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2. 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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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여호수아 2:1-6(구약 321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2. 라합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라합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라합을 기생으로 소개합니다. 사실 이는 꽤 점잖게 그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성매매하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어적 의미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에게 성매매 여성의 이미지는 어떻습니까? 사실 그렇게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합이 활동했던 당시 시대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여성의 지위가 낮았으며 여성의 인권이 무시되던 그 시대에 성매매 여성은 더욱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경은 라합을 믿음의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입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 하였도다” 또한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에도 라합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다시 말하면, 성경은 라합을 우리가 본받아야할 신앙인으로 믿음의 선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라합은 성매매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신앙인으로 성경에 기록될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때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약속의 땅 곧 가나안 땅으로 향해 나아갑니다. 여호수아는 그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정탐하기 위해 정탐꾼 둘을 선발하여 여리고 성으로 보냅니다. 두 명의 정탐꾼은 라합의 집에 숨어들어 정탐하던 중에 그들의 정체가 탈로납니다. 여리고 왕은 사람들을 보내어 라합의 집에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을 잡아오게 합니다. 이제 두 정탐꾼의 목숨이 라합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넘겨주면 정탐꾼은 죽은 목숨입니다.
그때 라합은 이렇게 행동합니다. 왕의 신하들에게 정탐꾼을 넘겨주지 않고 그 정탐꾼들을 숨겨줍니다. 더욱이 왕의 신하들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서 정탐꾼이 위기를 넘겨 도망갈 수 있도록 합니다. 라합의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좀더 생각해 봅시다. 앞서 얘기했듯이 라합은 당시로써는 매우 부정적이며 그로 인해 매우 소외되고 비천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와 전혀 다른 신분의 존재들이 나타납니다. 왕의 신하지만 왕을 대리하는 이들이므로 왕과 같은 위엄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들을 돕는 것과 거역하는 것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세요. 왕의 신하들을 거역하는 것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협조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하면,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큰 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왕의 신하에게 협조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는 매우 어리석게 스스로를 큰 위험에 빠트리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합의 선택은 정탐꿈을 보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살림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라합의 행동이 무엇이었는지를 왜 성경은 그를 본받을 만한 신앙의 위인으로 소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라합의 행동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이러한 라합의 모습으로 인해 그가 예수님의 족보에도 올라갔음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라합의 행동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많은 생명을 살리셨으니 말입니다. 물론 라합은 예수님처럼 목숨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훗날 여리고 성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라합의 행동에는 목숨에 위협을 받을 만한 매우 희생적인 선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결국,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인의 모습은 이러합니다. 라합과 같이 생명을 살리는 것에 관심하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이며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따라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습니다. 과연 라합의 행동은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요? 무슨 말이냐면, 라합의 행동을 단순화 시켜보면, 그는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아홉번째 계명은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인데요. 라합은 사실 거짓말을 했으니까요. 이 아홉번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십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어긴 인물의 행동을 신앙적으로 본 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도 이해해 볼 수 있죠.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을 도왔기 때문에 그의 거짓말이라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고요? 만약에 라합의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 것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것을 마냥 좋고 본받을 만한 행위로 여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라합과 같은 편에 있으니까 라합의 행위를 아무런 문제 없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여리고 성에 사는 사람들에게 또는 여리고 왕의 입장에서 라합은 사실 나라를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위험한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협에 빠트린 것이 아닌가요? 더군다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십계명까지 어기면서 말입니다.
사실 이것이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쩌면 라합이 우리편이니깐 그의 행동에 관해서는 이렇게까지 따져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따져보니까 어떠십니까? 그의 행동이 과연 참으로 옳으냐하는 것에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사실 이것이 성경의 난제이기도 한데요. 이에 관해 성경 연구가들의 설명 중에서 참고할 만한 것은 이러합니다. 라합이 거짓말을 한 것은 맞지만, 라합의 거짓말이 생명을 살리는 것에 쓰였기 때문에 라합의 거짓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할 때요. 이집트 왕이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를 불러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아이를 낳을 때, 남자 아이면 죽여버리고 여자 아이면 살려두라고요. 마치 라합에게 왕의 신하들이 찾와서 얘기한 것처럼요. 가장 높은 신분의 왕이 비천한 산파에게 지엄한 명령을 한 것이죠. 그런데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서 왕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를 낳아 버린다고요. 그래서 왕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노라고요. 성경은 이러한 산파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서 라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십브라와 부아라는 산파의 거짓말의 경우에도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시고 심지어 성경은 그들의 행위를 본받을 만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거짓말을 해도 괜찮냐? 십계명을 어겨도 죄가 아니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거짓말을 통하여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고 어떤 목적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더욱이 생명을 살리는 것에 관계되어서 거짓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더 크고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과 마찰을 일으킬지라도 더 크고 중요한 가지를 지키는 것이 더 높은 우선순위를 지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요. 율법의 여러 조항들을 잘 지키는 일이 아니라요.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는 가치들을 힘써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결국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을 본받는 것인데요.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처럼요. 나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라합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그 사랑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라합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지요?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이 참으로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인 사랑의 실천을 이루고 있는지요? 오늘 내 삶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리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사랑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