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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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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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도
마가복음 9장 14-29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부분은 아마도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게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의 흐름과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반대의 목적지를 제시하기에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 제일 편한게 세상입니다. 선택이 아주 쉽습니다. 고민이 없습니다. 그저 세상이 쥐어 주고 제시하는 데로 따라가면 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A.I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검색을 통해서 즉각적으로 답을 얻을 수 있고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미래 세대가 싫어하는 말이 “나 때는 말이야”인 듯 합니다. 선배들이 말하지 않아도 직접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인터넷을 통해 2002년 월드컵을 직접 볼 수 있고, 예배영상을 통해 자신들만의 예배로 바꿀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직접 검색하고 즉각적으로 찾고 경험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매우 유용하고 탁훨한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동시에 즉각적으로 해답을 얻지 못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혹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배척하거나 거부하는 반응이 나타납니다.
세상은 이러한 과학적인 결과물들 앞에서 신앙인들을 테스트합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하자 서기관들이 그들에게 예수를 부인하며 변론하였던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쥘 수 없는 믿음에 대해서 변론하거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여도 기도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나납니다.
그래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못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합리화를 찾으며 하나님을 세상에 교묘하게 결합시킵니다.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이 아닌 세상과 같거나 못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저는 오늘 제목을 승리의 기도라고 지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손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인생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순간적인 인생의 제시가 되어 당장의 안도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와 삶의 역경, 무엇보다 원초적인 죄악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실질적인 도우심을 힘입어 승리하는 기도를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승리하는 기도는 상황과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17-18절입니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오늘 본문에는 귀신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가 등장을 합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지금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제가 어릴때만 해도 마을에 귀신들린 사람들이 꼭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도 있었는데요. 그 아이의 부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이만 챙겨야 했습니다. 일도 못하고 가지고 있던 재산은 아이를 위해 전부 써버려서 결국에서 먹는 것까지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아버지라고 과연 다를까요? 아마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귀신들리거나 장애를 가진 모든 것은 부모의 죄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이 아버지에게 향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귀신들린 아이는 외아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고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으로 데리고 가지 않은 9명의 제자들에게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한 것이죠. 
하지만 어떻습니까? 1명도 아닌 9명이 달라붙어도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분명 파송받았을 때는 귀신도 내어쫓았고 병도 치유했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논쟁거리의 장으로 변하였습니다.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아들과 아버지를 입에 담아내며 논쟁을 쏟아냅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고 아들과 아버지는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려 갔지만 아들은 변한게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의 손가락과 눈동자와 입의 말들이 전부 아이와 아버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그 모든 것에 시선을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상황에 대해 묻자 회피하지않고 곧장 아이를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예수님께 아이의 상태를 말하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갈 때에 그 상황이 더욱 안좋거나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손에 즉각적으로 정답이 쥐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기도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하게 더  방해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진다 할지라도 끝까지 우리는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즉각적으로 결과와 정답이 돌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 이스라엘 백성- 모세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 전함- 백성들 하나님 경배- 모세가 바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절기를 지켜야 하니 보내달라 – 바로는 거절, 오히려 노역을 심하게 시킴- 백성들 모세를 원망, 바로에게 가서 자신들은 ‘바로’ 당신의 종들이라고 이야기 함 – 방해가 있자 곧바로 하나님이 아닌 현실을 선택하는 모습 –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을 모르기에 세상에 타협하고자 하는 모습)
깊어지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구하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세상보다 크신, 상황과 현실의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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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나아갈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승리의 기도는 믿음을 발견하는 기도입니다.
19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리요라 하시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먼저 아이와 아버지, 큰 무리와 서기관들, 그리고 9명의 제자들입니다. 서기관들에게는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음을 넘어 불신의 상태이죠. 
큰 무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있지만 믿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다루지 못한 제자들과 제자들이 자기 아들을 고치지 못하자 예수님도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수님께 나아온 아버지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각각의 상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꾸짖으십니다. 
사람들은 믿음이라는 것을 양과 질로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양과 질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사람과 예수님 간의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하신 일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기도라는 방식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23절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 또한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음을 네가 믿는 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믿는 자는 먼저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네!!!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여기서 믿는 자란 예수님 자신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예수니님께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표현은 오늘 본문과 10장27절, 14장36절에 사용되어지고 있는데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볼 때 기도의 응답은 어떤 양과 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것이죠.
기도의 응답은 예수님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의 원리처럼 믿음으로 연합하여질 때 주님의 권능이 기도를 통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예: 어떤 목사님 교회 문제가 생겨 장로님께 전화- 김을 뿜으며 한숨- 통화 후에 주일 예배 후에 교회 온지 3년된 집사님이 된지 얼마안된 성도님께 어떻게 하다가 말하게 되었는데 – 예수님이 계신데 무슨 걱정이냐고- 기도하면 된다고)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자신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을 바라보게 하심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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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과 다시금 연합하여 아이의 아버지처럼 고백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세 번째, 승리의 기도는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24절입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제자들이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하자 아버지는 예수님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 해결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회의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어떻게든 하실 수 있으면...” 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 이 무슨 뜻이냐? 라고 꾸짖으십니다. 이 말에 아이의 아버지는 꼼짝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 절규로 반응합니다.
이 절규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만 아이의 아버지와 같이  의심과 불신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아닙니까???
12년동안 혈루증을 앓앗던 여인처럼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고 믿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의 아버지와 이스라엘 백성처럼 믿음과 현실 가운데 불신으로 갈등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게 되고 다시 한번 주님의 긍휼하심을 의지함으로 온전한 복종으로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제가 믿음이 없습니다. 나를 도와 주십시요! 라고 모든 것을 다해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진멸 명령- 다 잘했지만 한가지 명령을 어김- 진멸안하고 약간만 남겼더라- 그 결과가 커져서 결국에 사무엘상 17장의 골리앗이 있는 가드사람이 되었다)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믿음이 없는 세대에 포함시켰습니다. 귀신을 내쫓지 못한 이유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29절에서는 이 믿음을 다시 기도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6장에서 둘씩 보냈을 때에는 귀신도 쫓고 병도 고쳤습니다.
그랬기에 제자들은 이러한 경험으로 의기양양했고 자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자 아무런 능력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온전한 믿음과 순종 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의지했던 것이죠.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이 주신 권세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기도 뿐입니다. 그 기도는 상황과 현실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믿음을 발견하게 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정보를 내려 놓고 주님께 간구하며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기도는 절대로 단순히 정답을 돌출해내는 답안지가 아닙니다. 기도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참된 믿음은 우리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고 기도는 믿음을 바탕으로 시작되어집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이 앞에서 서기관과 같이 변론하는 것 뿐입니다. 무익한 일밖에 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연민과 은혜가 넘치기에 비신자들의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도에 대해서는 응답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된 이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 응답이 약속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길 원하시며 그 기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으신 분이십니다. 그 분 앞에 겸손히 기도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응답받고 넉넉하게 승리할 수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 할렐루야!  (두손들고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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