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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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충만한 복음
와디를 아십니까?
but, 예수님은 우리에게 건천과 같이 일시적인 생수를 주는 존재가 아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이것은 요한복음의 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주님의 충만. 그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요한복음의 주제이다.
건천과 같은 신앙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가? 주께서 주시는 넘치는 생수를 경험하라.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믿지 않는 불신자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주님의 “충만함”과 “은혜 위에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메마른 건천과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충만한 복음을 가지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1. 충만한 복음이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4절).
사마리아를 가야만 했다 -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던 것.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었지만 유일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또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 짧은 길을 놔두고 옆으로 경유하여 다니곤 했다.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관계 때문이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멸시와 천대를 받은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리나 창녀보다, 사생아보다, 이방인 노예보다 더 낮은 단계의 계층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셨음에도 그곳에 가셔야만 했습니다. 왜?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버림받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맞추어 그 여인을 만나러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그러셨던 것처럼 상처받고 소외된 자를 먼저 찾아가서 위로하십니다. 만지고 싸매고 고치십니다. 그들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깨진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깨진 마음이야말로 복음으로 회복되면 어떻게 변할지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깨진 마음이야말로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인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만난 그날에만 그분이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깨진 마음으로 기대없는 삶을 살아가며 몸부림칠 때 그분은 갑자기 찾아오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시고, 또 속속들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간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충만한 복음은 약하고 낙심한 영혼에게만 찾아오실까요? 아닙니다.
2. 충만한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7절).
니고데모와 수가성 여인의 대비를 보라!
니고데모: 지성인, 바리새인이자 공회의 회원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
수가성 여인: 배우지 못한 사람(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 율법에 어긋난 생활을 하고, 경멸 당하고 배척당하는 삶의 모습.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3:28)
남녀의 차별이 없어짐. 구원의 축복은 모든 유형의 사람에게 열려 있다. 무식한 여인, 삶에 찌들어 살아가는 여인에게도 열려 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네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인은 날선 어조로 대답하고 자신의 모습을 공개하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훌륭한 교사였던 니고데모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음의 충만은 이 세상의 니고데모들뿐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다.
그렇다면 그분은 누구십니까?
3. 육체로 이 땅에 오신 충만한 복음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에 앉아 계실 때 사마리아 여인하나가 물을 길러 나옵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말하죠. “물을 좀 달라” 주님은 피곤하여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먹을거리를 사러 마을에 가지 못하실 정도로 지쳐계셨습니다. 더욱이 그분은 목마름을 느끼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정말 특별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피곤하고 지치신 분이 누구입니가? 바로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만물을 지으신 분입니다. 만물이 창조된 목적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히1:3)입니다.
성육신! 이것이 기독교 메시지의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친히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저와 여러분에게 이 영원한 생수를 주시려고 영원한 영광의 광채를 내려놓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그분의 몸은 가짜가 아닙니다. (가현설). 진짜 몸입니다.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진짜 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시고,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을 경험하십시오. 그 생수에 몸을 던지십시오!
결론
그분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넘쳐나는 생명수는 온 세상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그분의 충만함을 누리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