킹, 유관순 열사 등의 헌신이 독일과 미국과 한국이라는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모두 유관순, 마틴 루터킹, 본회퍼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신앙인으로써 죽음을 넘어선 삶을 꿈꾸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그저 현실의 삶에 이리저리 치여서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기보다는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세상과는 다르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모두가 그와 같은 삶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부활을 믿음으로 남은 삶의 시간을 죽음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가시고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쫓아 세상과 다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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