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7. 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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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여호수아 4장 1~9절(구약 323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7. 여호수아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은 여호수아라는 성경인물을 통해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관련하여 보여드릴 영상이 있는데요. 먼저 시청하겠습니다.
# 영상: 6분 44초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입니다. 어떠십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인생을 어떤 기억으로 채우고 싶으십니까?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할 것이고, 기억이 쌓일 될텐데요. 과연 우리가 마지막에 간직하게될 기억은 무엇일까요? 한편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기억이 참 중요하다.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 기억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 없어집니다.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 한 영원히 남을테니 말입니다.
신앙생활에도 기억은 중요합니다. 오늘 이야기 나눌 여호수아라는 인물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현재 우리가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시대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못해도 약 30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오늘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통해 여호수아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고요. 성경이 쓰이기 전에는 그에 관한 기억이 전해져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는요. 결국, 오래된 기억이 기록되어 현재에까지 전해져 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오래된 기억을 현재에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전할 것이니 이 기억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억을 중요하게 여기심을 봅니다. 여호수아 4장 1~3절을 같이 읽습니다.
여호수아 4장 1~3절(구약 323쪽)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그림을 통해 이 장면을 보면 이렇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 중앙에 서 있고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좌우로 갈라진 요단강의 마른 땅을 건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모두 건널 때까지 제사장들은 강 중앙에 서 있고요. 다음 그림을 보면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그러니깐 총 12명이 나와서요. 요단강 바닥에 있는 돌을 하나씩 가져오고요. 그것으로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무더기를 쌓게 하시는 이유를 여호수아 4장 6~7절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같이 읽습니다.
여호수아 4장 6~7절(구약 323쪽)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무더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손 대대로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장면 가운데 우리가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3절에 보면요. ‘하나님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있는 곳에서 돌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무더기를 쌓기 위해서 운반해야 할 돌은 아무 데서 가져오지 말고 하나님이 지정한 위치에서만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가장 앞선 이들이 바로 언약궤 멘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닿자마자 요단강이 마치 홍해와 같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사장이 발을 딛고 있는 그 자리는 기적이 일어난 자리, 하나님의 역사가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가져야 할 기억은 하나님의 역사이고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이와 같은 기억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기억 말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가운데 우리가 간직할 기억의 출발점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2~3절을 보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각 지파 곧 12개의 지파에서 한 사람씩 돌을 가져다가 쌓게 하십니다.’ 왜 12명이었을까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이스라엘이 12개의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 일에 모두가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하나님은 모두가 참여하고 경험하길 원하십니다. 이는 신앙생활 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특정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이뤄가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와 관심이 있습니까? 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입니까? 한편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하길 소망하고 있습니까? 안타까운 것은요. 우리의 신앙생활이요. 때로 너무 개인주의나 공동체에 관한 무관심으로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데요. 하나님은 나만 은혜받고 나만 신앙생활 잘하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주셨고요.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오늘 현실에서 만나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교회 오면 서로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주의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며 서로 격려하며 또 새롭게 한 주를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습니까? 바라건대, 저는 우리 교회가 그와 같은 공동체이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와 같은 경험을 누리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예배 잘 드리는 것에만 관심 있고, 내가 은혜 받는 것에는 관심이 있지만요.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없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내가 중심이 된 신앙생활 말고, 우리가 함께 더불어 은혜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서로 옆 사람을 돌아보며 다시 축복합시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는 3절을 보면요. ‘하나님은 돌을 가져가서 돌무더기를 쌓게 하십니다.’ 왜, 돌이었을까요? 물론 강바닥에서 가져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돌이나 모래 밖에는 사실 없겠지요. 그렇다면 왜 모래가 아니라 돌이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돌은 쉽게 썩거나 변형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돌은 오래도록 보존이 됩니다. 다음으로 돌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변에 널려 있는 돌을 보면서 자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그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돌을 통해 기념물을 삼게 하신 것은요. 하나님의 은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일상 속에서 그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독일의 심리학자인 헤르만 에빙하우스가 인간의 기억력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는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기억력은 학습을 한 뒤 20분이 지나면 절반 이상 잊어버리고요. 1시간 뒤에는 60% 이상, 하루 뒤엔 70% 이상, 일주일 뒤엔 80% 이상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깐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기억력은 사라집니다. 실제로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오늘 오전에 들었던 설교를 기억하시나요? 얼마나 기억나십니까? 에빙하우스의 이론에 따르면, 60% 이상 잊어버렸을 것이고요.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좀 위안이 되십나요?
그런데, 이렇게 사라지는 기억력을 붙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복습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내용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잠들기 전 5분 또 이틀 뒤 5분, 일주일 뒤 5분, 한 달 뒤 5분 이런 식으로 짧게라도 반복하면요. 기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금방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반복해서 복습해야 합니다. 이 또한 사실임을 확인하는데요. 아마도 여기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 대부분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에빙하우스의 기억력 감퇴의 원리에 따르면, 기적입니다. 20분만 지나도 절반 이상을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믿기로 여기 계신 대부분의 성도님께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온 연수만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외우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평균치를 내보면, 최소한 20~30년 이상은 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요? 우리는 매주 예배시간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복습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이 오랜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을 이용하여 기념물로 삼으신 까닭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오래도록 일상에서 자주 접함을 통해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기억이 얼마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넷째는 6~7절을 보면요. ‘하나님은 이 돌무더기 기념물을 자녀들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돌을 기념물로 쓰신 까닭은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돌이 오래간다고 하더라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지요. 결국, 세월이 흐르면 아무리 돌이라도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부서지거나 그 흔적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유한한 물질을 통해 영원한 기념을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사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기억을 전수하는 것 곧 교육을 통해 가능합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우리는 오늘 약 3000년 전에 살았던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실 3000년 전이 대체 어떤 시대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데요. 우리가 어떻게 그 먼 옛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요. 기억이 전수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3000년 전의 이야기가 자녀들에게 교육되어서 오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아마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영원히 전수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바람처럼 영원한 기념이 될 것입니다.
이로부터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역사와 베풀어주신 은혜가 오고 오는 세대에 영원히 전해지길 원하십니다. 특별히 오늘이 어린이 또는 청소년 주일로 지켜지는데요.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토대로 이 의미를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이와 청소년 주일을 지키는 것은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으로 대변되는 다음 세대 또는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또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에 관심하고 그것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됩니다.
한편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신앙의 선배들 또는 부모세대가요. 이러한 유산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삶에 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가 속한 여러 단체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 베풀어주셨는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세대 또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신앙의 유산과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각자 마음속으로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다섯째는요. 이 이야기의 배경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막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 이제 막 발을 디딘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들과 전쟁에서 승리해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 준비를 지시하거나 그것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념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먼저 은혜받는 것부터이고 그것을 기억하는 일부터라고요. 그러니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 또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 속에서 가령 교회에서 봉사하고 교회에서 어떤 일들을 도모하는 모든 일에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은혜부터 시작입니다. 언젠가 김동호 목사님이 서울에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예배를 잘 드리고 성도들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은혜받는 일에 총력을 집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건물도 없이 학교 강단에서 모였던 사람들이 99명의 사람들이 석 달만에 수 천명으로 불어나 6000명이 모여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오늘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생활에서 기억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관한 기억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기억입니다. 그 은혜를 함께 경험하고 그것을 오래 기억하고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모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삶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끝으로 두 의사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칩니다. 사진에 보여지는 두 의사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온 ‘토머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입니다. 두 사람은 2024년에 한국의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의사가 된 것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현재는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들입니다. 참고로 이태석 신부님은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됐고요. 이후 사제의 길을 선택한 뒤 2001년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 톤즈로 건너가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병원, 학교를 짓고 구호, 의료 등의 선교활동을 하다 2010년 대장암으로 48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토머스와 존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태석 신부님의 덕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남수단에서 만난 이태석 신부님의 권유로 한국에서 의사가 되는 길을 걷게 되었고 한국어와 입시 공부를 병행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요.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요. 그 결과로 이태석 신부님의 모교인 인제대학교 의대에 2012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83회와 84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가 됐습니다. 후에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2024년에 내과와 외과의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후에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갈 것을 얘기하는데요. 남수단에는 오랜 내전으로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고 얘기하면서요. 공부를 마치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의료활동 및 후배 양성에 힘쓸 것을 얘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각합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은혜 베풀어주신 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남수단에 온 토머스와 존이 의사가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태석 신부님 덕분이라고요. 그러면서 이태석 신부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열심히 그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가 공부하고 졸업했던 대학에 진학했고, 또 그가 살았던 나라에서 그와 같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후에 그들은 이태석 신부님과 같이 다시 남수단으로 와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후배를 양성하며 그의 길을 따라 살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받은 우리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분께서 가셨던 길을 가는 것이고요. 예수님에서 행하셨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라는 얘기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의 삶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묻습니다. 우리의 삶을 어떤 기억으로 채워가시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 어떤 기억을 남기시겠습니까? 바라건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서 그분을 따라 그분을 닮을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