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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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실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함

시편 80편/큰 상실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함. 나이가 들어가면 ‘그땐 좋았지’라는 생각을 자주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좋았던 날을 기억하고 오늘의 고단함을 잊는다고 합니다. 기도자는 지금의 큰 상실(무엇인지는 몰라도)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의 목자, 요셉을 양 떼처럼 인도하시는, 그룹 위에 앉으신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요?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떠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나요? 3절에 ‘우리를 회복, 구원’을 요청합니다. 1절과 더불어 ‘빛으로’,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기도자의 간절함은 ‘우리’라는 공동체의 바라고 소망하는 바람입니다. 4절에 보니 ‘오랫동안’ 그랬다고 합니다. 앞서 시편을 살피면서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 즉 절망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도 불연듯 다가옵니다. 회복을 위한 간구는 ‘오랫동안’ 이지만 그런데 오히려 ‘기도를 노엽게 여기시는가?’하는 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정말 눈물의 빵을 먹는(5) 시간입니다. 그런 과정이 오래되면 주변 사람들 눈에도 띄게 되고 부담스러운 그들은 비웃는 방법으로 모면합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무심하다’. 욥이 그랬습니다. 부인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떠나라는 말이 이것입니다. 그렇기에 7절에 우리의 회복, 구원, 주님의 빛나는 얼굴이 나타나는 일은 절망 가운데 있는 공동체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셔야 한다는 것이죠.  8절에‘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다시 심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배경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70명이었던 한 가족이 모래와 같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8-10) 하지만 12절에 보니 ‘어찌하여’ 라고 말하는 기도자의 고통은 지금 상황을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말합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 울타리를 부수시고’라고 하는 말입니다. 오랜시간 신앙인으로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비그리스도인에 비하면 나름 괜찮은 듯 생각을 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절망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의미입니다. 흔한 말로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라고 시작하는 말들이죠. 기도자는 공동체를 하나님의 열매(12)로 비유하고 울타리가 없어지자 멧돼지, 들짐승(13)이 열매를 따먹는다고 비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포도나무’를 살펴달라고 간구합니다. 16절에 ‘주님의 분노로 그들은 멸망해 갑니다’는 간구는 앞서 진노가 백성에게 쏟아져 망하는 상황이 그들로 불리는 멧돼지, 들짐승에게 쏟아지게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기도는 약한 자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자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강력하게 요구하는 자녀와 같기 때문입니다. 때론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하심을 기다려야 할 때는 오히려 형편이 좋은 편이라 할 것입니다. 아픈 이들이 ‘고쳐주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를 받아 주신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기도는 신비한 것이며 비논리적인 것입니다. 지금 나라가 망하게 된 상황이라면 간절함은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죠. ‘회복, 구원, 얼굴을 나타냄’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이유 하나만이라도 붙잡는 것입니다. 후반에도 여전히 18절에 그리하면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기도는 그렇습니다. ‘안그러면 저 떠날 거예요’ 라고 읍박지르기도 합니다. 힘이 있어야 뭐래도 하는 거니 뭐라도 할 수 있게 힘도 달라는 요구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염치없는 짓이자 말도 안 되는 요구일지 모릅니다.
신뢰는 때론 80편처럼 다른 얼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떠날 것처럼 말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말은 떠나지 않겠다는 말 아닙니까? 마치 엄마의 꾸중에 저 만치에서 울고 있는 아이는 가까이 가도록 불러 달라고 더 울듯, 멀리 갈 것처럼 굴어도 어느 선 안에 있듯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리와’ 라고 말하는 소리에 다가 갈 수 있는 것이 ‘신뢰’의 모습인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는 신사답게, 정돈된 말과 모은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간절하게 떼 쓰는 아이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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