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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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80:1-19(구약 862쪽)
설교제목: 구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아삽의 시, 인도자를 따라 소산님에둣에 맞춘 노래〕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 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 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 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 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시편 80편의 마지막 절입니다. 이 시편을 기록한 이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이 시편의 역사적 배경을 이렇습니다.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멸망합니다. 그 무렵 이스라엘 백성은 큰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경험합니다. 많은 이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습니다. 시편 80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는 고통과 절망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구원을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나누는 시편 80편을 통해 시인이 하려는 이야기는 아주 명확합니다. 우리가 처한 어려움과 고난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혹은 주님을 믿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 지를 이야기합니다. 먼저 오늘 시편 1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80:1(구약 862쪽)
1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방금 읽은 성경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과 요한복음 10장에도 나오는 비유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목자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를 양으로 비유해서 표현합니다. 목자는 양을 지키고 돌보는 역할을 하기에 시인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분임을 이야기합니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목자의 역할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마땅히 우리를 도와주셔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님만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완전한 도움이심을 믿고 있음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를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또 이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양에게 목자는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신뢰하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자 없이 양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양은 시력이 나쁘고 맹수들에 공격에 대응할 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그러니 목자의 보살핌 없이 양은 스스로가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양에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합니다.
또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8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80:8(구약 862쪽)
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방금 읽은 구절은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가져다 심은 포도나무로 비유합니다. 포도 또한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과일입니다. 물이 부족하고 귀한 이스라엘에서는 포도는 수분을 섭취하고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에 종종 사용되는 중요한 과일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도는 친숙하고 우리의 쌀처럼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포도 또는 포도나무의 이미지를 사용해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포도나무는 이집트에서 가져다 옮겨 심어진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편 1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사실 시편 1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처음부터 시내가에 있던 나무가 아닙니다. 본래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시냇가에 옮겨 심긴 나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렇게 시냇가로 옮겨 심겨진 나무는 과실을 맺고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 옮겨와 심겨진 포도나무인 이스라엘도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80:12-14(구약 862쪽)
12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방금 읽은 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옮겨 심겨진 포도나무는 불행히도 멧돼지의 습격을 받고 상해버렸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습격이 하나님께서 포도나무의 담을 헐어서 일어난 결과로 이야기합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앞서 이 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그에 따른 혼란한 상황을 역사적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멧돼지의 습격은 비유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에 관한 비유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특별히 열왕기와 역대기의 성경을 읽어보면 북이스라엘이 멸망을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는 하나님을 배신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입니다. 이로부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목자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포도나무의 주인이십니다. 양이 목자를 떠나서 살 수 없고 포도나무가 주인의 손길 없이는 온전히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떠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우리는 온전히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망한다 또는 죽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이 손해보는 일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과 포도나무라는 재산을 조금 잃는 정도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께 속한 우리의 손해는 막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인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시편 80:19(구약 862쪽)
19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시인은 시편 80편을 방금 읽은 구절을 통해 마치고 있습니다. 앞서 제가 드린 이야기를 잘 따라오셨다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결코 살 수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구원이 되신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 지극히 당여한 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시인의 요청이 사실은 여러 차례 반복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깐 시인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에만 한 것이 아니라 시편 80편 전체에서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인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다급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이라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어찌할 바를 몰라 ‘도와달라’고 크게 울부짖으며 소리치는 모양새와 같습니다.
이를 통해 시인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겁니다. 어린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를 부르며 울 때가 있잖아요. 그 마음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무의식 중에 그럴 겁니다. 엄마나 아빠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줄 것이고 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은 엄마 아빠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엄마 아빠를 목청껏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겠지요. 문득 우리는 어떨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다 큰 성인이 아이와 같이 울고 있는 것은 좀 당황스럽겠지만요. 우리가 어떤 도움을 구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더 의존하고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 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치려 합니다. 시인은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19절 상반절)”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의 남다른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우리를 돌이켜 달라’고 얘기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저 사람이 변화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는 우리가 변화되게 해주세요.’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꾸려하지 말고 내가 바뀌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어쩌면 진짜 우리의 문제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바뀔 생각은 않고 남을 바꾸려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바꾸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인의 기도를 통해 깨닫기를 바랍니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이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분께 속해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하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바꾸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주님의 뜻대로 살도록 나를 바꿔가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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