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4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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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20:19–23 NKRV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님들 평안 하십니까? 평안하시길 소망합니다. 과거도 그렇고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는 샬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인사가 있습니다. 별일 없으시지요? 이처럼 이렇게 평안을 소망한다는 것은, 또 평안이 인사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 평안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중에 불안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불안한 것들 투성입니다. 그래서 염려와 걱정으로인한 두려움이 늘 우리의 마음속에 끊이지 않는 것이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치 염려와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은 당연히 염려와 걱정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까지 여기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누구보다 염려와 걱정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제자들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사흘째 되던 날 저녁, 제자들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에
John 20:19 NKRV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 돌아가신 후 유대 당국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한 집에 숨어 문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는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자신들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맞이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 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만을 따랐는데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상황도 그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을 걸어잠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문 단속을 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당시 제자들의 영적 상태이기도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제자들은 목숨이 위태롭다는 현실적인 두려움과 주님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마음의 문까지 걸어 잠근 것 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19절에서 예수님은 ‘문이 잠겨 있었는데도’ 제자들 한가운데 오셨다고 증언 합니다. 그 누구도 들어 올 수 없을 것 같던 닫힌 방에 예수님이 오신 것 입니다. 아무리 굳게 문을 닫고 있어도 주님은 어떤 장벽도 넘어서 우리에게 찾아 오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 앞에 서서 하신 첫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첫 마디는 꾸짖음도, 책망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혹시 제자들은 주님께서 “왜 다들 도망갔느냐? 어떻게 나를 부인할 수 있느냐!”라고 책망하실까봐, 오히려 주님 만나길 두려워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주님은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실패한 제자들을 정죄하기보다 먼저 그들의 두려운 현재 마음을 만지신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자신이 살아계심을 증거해 주십니다. 못자국 난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써 제자들이 보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한번 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두 번의 평안을 선언 후에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John 20:21 NKRV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움으로 떨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평안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평안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도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평안은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단절된 채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는 더 깊은 평안을 경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들으면 의문이 드든데,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때 더 깊은 평안을 경험 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 어렵고 힘든 상황과 환경을 만날 수 밖에 없을텐데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것 보다 더 평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의 차이 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평안의 조건은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면,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남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 평안하다고 말 합니다. 다시말해 그 평안의 조건이 외부로부터,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 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평안과 사명을 선포하시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hn 20:22 NKRV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성령 하나님을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평안과 사명을 주신 후 성령 하나님을 약속하신 것 입니까? 그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평안도,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제자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마주할 도전과 핍박을 아셨습니다.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아셨기에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 하나님을 부어주시겠다 약속하신 것 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말하는 평안은 어떤 상황과 환경과 같은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으로부터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평안은 내 힘과 능력으로 성취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아져서, 문제가 해결되어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문제가 해결되어서 얻어지는 평안은 언제든 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나뻐지거나 또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 평안은 쉽게 깨집니다. 그러기에 외부의 조건으로 인해 얻어지는 평안은 완전한 평안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짜 평안은 오직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평안을 선포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성령 하나님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성령충만 할 때 우리는 평안 할 수도 사명을 감당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cts 1:8 NKRV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도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제자들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임할 때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성령충만할 때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성령 충만 할 때 사명도 감당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 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 하는 것입니까? 성령충만은 어떤 특별한 체험이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 가운데 기적도 일어나고 특별한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내어드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안에서 성령하나님이 왕 되신 상태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내 자신을 내어드린 상태 입니다. 그러기에 성령 충만은, 어떤 감정이나 황홀경과 같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삶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예배중에 눈물을 흘리며 큰 은혜를 경험다 할지라도,예배 후의 삶속에서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금가루)
그래서 에베소서 5:18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Ephesians 5:18 NKRV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바울은 술에 취해 자기 통제를 잃는 삶을 경계하고, 대신 성령님께 사로잡혀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취하다는 것은 지배받다, 통제받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술에 취한 사람은 술의 영향 아래 있는 것입니다. 생각, 감정, 행동이 술에 의해 좌우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영향과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 직후에 에베소서 5:22 - 6:9까지 바울은 가정과 일터에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종과 상전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교훈을 줍니다.
그러기에 성령 충만은 초자연적인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성령충만한 사람은 교회에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는 것으로만 그 충만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정에서 배우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직장에서 아랫사람과 상사를 어떻게 대하는지, 이웃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통해 성령충만함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합니다. 성령충만한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돕는 자가 됩니다. 성령충만한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훈과 군계로 양육합니다. 성령충만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합니다. 성령충만한 직원은 눈가림으로 일하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 합니다. 성령충만한 고융주는 직원들을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공정하게 또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을 때, 우리의 주권을 성령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릴때, 성령 하나님께서 내 삶의 왕으로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에 바울은 성령의 열매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그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입니다.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열매로 맺듯이 우리가 성령 하나님으로 가득할 때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지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같은 삶의 태도가 우리의 일상속에서 저절로 열매 맺혀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열매중에 하나인 평안은 환경이나 상황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4:7에서 말 한 것처럼 이것은 “모든 이해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평안입니다. 주변의 상황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할지라도,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마음속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을 누릴 수 없는 상황과 환경속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이 진짜 평안인 것입니다. 이 평안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것 처럼 평안은 내 힘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평안해야지 평안해야지 다짐을 하고 또 해도 우리는 평안 할 수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 입니다.
평안은 오직 성령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 하실 때,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왕이 되셨을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 입니다. 오늘도 주님께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감정까지도 내어드리길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내일도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날속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잠긴 문을 통과하셔서 제자들 곁으로 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상황, 어떤 환경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성도님들 중에 마음에 잠겨 있는 문이 있는 분이 있으십니까? 염려의 문, 두려움의 문, 죄책감의 문, 미움의 문 그것이 어떤 문이던 예수님은 그 모든 문을 통과하셔서 우리를 찾아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고,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일상의 관계 속에서 그 성령 충만함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사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참된 평강의 원천이 성령하나님의 통치에 있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더 이상 나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하나님께 나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릴 수 있게 도와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와 만남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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