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게 하러 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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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바리새인인과 서기관들의 의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노하면 살인하는 죄와 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분노와 살인을 동일한 것으로 보신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형제에게 분노하지 말 것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분노와 살인을 같은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는 구절은 없다. 하지만 분노함으로 형제를 죽여+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 창세기에서 형 가인은 동새 아벨에 대해서 분노하게 된다. 그가 분노하게 된 이유는 동생인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분노를 아벨을 죽이게 된다.
(가인과 아벨 사진)
창세기 4:3–8 NKRV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이를 통해 형제에 대한 분노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으로 이어 질 수 있으며 살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대하여 분노하는 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22 NKRV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분노하는 자가 받는 심판은 23인으로 구성된 지방 재판장에 가서 받는 심판이다. 그리고 형제에게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라가”는 “빈 깡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빈깡통 사진)
예수님은 분노함으로 욕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자는 공회에 잡혀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70명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이었다. 대제사장이 의장이며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장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대법원과 같은 곳이다. 분노함을 넘어서 분노를 욕으로 말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 가게 된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미련한 놈”은 히브리어로 “멍청이”, “제 정신이 아닌 놈”이라고 무시하는 표현이다. “미련한 놈”이라는 욕은 그 당시에 그렇게 심한 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욕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욕적인 욕이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미련한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를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26 NKRV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25:1–3 NKRV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여기서 “어리석은”, “미련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믿는 형제에게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은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
제 친구가 대학생때 여호와의 증인에게 전도를 받은 적이 있었다. 친구가 집에 있을 때 여호와의 증인 사람들이 전도를 하기 위해서 친구의 집에 찾아 와 친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친구가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자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책자를 보여주며 자신들의 교회로 나오라고 했다. 친구는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 그들의 말을 끊고 자신의 집에 있는 쓰레기 봉투를 주면서 내려가는 길에 이 쓰레기 봉투를 버려달라고 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러한 부탁을 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전도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러한 부탁을 했다. 그러자 전도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서 “너는 구원 받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말하며 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한 친구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으면서 넘어갔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어떤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너는 구원 받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 이야기 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큰 충격을 받을 것이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도리어 그 자가 심판을 받아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분노하고 분노함을 넘어서 욕을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세상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시지만 세상의 법정은 그러한 죄를 심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음의 분노를 죄로 인정하고 심판하는 법정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은 하늘 법정에서 주어질 심판을 말씀하신다. 이 심판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재판이다.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22절에서 분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심으로 결국 살인과 분노가 동일한 심판을의 대상임을 말씀하신다. 마음의 분노와 분노함으로 구체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하며 하늘 법정이 부과하는 형벌로서 심판 받고 지옥불에 던져질 죄이다. 형제에 대한 분노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부당하게 빼앗는 것인 살인과 다르지 않다. 지옥불의 형벌은 죄로 인정하지 않고 넘길 수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서, 종교적 위선을 벗어나 “더 나은 의”를 추구하도록 사용된다.
22절에 분노함으로 서로 관계가 깨어진 자들이 경고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화해이다. 마태복음 5:23-26 절은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화해가 중요한 점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즉시 화해를 실행해야 하는 점을 언급한다.
마태복음 5:23–26 NKRV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물을 바치러 가다다 형제가 자신 때문에 뭔가 문제를 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예물을 제단에 올리지 말고 제단 아래에 두고 바로 형제에게 가야 한다. 제단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다. 산상설교가 주어지는 곳은 갈릴리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갈릴리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먼 길을 가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지 않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와서 화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만큼 화해가 중요함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문제가 있는 형제와 화해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예물을 받으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형제를 증오해서 죽인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을 알고도 자신은 예베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결되었으니 상대방의 고통은 이제 그 사람이 해결 해야 한다는 식으로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도 예배를 드림으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거나 없애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하늘 나라의 “더 나은 의”는 작은 죄를 크게 생각하면서 형제에게 겸손히 화해를 요청하는 것이다. 깨어진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나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과 화해하는 것은 에배를 드리는 것보다 중요하다.
25절은 화해가 즉시 이루어져야 함을 말씀하신다. 고소를 당한 사람이 고소를 한 사람을 법정으로 향하는 중에 만났다. 둘은 법정에서 가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법정에 갈 정도로 이미 심각하게 깨어졌다. 26절에 돈이 언급되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가 안 좋아진 것은 돈 때문으로 보인다. 깨진 관계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만일 재판장 앞에 서게 되면 이 사람은 형벌을 피할 수 없고 감옥에 던져질 것이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돈을 갚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 표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이 반응하시고 일하신 것을 말씀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일에 대해서 그가 행한 대로 그 일의 댓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화해를 빨리 이루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예수님은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죄의 심각성을 말씀하시며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를 요구하신다. 하늘 나라의 새 백성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너무자 작게 보이는 무시와 상처가 지옥에 갈 정도로 심각하고 예배보다 먼저 해결 되어야 할 문제임을 깨닫고 실천해야 한다. 죄에서 자유하게 된 제자는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욱 민감해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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