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0. 이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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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 18:17-24(구약 110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0. 이드로
17 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18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19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20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21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2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23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24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이드로라는 인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이고요. 이드로는 모세에게 여러 차례 큰 도움을 준 인물로 등장합니다. 처음 이드로가 모세에게 준 도움은 이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쳐 나왔을 때, 그를 받아주고 그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어쩌면, 이드로의 환대와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집트 왕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이 이드로가 모세에 준 또 다른 도움을 보여줍니다.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기 전에 아내와 자녀들을 장인인 이드로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장인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다시 아내와 자녀들을 데려다 주로 왔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듣게 되고요. 또 한편으로 모세가 행하는 일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 곧 그들 사이의 문제를 판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이드로가 보기에는 이 일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지치게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모세 혼자서 하루 종일 재판을 하는데, 이는 모세를 힘들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재판을 오랫동안 기다려야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힘들게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드로는 재판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울 것을 조언합니다.
그러니까 모세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지 말고 그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사람들 또는 시스템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모세의 수고도 덜고 이스라엘 백성의 기다림도 덜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또 한번 장인의 도움을 통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좋은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이들로 하여금 사명을 주십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그 일을 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긴다고 해서 그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하나님께 사명을 받을 때, 모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형 아론을 보내주셨고 그 일을 함께 행하게 하십니다.
또한 오늘 성경 이야기 속에서는 이드로라는 인물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를 도우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앞선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을 힘입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 곁에는 훗날 그의 후계자가 되었던 수종드는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곁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이뤄가십니다.
이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거나 또는 저와 같이 목회를 한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교회 봉사나 목회를 혼자서 모두 감당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에는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어렵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경험치와 숙련도가 다르기 때문에 자주 마찰음이 생기고요. 또한 혼자 일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제가 그런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과거에 어린이나 청소년 부서담당을 하면서요.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헤내려는 안좋은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거예요. 만약에 수련회를 간다거나 교육활동을 한다고 하면, 혼자서 다 계확을 짭니다. 시간, 장소, 활동 내용 등등을 말입니다. 그러고서 준비된 계획을 가지고 교사들과 의논을 합니다. 사실 그 계획에 관해서 제가 제일 잘 알고 있고 제일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대체로 제가 계획한 방식으로 일이 처리가 됩니다. 그러다 간혹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면, 제 계획과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애를 쓰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요. 저의 짧은 지식과 부족한 경험에 의존하여서 많은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저에게 불행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마치 모세와 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없이 일해야 했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원망하거나 자책하면서 맡겨진 사역을 행함에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일을 책임감있게 잘하게 된 것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곁에 사람이 없게 되고 주어진 일이 계속 버겁게만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은 그것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거나 기뻐하시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함께 이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데요. 저는 그것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세가 사람들의 송사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요. 사실은 그가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서 그분의 뜻을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세로써는 혹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로써는 모세를 붙들고 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모세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착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드로를 통해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이드로가 하나님의 사자로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성경은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이드로를 통해 주신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내 판단과 생각은 모세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한계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것을 너머 역사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드로를 통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방법을 제시해주시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가진 생각에 갇혀 있으면, 그것을 넘어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힘써 행하는 어리석과 잘못을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 곁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하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한계에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보내주신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 됩니다.
제가 이드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좋은 리더는 어떤 사람인가 또 좋은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이드로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면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이드로는 사실은 외부인이고 이방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가 미디안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드로의 이야기는 모세의 입장에서 또는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소수의 의견이거나 우리와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얼마나 개방적인 공동체 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드로의 조언이 당시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없었지만 일찍이 이방 나라들에게는 있었던 제도였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와 다른 것으로 치부하거나 무시했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이방 나라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그것을 옳게 여겨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체의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좀 불편한 이야기 일 수 있는데요. 근래에 담임목사님도 얘기를 하셨지만, 저도 동의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종종 우리 교인들에게서 ‘황등 사람, 이리 사람’이라는 구분을 나누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것이 꽤 이상하게 다가왔습니다. 모두 익산시에 속했으니 따지고면, 모두가 이리 곧 익산 사람이 아니가 했는데요. 신기하게도 같은 이리 사람 끼리도 황등에 사냐 익산 시내에 사냐에 따라 구분하는 것입니다. 더 세부적으로는 황등 안에서도 마을 단위로 구분이 됩니다. 물론 그러한 구분이 단지 사는 지역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런 생각이 묻어 있습니다. 황등 사람은 어떻고, 이리 사람은 어떻다는 생각말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파별을 나누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두 사람 이상만 모여도 파당이 나눠지고 사도 바울 때부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을 보면, 오래된 이야기와 인간의 습성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나누고 구분하는 일이 공동체를 좋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도 그와 같은 파당이 좋지 않음을 이야기 했고요. 오늘 성경이야기를 통해 보건데도 그렇습니다. 외부인이자 이방인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 또한 이것에 있음을 생각합니다. 우리 끼리 좋사오니 여기 초막을 짓자고 하는 순간 우리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입니다. 이드로의 이야기마져 들을 수 있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열린 공동체가 될 때 우리의 미래는 밝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내 곁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보내주신 귀한 이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