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1. 발람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7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민수기 22:21-31(구약 110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1. 발람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발람이라는 인물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발람은 오늘로치면 유명한 무당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무당의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수 있지만요. 물론 예외적으로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생각보다 무당이 영향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게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무당의 역할이 대단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배경이되는 역사 특별히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무당의 역할이 꽤 중요했는데요. 왜냐하면, 발람이라는 무당이 나라의 중대사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등장하고요. 심지어 발람이라는 무당을 나라에 초대하는 인물은 당시 모압 왕이었던 발락으로 소개가 됩니다.
좀 더 보충하자면요. 당시 모압 왕 발락은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나라들을 꺾었다는 얘기를 듣고 긴장합니다. 혹시 자신의 나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전혀 그럴 계획이 없었지만요.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세력으로 느낀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을 꺽기 위해서 당시 유명한 무당인 발람을 나라에 초청하게 됩니다. 참 신기한 것은 발람은 무당이었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였고요. 자신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모압 왕의 요청을 따르지 않겠다고 합니다. 무당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 참 신기한 모습인데요. 그러나 실상 발람은 모압 왕의 물질 공세에 눈이 어두워져서 결국은 자기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며 모압 왕의 초청에 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서 발람이 자신의 나귀를 타고 모압으로 떠나는 장면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는데요. 이 장면은 성경에서 몇 개 안되는 특이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발람의 나귀가 말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는 동물이 말을 하는 장면이 아주 드물게 나오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장면입니다. 성경은 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발람이라는 인물이 어떠한 인물인지를 보게합니다. 겉으로는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처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우지만요. 실상은 돈에 눈이 멀어서 자신의 나귀가 보는 것도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임이 들어납니다.
발람의 나귀는 칼을 든 천사를 보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돌이키려하는데요. 영적인 일을 한다는 발람은 그 천사를 전혀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나귀를 학대하기에 이르자, 하나님은 발람의 눈을 열어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게 하십니다. 그는 나귀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을 깨닫게 돼고요. 나귀 마져도 본 것을 보지 못한 아둔한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발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게 됩니다. 사실 그는 전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사람이었고요.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람의 모습을 통해 욕심이라는 것이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사실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발람에게 모압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21절 이하에서 하나님은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것을 막으십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왜 이랬다 저랬다하시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발람의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천사를 보내셔서 모압으로 가는 길을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발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압으로 떠났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또는 자신의 욕망을 쫓아서 모압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이처럼 욕심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변질시킬만큼 무섭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영적인 일을 한다는 사람이 자신의 나귀가 보는 천사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그 옛날 발람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안의 바람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일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시고 복을 주셨다고 말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그것을 견디거나 참아내기가 힘듭니다. 어쩌면 마치 하나님의 천사가 발람에게 나타나서 그 길을 막으시는 것인데도요.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가려는 발람처럼, 하나님의 뜻은 바라보지 않고 내 고집을 쫓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계속 자신의 계획표를 하나님께 들이밀면서 이렇게 해달라고 요구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면요. 내 고집을 피우거나 내 욕심을 쫓아서 살아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신앙생활도 아닐 뿐더러 삶이 망가지는 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비록 무당이었음에도 하나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발람의 길을 막으셨는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발람은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발람은 자신의 욕심과 고집을 쫓아서 모압으로 갑니다. 물론 이번에는 정말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압 왕은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여서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모압 왕도 발람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주는 커녕 축복을 했고요. 오히려 그 일로 발람은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발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이 내 고집에 의해서 양보하신다고 할지라도요. 그 길은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없을 뿐더러요.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망하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렇게 나의 욕심에 휘둘릴 때, 영적으로 어두워집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욕심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얘기합니다. 당연히 이는 잠을 자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요. 우리의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십니까? 내가 구하고 바라는 것이 나의 욕심은 아닙니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셨으면 합니다. 나의 욕심으로 어두워진 마음을 깨우고 눈을 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는 지점에서 멈추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 삶을 위태롭게 하고 망가트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주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기를 힘쓰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