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미쁘심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3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1장 8-9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미쁘심"에 대해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또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앞서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그들이 받은 은혜와 은사를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이 품기에는 너무 크고, 우리 스스로 지속하기에는 너무 깊고 헤아릴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분열과 다툼, 도덕적 타락, 영적 교만 등이 있었음에도 바울은 그들을 향해 "너희를 또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현재 상태가 아닌, 하나님의 미쁘심에 근거한 확신이었습니다.

1. 우리의 믿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견고해서 우리를 이루신다

본문 8절에서 바울은 "주께서 너희를 또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체가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견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구원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이루신다고 가르칩니다.
성경 원어에서 '미쁘시다'라는 단어는 '피스토스(πιστός)'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충성됨', '믿음있음'으로 번역되지만,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미쁘심', 즉 절대적인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유로게오(εὐλογέω)'라는 단어도 하나님을 향할 때는 '찬양'으로, 사람을 향할 때는 '축복'으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동일한 단어라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은 우리의 충성됨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완전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험과 역경 속에서 흔들리지만, 하나님의 미쁘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많은 은사를 받았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분열이 있었고, 성적 부도덕함이 있었으며, 서로 법정에 고소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쁘심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붙드시는 예수의 손이 더 굳건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려 합니다. "내가 얼마나 신실한가", "내가 얼마나 헌신적인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가 아버지를 꼭 잡고 있어요"라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은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놓아버리더라도, 아버지는 결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손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9절에서 바울은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불러"라는 단어는 헬라어 '칼레오(καλέω)'의 과거형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과거에 이루어진 확정적인 사건이지만, 그 효력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미래에도 계속됩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부활 후 갈릴리 해변에서 그를 찾아오셔서 회복시키셨습니다. 베드로를 붙든 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미쁘심이었습니다.
다윗 왕도 간음과 살인이라는 큰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도, 예수님의 손은 우리를 굳건히 붙들고 계십니다. 그 손은 십자가에 못 박힌 손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 사랑의 손길이 결코 우리를 놓지 않을 것입니다.

3. 나에게 주의 뜻을 이루는 열쇠가 있는 줄 알면 오해한다

현대 신앙인들 가운데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내가 올바른 방법을 알면, 내가 충분히 열심히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대 사회의 성취 지향적 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듣고 자랍니다. 그리고 이 원리를 영적인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면", "더 많이 봉사하면", "더 많이 헌금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정반대의 진리를 가르칩니다. 8절에서 "주께서 너희를 견고하게 하시어"라고 했습니다. 주체는 '주'이시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하시고, 책망할 것이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은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로 완전히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그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노력과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동기와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도구일 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4. 우리를 하나님께서 예수와의 교제로 초대하신다

본문 9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과 교제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기서 '교제'라는 단어는 헬라어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만남이나 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깊은 연합, 친밀한 관계, 함께 나눔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구원하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아들과의 깊은 교제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 교제에 초대하셨을까요? 우리가 특별해서? 우리가 뛰어나서?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우상숭배자들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만한 특별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시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로나 능력이 아닌, 순전히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초대는 확고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제는 영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5. 우리의 믿음은 연약하지만, 주의 미쁘심을 기억하자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정직하게 고백하면, 매우 연약합니다. 때로는 의심에 빠지고,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때로는 유혹에 넘어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우리의 결심은 쉽게 흔들립니다.
해가 뜨고 지듯이, 우리의 영적 상태도 오르내림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어떤 날은 냉담합니다. 어떤 날은 성경을 읽으며 감동을 받고, 어떤 날은 말씀이 메마르게 느껴집니다.
바울조차도 이런 내적 갈등을 경험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 그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고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직후에도 불평했습니다.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쁘심이 우리 신앙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변해도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13절은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성품에 어긋나게 행동하실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3장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선언합니다. 이 변함없는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열심도, 우리의 지식도, 우리의 헌신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 하나님은 견고하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것이 우리의 확신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아닌, 하나님의 미쁘심에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분이 우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교제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고, 때로는 영적으로 지치고, 때로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끝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에 기초한 확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미쁘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첫째, 감사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인정하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둘째, 신실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미쁘심은 우리의 신실함을 가능하게 합니다. 셋째, 소망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미쁘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미쁘심을 기억합시다. 그분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 죄와 씨름하고 있는 분들, 신앙적 의심으로 고민하는 분들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잊지 않으셨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미쁘심은 여러분의 감정이나 상황, 실패보다 더 크고 강합니다.
히브리서 10장은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움직이지 않는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기초는 바로 하나님의 미쁘심입니다.
이 미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갑시다.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분의 약속을 붙잡으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릅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