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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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지키기 힘들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봐”, “가만히 있어봐”라는 말입니다.
저를 곁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게 가만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하면 안 되는 말이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려는 조급함을 경험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 을 알 지어다’라고 하시는데, 제가 평생에 하나님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종종 이런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저런 것을 원합니다. 이런 저런 것을 좀 해 보려 합니다. 아시겠죠? 감사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만약 제 자녀가 제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마음에 한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시며 풍성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이미 아시고 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것이 무엇인지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주어지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입을 지으셨지만, 귀도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준비, 기다리는 태도를 먼저 갖춰야 합니다.
배경
배경
주일오후에 우리는 사울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왕이 된 사울은 군대를 조직합니다. 그러던 중에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곳곳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보면,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혹시 자신들을 대항하여 일어날까봐 날카로운 무기류를 쉽게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블레셋은 철제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나단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한 것입니다. 블레셋은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치르려고 합니다. 이에 사울은 온 이스라엘을 길갈로 소집하여 전쟁을 준비하지만, 블레셋의 전투 병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삼만의 병거, 육천의 마병, 그리고 모래알처럼 많은 보병이 쏟아져 나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11장에서 암몬과 싸울 때의 사울의 모습과 정 반대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두 전쟁을 다룰 때에 사울과 이스라엘이 무엇을 먼저 바라보았는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가 이스라엘을 모욕하자 사울은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두려움이 임하여 한 사람같이’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울이라거나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하나가 된 이스라엘과 같은 표현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왕이 된 사울은 독단적으로 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라 모인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블레셋 앞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울이 제사를 드리다
사울이 제사를 드리다
이런 가운데 사울은 어떻게든 전쟁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제사를 맡은 제사장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 일주일을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일주일이 다 되도록 사무엘이 당도하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초조함에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 누구보다 초조했었던 사울은 결국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리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필 사울이 제사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도착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사무엘이 참 얄밉다고 느껴졌습니다. 사무엘이 묻습니다. ‘왕이 행하신 일이 무엇이냐’ 이 물음에 사울은 대답합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백성은 흩어지고, 블레셋은 당장 우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제가 은혜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정말 부득이하게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의 변명은 그럴듯 해 보입니다. 저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사울의 편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초조함 가운데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야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사무엘의 말은 차갑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나를 기다렸더라면 왕위가 공고했을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새로운 지도자로 삼으셨다고 사울을 향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신 그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있는 다윗입니다.
사울의 그럴듯 한 결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는 예배를 전쟁에 나가기 위한 수단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제사와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질을 중시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형식을 지켰어야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울은 자신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사울의 변명을 대입해봅니다.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살다보니’라는 핑계로 형식을 무시하는 일들은 없는지를 돌아봅니다. 형식이 없는 것, 노력이 없는 것은 결국 마음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결국 본질의 영역까지 훼손해버리는 일을 만듭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삶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울이 놓친 것
사울이 놓친 것
본문을 묵상하며 또 어떤 요소가 사울을 기다리지 못하게 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울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은 군사의 수와 무기의 질과 같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삶 가운데 예언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상황 앞에서 그는 초점을 잃고 하나님을 보는 시선을 땅으로 떨어뜨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의 신뢰는 어떠한 말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증명되어야 했습니다. 전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믿었다면, 그는 기다려야 했습니다. 초조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앞에 물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신 사람 다윗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사무엘하 5장에서 다윗은 사울과 비슷한 상황에 마주합니다. 블레셋의 대군을 앞에 둔 다윗의 행동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시선이 사울과 같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전쟁을 마주했을 때에, 우리에게 원수가 닥쳐올 때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내 손에 무엇이 들려있느냐, 나는 얼마나 가지고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됨을 드러내겠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들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구하며 기다리는 일입니다. 얼마 전, 한 목사님께서 기도에 관해 나누는 말씀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는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하나님께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함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실지를 기다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신뢰가 없는 기다림은 불안함과 초조함이지만 신뢰가 있는 기다림은 설레임과 기쁨입니다. 신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삶으로 이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때가 이르기까지 참으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시선이 상황이 아닌 하나님께 고정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버거운 순간들이 있을테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기다림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신앙이 가장 좋아지는 때가 있습니다. 고3, 6월이 지나고서부터입니다. 이 때부터 학생들은 잘 안 나오던 새벽기도에도 출석하고 찬양과 말씀에 눈물이 많아집니다. 툭 치면 위로의 말씀들이 줄줄줄 나오기도 합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겸손해집니다. 이렇게 신앙이 좋던 아이들이 11월이 지나면 하나 둘씩 안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 다음년도 3월이 되면 다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집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한 자였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위기를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앉으며 그는 점점 하나님보다 자신의 위치와 판단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교만이라는 죄가 싹틉니다. 이 교만이 결국 온전히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가 기준이되어 결정하는 문제를 낳게 됩니다.
사울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살펴볼 때에 우리의 믿음은 평안함과 세워짐을 받았을 때일수록 겸손함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평안과 형통의 시간들 속에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말씀 앞에 비추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내가 판단하고 행동하려 하는가?
사울이 끝까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한 이유는 절체절명의 상황도 있었겠지만, 평안의 시간 속에서 점차 쌓인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나의 부족함과 낮음을 바라보고 또 이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교만이 스며들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다림은 신앙의 핵심이다
기다림은 신앙의 핵심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다림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오가고,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즉시 얻을 수 있는 세상 속에서, 기다림은 비효율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기다림’이라는 덕목이 훈련되지 않은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신앙 안에서의 기다림은 더욱 어려운 영적 훈련이 됩니다.
특히, 기도의 응답이 더딜 때,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불투명할 때,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 앞에서 사울 왕과 같은 유혹을 경험합니다.
여러 상황들과 환경은 우리에게 불안함과 초조함을 안겨주고 이는 곧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보다 앞서고 싶게 만들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이 아닌 우리의 방식으로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게 합니다.
이런 유혹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다림을 훈련하고 실천해낼 수 있을까요? 찬양의 가사와 성경 속 기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받았습니다라는 표현보다 주실 것을 기다립니다라는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은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 살아갑니다. 예수님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속 기다림을 보았을 때에 이들은 수동적인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려워하는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멈춤’의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기다림은 방향을 몰라 기다리는 기다림도, 기약이 없이 멈춰서 기다리는 기다림도 아닙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기다림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일하심에 동참하는 과정입니다. 마치 농부가 때를 따라 추수를 기다리되, 그 동안에도 땅을 돌보고 씨를 뿌리듯,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 가운데 기도하고, 움직이고, 우리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우리는 반드시 열매 맺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불안함과 두려움, 초조함이 엄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커다람 앞에 작아지고 당장 나도 부득이하게 어떤 방법을 취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는 담대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다리는 자보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유리해 보이는 세상입니다. 또 언뜻 보기에 긴박한 상황인데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어리석게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면 상황이 다르게 보입니다.
가장 완벽한 때에, 가장 좋은 응답을 주실 하나님을 알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교만을 버리고 오히려 기대함과 소망을 품고 기꺼이 기다릴 수 있게 될 것임을 나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제 마음 가운데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방법을 물으며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또 우리 교회를 통해 열매를 맺으실 영광스러운 그 날입니다.
답답하고 초조하며 또 때로는 짜증나고 어려운 마음이 들 수 있지만 확실히 열매맺을 그 날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기대하며, 순종함으로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