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예언
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가 420장
합심기도
다음세대와 선교사님 , 호주 백준호, 네팔 신기도, 몽골 최용현, 요르단 황선국, 캄보디아 김수연
금주의 암송
성경봉독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스불론, 잇사갈(49:13-15)
- 야곱은 유다에 이어서 다른 아들들을 축복합니다. 유다까지는 태어난 순서대로 나오지만 스불론부터는 순서대로 기록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원래 순서로 보면 라헬의 시녀 빌하가 낳은 단이 먼저이지만, 레아가 낳은 스불론이 먼저 나옵니다. 실제 레아의 다섯 번째 아들은 잇사갈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스불론이었습니다.
- 스불론이 먼저 언급되는 것은 형 잇사갈보다 스불론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합니다. 그 경계가 시돈까지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스불론이 배정받은 땅은 갈릴리 북쪽 내륙지방이었습니다. 해변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중에 점차 해안으로 진출하면서 옮겨갔습니다. 스불론은 시돈가까이 해변에 위치하면서 시돈으로부터 바다로 진출하는 무역과 배 만드는 산업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불론이 거주할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고 나옵니다.
그 다음 14절에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입니다. 잇사갈은 갈릴리 밑 서쪽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잇사갈은 양을 많이 쳤는데요.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라고 표현합니다. 나귀는 완고한 성격의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꿇어 앉은”이라는 단어는 ‘라바츠(רָבַץ)’라고 해서 ‘움크리다’, 혹은 ‘드러눕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나귀라고 표현하는 것은 잇사갈이 완고하고 게으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들 사이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는 나귀와 같은 모습입니다. 말은 원래 잠도 서서 자는데 땅에 꿇어 엎드려 있다는 것은 일을 안 하고 게으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15절에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라고 합니다. 풍유를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라는 것은 노예 생활, 강제 노역을 의미하는데요. 이방 나라에서 압제당하고 노역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잇사갈 지파는 후에 앗수르에게 압제당하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16절에 단은 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은 아들입니다. 라헬이 자기의 시녀가 낳은 아들을 자기의 품에 품고 아이의 이름을 “단”이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단’은 재판하다, 탄원하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그가 심판하시다’의 뜻입니다. 원래 이 이름은 라헬이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정에서 하소연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미래에도 단은 자기 형제들을 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재판하는 것은 통치권 행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단지파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통치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파의 잘 알려진 인물은 삼손뿐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한 지파 라고 나오는데요. 이것은 단지파도 이스라엘의 한 지파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지파는 자신들에게 배정받은 땅을 포기하고 최북단으로 이동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단지파도 하나의 지파로 인정하며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단은 독사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독사중에서도 눈 위에 돌기가 나 있고 뿔 달린 뱀으로 불리는 맹독성이 강한 독사입니다. 갈라진 바위 틈이나 모래 구덩이에 숨어 있으면서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길섶’으로 번역한 데레크דֶּרֶךְ 는 그냥 ‘길’인데요. 이것은 뱀은 큰 길이나 작은 길이나 어디든지 도사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말을 공격하는 습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말은 뱀의 공격을 받으면 놀라면서 뒷다리로 섭니다. 그때 말을 탄 사람은 말 위에서 뒤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단 지파가 우상숭배를 하게 되어서 이스라엘 나라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야곱은 후에 이스라엘 나라가 단 지파로 무너질 것을 내다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다음 갓은 ‘행운’, ‘복됨’이란는 뜻을 가지기도 하지만, ‘공격하다’의 의미인 גּוּד와 어근이 같기도 합니다. 나중에 갓 지파는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적들로부터 자주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갓의 군대는 그들을 쫓아내며 용맹을 발휘할 것을 야곱은 예언합니다. 예를 들면 사사기에서 암몬이 쳐들어왔을 때 입다가 공격해서 물리친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20절에 아셀은 레아의 여종 실바가 낳은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아쉐르(אָשֵׁר)’는 ‘기쁨’이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레아를 기쁘게 해주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는 자기들이 생산한 농산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줄 것입니다. 왕의 수라상을 차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셀지파는 갈멜산 북쪽에서 좁고 길게 늘어진 해안평야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는데요.
그곳은 비도 많이 오고 비옥합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나오는 농산품을 ‘기름진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기름진 것들은 다른 나라 왕에게 재료와 음식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21절에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은 두 번째 아들입니다. 갓과 아셀보다 먼저 태어났습니다. 납달리는 라헬이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라고 하면서 붙인 것입니다. 납달리는 아셀 지파의 땅 동편, 갈릴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납달리를 향해 “놓인 암사슴”이라고 부릅니다.
암사슴은 아름다움과 빠른 걸음이 특징인데요. 거기다가 ‘놓인’이라는 뜻은 ‘풀어놓다’ 혹은 ‘내어보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납달리 지파가 거칠고 자유분방할 것을 말합니다.
또한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라는 말은 앞으로 납달리 지파에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자가 나올 것을 예상하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예수님의 주된 사역 활동이 이 납달리 지역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납달리의 아름다운 소리는 예수님의 소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스불론, 잇사갈, 단, 갓, 아셀, 납달리를 향해 축복과 경고가 등장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축복과 경고의 유언을 남깁니다. 우리는 다 좋은 소리만 듣고 싶지만, 축복의 소리만 듣고 싶지만 야곱은 경고의 소리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고의 소리도 합니다. 그 경고의 소리는 우리에게 부정함이 아니라,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도 하십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버려두실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도 하시고 경고도 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자녀를 향한 원대한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 부르시고 축복과 징계를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온전한 길로 이끄시기 위함이고, 우리를 저주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오늘도 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좋은 말씀도, 안 좋은 말씀도 들으며 살아가는 하루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앞날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나님만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옵소서.
주기도
찬송가 149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