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계시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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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해와 계시

본문: 사도행전 15장 12-21절

찬송: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지난 몇 주간에 걸쳐 예루살렘 공의회의 중요한 논의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 공의회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공의회 결론 부분, 특히 야고보의 최종 결단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가정에서, 마을에서, 그리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오해는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진실은 한 번만 말해도 되지만, 오해는 백번을 말해도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참 가슴 아픈 말인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오해와 갈등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유대 출신의 성도들과 이방 출신의 성도들 사이에 생긴 오해는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오해와 갈등의 순간에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좁은 생각과 오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오해를 넘어선 결단>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난 후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너무나 간결하고도 힘 있는 결단이었습니다. 이 한 문장에는 깊은 신학적 통찰과 목회적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 성도들인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간 이어온 그들의 전통과 믿음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바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이 가진 오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오직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특권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을 부어주신 계시의 의미를 오해했습니다.
사람들은때로 자신의 관점과 경험으로만 세상을 바라봅니다. 농부의 눈에는 온 세상이 농사짓는 들판으로 보이고, 어부의 눈에는 세상이 고기를 잡는 바다로 보이는 법입니다. 당시 유대인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들이 늘 알아온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런 오해를 과감히 뛰어넘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이것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신앙의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면,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그들에게 추가적인 짐을 지라 마라 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서도 이런 오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중세 시대에 로마 카톨릭이 제도화되면서, 성경이 라틴어로만 읽혀야 한다거나, 사순절에 고기를 금지하는 관행은 농사를 짓는 성도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이런 관행에 대해 종교개혁자 츠빙글리는 사순절에 육식을 금지하는 것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지만, 교회는 때로 인간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중요하시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종종 우리의 기존의 이해와 관습을 뛰어 넘습니다.

<건강한 상식을 통한 상호 존중>

야고보는 이어서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20절에서 말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을 향한이 네 가지 요청은 모두 다 성경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은 이방 신전에 바쳐진 제물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말씀에 근거한 요청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혹시라도 이방인 성도들에게 남있을지 모르는 우상 숭배 관행을 단절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음행’은 성적 부도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레위기 18장에 기록된 성적 윤리와 연결됩니다. 이방 세계에서는 종교적 의식의 일부로 성적 행위가 용인되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행위를 금하셨습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목을 조르거나 질식시켜 죽인 짐승을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죽인 짐승은 피가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레위기 17장 14절 은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도 같은 맥락으로, 레위기 17장 10-11절 은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많은 이방 종교들의 의식에는 동물이나 심지어 인간의 피를 마시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이런 의식들은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피는 생명 자체를 상징했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기에 이런 관행들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건강한 상식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려면 최소한의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 그 집의 규칙을 존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야고보가 제시한 이 요구사항들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공동체 화합을 위한 최소의 배려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너희는 이렇게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건강한 상식은 다른 사람을 오해하지 않게 해주는 기초입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이 네 가지 사항을 지킨다면, 유대인 성도들은 그들을 오해하지 않고 진정한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지체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상호 존중을 통해 오해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관계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주는 기초가 됩니다.

<역사와 문화를 고려한 실천적 지혜>

야고보는 21절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야고보는 모세의 글이 각 도시에서 읽힌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야고보의 이 말은 그가 역사와 문화적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로마 제국 전역에는 유대인 회당이 널리 분포해 있었고, 그곳에서 안식일마다 모세의 율법이 낭독되고 가르쳐졌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살던 지역에도 이런 회당들이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현실을 고려했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복음 전파에 장애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고보의 실천적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해야 옳다”는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실제 상황을 고려했습니다. 원칙은 지키되, 사람을 살리려는 지혜를 보여준 것입니다. 진리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는 때로 원칙만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상황만을 고려하는 극단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진리와 사랑, 원칙과 상황 사이에 균형을 찾게 해줍니다.
우리 중앙교회는 이런 지혜의 전통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오랜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서로를 배려하며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말씀의 진리를 지키면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공동체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야고보가 보여준 실천적 진혜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의 균형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론 부분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야고보는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고, 건강한 상식과 실천적 지혜로 해결했습니다.
5월 한 달동안 우리가 묵상할 성령의 열매는 ‘자비’입니다. 자비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필요를 이해하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여준 믿음의 모습은 바로 이런 자비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주의적 경직성도, 무분별한 자유주의도 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자비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중앙교회도 이런 자비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졌더라도,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해를 넘어 계시를 받아들이고, 건강한 상식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실천적 지혜로 함께 나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 초대교회가 오해와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 중앙교회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게 하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저희에게 열린 마음과 귀를 주셔서,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건강한 상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실천적 지혜로 공동체를 세워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이 달의 성령의 열매인 '자비'가 우리 모두의 삶에 풍성히 맺히게 하옵소서. 서로의 아픔과 필요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자비로 반응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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