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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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누구인가?

오늘 함께 읽은 말씀, 예레미야는 여러분이 아마 아주 잘 아는 예언자일 겁니다. 눈물의 예언자라고 알려져 있는 만큼 바벨론에 70년간 포로로 끌려갈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입니다. 특히 오늘 함께 읽은 본문말씀은 1장의 내용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요. 마치 저희가 예언자들 시리즈로 들어왔을 때, 이사야서에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대화로 예레미야의 예언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본문말씀 5절 말씀을 보시면요,
Jeremiah 1:5 NKRV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어머니의 뱃속에 나타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그를 성별했다, 즉 거룩하게 구별해서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여러 나라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고이(גּוֹי)라고 하는 단어로 주로 주변의 모든 이방 족속들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주로 예언자들이 북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남유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니느웨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하는데요,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사명은 한계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냅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 때 이미 멸망했으니까, 남 유다에서 말씀을 전하지만 단순히 남 유다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통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내지요.
여기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응답하는데요,
Jeremiah 1:6 NKRV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하나님, 저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말을 잘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하나님께 거절하는 말투로 응답합니다.
이 반응은 마치 모세를 떠올리게 하죠.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에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써달라고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언자가 회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Jeremiah 1:7 NKRV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보내든지 갈 것과,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하라, 라고 명하십니다. 사실 이것은요 그냥 “예”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이고 그냥 군소리하지말고 가지”라고 저희는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시기를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본문말씀 2절 말씀을 보시면,
Jeremiah 1:2 NKRV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요시야 왕 제 십삼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시기가 기원전 627년인데요. 이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바로 전년도와 후년도에 중요한 사건들이 등장합니다.
먼저는 전년도인 기원전 628년, 요시야 제 십이년에 요시야는 유다에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됩니다.
2 Chronicles 34:3 NKRV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아주 온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시작하던 해 였는데요, 아버지인 아몬과 할아버지인 므낫세가 세웠던 산당들과 우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요시야 제 팔년에 그러니까 기원전 632년에 하나님을 찾았다는 이유만이 종교개혁을 강행하게 했을까요? 저희가 함께 예언자들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함께 역사를 알아볼때 보았던 것처럼, 왕들의 종교개혁이나 예언자의 말씀은 역사와 동떨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바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정치적인 판단을 하거나 혹은 신앙적인 결단을 내린 것들을 저희가 계속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 시기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입니다.
바로 지난 시간에 저희 함께 알아보았던 앗수르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 아슈르바니팔 왕이 요시야 제 9년에, 기원전 631년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합니다. 그리고 아슈르바니팔 왕이 사망한 후에 앗수르는 곧바로 내전이 발생해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요시야와 함께 유다 왕국은 자신들을 억누르고 속국으로 지배했던 왕이 죽고, 앗수르가 힘이 약해지니까 아마도 요시야가 일으킨 종교개혁, 앗수르의 우상들을 부수는 행위는 이전까지 앗수르를 섬기던 것을 내던지고 독립을 선언한다는 정치적인 선언이 함께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그런 국제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사건 바로 다음 해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구요. 또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된 그 바로 다음해, 기원전 626년은 앗수르의 속국이었던 바벨론이 독립을 선언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 해입니다. 이제 앗수르의 해가 저물고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이 일어서게 되는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요시야 왕이 이집트 군대를 막아서다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는데요,
2 Kings 23:29 NKRV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
여러분 참고로 저기서 앗수르 왕을 치고자 했다라는 것은 오역입니다. 잘못 번역한거예요. 지금 번역되는 새번역들은 전부 다 앗수르왕을 돕고자 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오역이 생겨난 이유가 히브리어로는 앗수르 왕에게 갔다라고 되어 있는데 군대끌고 갔으니까 치러 간거구나! 해서 이렇게 번역했나봐요. 그런데 나중에 저희가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이 시기에 이집트 왕이 앗수르를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 치러간게 아니라 도우러 간거구나! 해서 요즘 번역들은 도우러 갔다고 번역을 합니다.
아무튼 왜 도우러 갔느냐? 하면 이집트는 앗수르와 바벨론 사이에서 간을 보고 있었어요. 어느 쪽이 더 강한지 보고 움직여야지 하고 있는데, 바벨론이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멸망시키고 하란까지 진격한겁니다. 바벨론이 너무 강성해지니까 이집트 왕은 “아하! 앗수르를 도와서 바벨론을 몰아내고 앗수르가 약해진 틈을 타서 내가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먹어야지!”하는 야심을 품고 있었어요. 그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이 바로 유다와 이스라엘 지역이었기 때문에 요시야 왕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시기는요, 지금까지 유다가 겪어보지 못했던 아주 역사적인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단순히 이전처럼 그냥 앗수르가 너무 강해서 속국으로 만드는 상황이 아닙니다.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와 같은 세계적인 열강들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다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긴 상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서로 세계 3차대전을 일으키기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임하는 겁니다.
Jeremiah 1:7 NKRV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나가 죽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어째 이런 험난한 시기에 부르셔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는지, 고작 어린 청년에 불과할 뿐인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셔서 무엇인든지 누구에게든지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연하게도 예레미야를 죽게 하려고 보내시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이죠.
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볼까요?
Jeremiah 1:8 NKRV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서 너를 해치려고 하는 자들로부터 구원하리라. 내 말을 전하는 한 그들이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약속을 예레미야에게 더하십니다.
또한 말씀하십니다.
Jeremiah 1:10 NKRV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세계를 뒤흔들 열강들이 움직이는 이 시기에 오히려 예레미야가 그들을 뽑아버리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또한 건설하고 심게 만들것이다라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말씀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진짜 두려워해야할 대상은 눈 앞에 펼쳐진 강대한 국가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도 보면 진정 두려운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강조됩니다.
Jeremiah 1:11–12 NKRV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일종의 말장난처럼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로 하나님게서 말씀하시는 것인데요. 살구나무라는 단어와 지켜보다라는 단어가 비슷한 발음으로 나타납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שָׁקֵד)라고 하구요 지켜보다라고 하는 말은 쇼케드(שֹׁקֵ֥ד)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어날 일을 “지켜보겠다”라고 두번이나 강조해서 하시는 말씀은 앞으로 하실 말씀들을 요나처럼 뜻을 돌이킬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떤 말씀이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Jeremiah 1:13–14 NKRV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끓는 가마같은 재앙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서 부어지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진을 보시면요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이 있던 곳의 위성사진인데요, 동그라미친 이스라엘 지역 을 보시면 왼쪽엔 바다고 오른쪽은 산인 굉장히 좁은 지형입니다. 남쪽은 사막이구요, 유일하게 이스라엘로 들어오기가 편한 지역이 바로 북쪽으로 난 통로입니다. 그래서 북쪽에서 재앙이 일어난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북쪽의 국가들이 침범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Jeremiah 1:15 NKRV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이 유다의 모든 성읍을 치리라, 즉 유다 왕국의 멸망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예레미야가 전해야만 하는 말씀은 세계 열강들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와중에 “이 나라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멸망할 것입니다!”라고 하는 절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야한다는 사명을 받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미국 중국 러시아같은 큰 강대국들이 3차 대전을 일으키려고 하는 중대한 시점에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높여야합니다!” 라고 말해도 모자란데 “다 포기하세요 어차피 하나님이 이 나라를 싸그리 멸망시킬 것입니다”와 같은 절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야합니다. 아마 사람들한테 돌 맞아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고, 못해도 매국노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고, 자기 민족에게마저 버림받을 법한 운명을 감당해야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적들이 너를 칠 것이다 처럼 앞으로 일어날 고난을 말씀하시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요,
1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Jeremiah 1:19 NKRV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에서 읽었던 말씀을 여기서 또한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해서 너를 구원할 것이다. 근데 이게 사실 은혜로운 말씀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요, 여러분 사실 현실을 생각해보면 녹록치가 않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이 거대한 방패를 뿅!하고 소환해서 지켜주시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원해주신다는 거길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무슨 사지로 내모는것 같이 예레미야를 내모시는 걸까요?
사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제천제일교회에서 처음 간사 사역을 시작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 보다는 제 방에 틀어박혀있기를 어렸을 때 부터 참 좋아했는데요, 그 덕분에 남들은 잘 모르는 컴퓨터도 많이 만지고, 로봇 조립도 해보고, 음악도 해보고 다양한걸 해보긴 했지만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니까 대인기피증이 조금 심하게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 사역할 때는 교인분들이 인사하는데도 애써 못 본 척 외면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심한 것은 아이들 앞에서 말씀을 전했을 때인데요, 한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그냥 꼬꼬마 아이들이니까 마음 편히 말씀전하면 되고, 또 교육부에서 간사 전도사들이 그렇게 훈련하는 거잖아요? 근데 아이들에게 말씀 한번 전하고 나니까 그 스트레스가 너무 컸는지 예배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씀만 딱 전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그날 먹은 아침을 다 게워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정말 그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말씀도 못전하고 사람도 못 만나고 인사도 제대로 똑바로 못하는데, 제가 이 길을 계속 가는게 맞습니까?” 예레미야가 “저는 어려서 말을 잘 할줄 모릅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와 닿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맞습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저를 그런 자리로 많이 밀어넣으셨습니다. 찬양인도 하기 싫다고 하니까 찬양인도할 자리만 계속 주시고, 말씀전하기 싫다니까 계속 말씀 전하는 자리로 밀어넣으시더라구요. 원래 제가 고등학생 때 한창 교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차있었을 때는 성도분들이 인사하면 “째릿!”하고 흘겨보고 지나칠 때가 있을 정도로 날서있고 예민하고 버르장머리도 없는 아이였는데, 인천에서 사역할 때 저를 그렇게 “째릿!”하고 쳐다보는 권사님을 만나게 하시더라구요. 오히려 그 때는 제가 웃으면서 계속 인사하니까 나중에는 마음이 또 풀어지셨는지 다시 인사해주시는 일도 경험을 했구요. 그래서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싫어해서 피하는게 아니구요, 아직도 조금 인사하고 말거는게 아직도 조금은 익숙치 않습니다. 이주혜 전도사님처럼 “와~! 권사님 안녕하세요^^”는 죄송하지만 제가 살아온 삶이 있어서 잘 못합니다. 여러분들 다 사랑하고 축복하지만 제가 표현을 못해서 그런거니까 혹시 오해하고 계신분들이 있다면 오해하지 마시구요.
또 제가 사회복무요원, 그러니까 공익이라고 불리는 대체복무로 군대를 대신 가게 됐는데, 그때 사역도 하기 싫고 놀고 싶어서 “하나님, 딱 2년동안은 저 찾지 마세요. 교회도 제대로 안가고 사역도 안하고 놀거예요”라고 하니까 훈련소 들어가서 근 20년간 한번도 없었던 일인데, 제 총이 폭발을 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오래 근무했던 연대장도 처음 보는 일이었데요. 꼼짝없이 열심히 교회다니고 반주자로 섬겼습니다.
한번은 제가 밴드를 한창 할 때에 음악하던 지인 중에 한 명이 나름 업계에서 알아주는 작곡가겸 기타리스트였는데요, 그 사람이 저에게 “야, 내가 보니까 주변에 취미로 음악하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음악해서 성공할 재능이 있는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내가 제대로 끌어줄게, 나만 따라와”라고 해주던 사람이 있었어요. 옛날에 KBS에서 하던 개그콘서트의 이태선 밴드라고 개그콘서트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 이태선 밴드의 이태선의 수제자였습니다. 제가 사역하기도 싫고 목회하기도 싫어서 그래 한번 제대로 음악해보자! 했는데 두 달만에 코로나가 터져서 음악 업계가 죽어버렸어요. 저 가르쳐준다던 사람은 지금 음악접고 사업하고 있구요. 꼼짝없이 열심히 사역하게 만드셨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는 각종 겪은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특히 한인교회에서 사역할 때 이민자 교회만이 가지는 상처와 아픔 때문에 그게 저한테도 큰 상처와 아픔으로 다가와서 토요일만 되면 숨이 안쉬어지고 세시간을 베개를 부여잡고 울정도로 상태가 안좋아지니까 한국으로 도망쳐왔어요. 그때 정말 울면서 “나 이제 유학 그냥 관두고 목회도 관둘거예요!”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아주 성실하고 신실한 이주혜 전도사님을 만나게 하시더라구요. 꼼짝없이 다시 돌아가서 공부 마치고 왓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어요.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지낼지 고민해보자 라고 하면서 사역을 다 관두고 다른 일을 해보자 하면서“하나님, 딱 1년만 쉬게 해주세요. 저 미국에서 고생해서 공부해서 왔는데, 신혼도 즐겨야지요”했는데 이영찬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꼼짝없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저는 제 앞 날에 대해서 지레 겁먹고 도망치려고 하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목회하는 길로 계속해서 인도하시는 걸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내가 너를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성별해서 내 말씀을 전할 예언자로 세웠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제가 직접 경험하기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하는 이를 전할 때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의식이 발전해서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이들이 무식하고 못난 이들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 저희는 살고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도 마찬가지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가 참으로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특히나 저처럼 말 걸기 무서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할 세상이 마치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와 같고, 말씀을 전하려고 하면 나를 치려고 드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해외에 나가있는 선교사분들에게는 그것이 더욱 크게 와닿을 것입니다. 중국처럼 나라가 나서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할 때에는 얼마나 두려운 일이 많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한 두려워할 이유가 안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셔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즉 안되면 될때까지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때문에 저희가 말씀 전하는 것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19절 말씀을 다시한번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Jeremiah 1:19 NKRV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저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럴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말 두렵고 경외할만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하나님게서 말씀을 전하시는 이는 전할 때까지 지켜서 구원하시는 분임을 믿으며,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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