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로움의 죄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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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h 2:7–3:5 NKRV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Jonah 3:10–4:11 NKRV
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오늘은 요나서를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진짜 문제죠. 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요나서는 5장으로 된 짧은 이야기죠. 요나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시는데,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나의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니느웨가 폭력성과, 잔인함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요나 선지자는 어떻게 합니까? 런! 바벨론과 정 반대에 위치한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탑니다. 도망가려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폭풍을 보내시죠. 요나 뿐만 아니라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요나의 불손종으로 인해 모두가 위험해 빠지게 된 것이죠.
그러자 요나는 이 폭풍은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폭풍은 그치게 되지만, 요나가 큰 물고기에 삼켜지게 되죠.
요나는 캄캄한 물고기 배 안에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게 됩니다. 중요한 부분이라 함께 읽겠습니다.
Jonah 2:7–9 NKRV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러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되고, 두번째로 요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나의 말씀을 선포하라“
이번에는 요나가 순종하여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오죠. 그 걍팍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금식하고, 난리가 난 겁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내리기로 한 심판을 거두시죠.
그런데, 여기부터 더욱 더 흥미진진해집니다. 요나가요,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래서 다시스로 도망간 것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셔서 재앙을 내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이제 제 목숨을 거두어 가세요. 사는 것보다 죽는게 낫겠습니다”
갑자기?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네가 화내는 것이 맞냐?"
요나는 화가 단단히 나서 동쪽에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 니느웨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요나 머리 위로 자라게 하셔서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막아주시죠. 요나는 기뻐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벌레를 보내셔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십니다. 그러자 정오가 되자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요나의 머리에 작렬합니다. 그니깐, 요나가 또 죽겠다고 난리를 치죠. 이 분은 툭하면 죽겠다고 하는 분같아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네가 박넝쿨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맞냐?”
요나가 말합니다. “네 주님 죽을 때까지 맞습니다” 보통 성격이 아니죠. ㅎㅎ
  이때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니가 이 박넝쿨을 자라게도 하지 않고, 돌보지도 않은 이 하룻밤 만에 사라진 박넝쿨을 아꼈거든,  뭐가 옳은지를 분별할지도 모르는 12만명의 니느웨 사람들을 나는 아끼지 않겠느냐?”
이 질문으로 요나서는 갑자기 끝나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요나서를 통해 우리가 죄에 대해서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난주에 예레미야 말씀을 통해 죄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아닌 뿌리의 문제, 마음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요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생생한 이야기로 보여줍니다.
여러분,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요나는 설교자이고, 목사였어요. 크리스천 리더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타락한 이방인들보다 더 심각한 죄의 노예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이고, 올바르고, 정통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 죄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신앙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죄 가운데 있을 수 있다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죄에 의해 스스로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는 우리에게 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세가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죄의 증상을 깨닫게 하시고, 진단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죄를 치료할지 “죄에 대한 치료법”을 보여줍니다.

1. 죄의 증상

먼저, 하나님은 요나에게 죄의 증상을 보여주시는데요. 두가지입니다.

1) 도시를 미워함

첫번째 죄의 증상은 요나가 어떤 특정한 성읍, 도시를 미워한다는 겁니다.
Jonah 4:10–11 NKRV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서 아끼다라는 단어는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인데, 히브리 원어로 무언가를 사랑으로 슬퍼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금 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너는 왜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느냐? 이 도시에 사는 수만명의 영혼들이 있는데, 그보다 더 아끼는 것이 무엇이냐?”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았던 이유는 니느웨가 위험한 곳이고, 아무리 내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해도 그들은 변하지 않을거야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결국 요나는 물고기 사건 이후 니느웨로 가게 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그거 걱정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하죠. 그러자 요나가 터진 겁니다. 분노가 터진거죠.
여기서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은 진짜 이유가 드러나시 시작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증오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거에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통해서 요나의 숨은 진짜 동기를 드러내고 계신 겁니다. “니가 박넝쿨을 아꼈거든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
요나는 니느웨가 폭력적이고 잔인한, 심판받을 곳이기 때문에 그것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반대죠. 니느웨가 타락한 도시이기 때문에 가야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요? 편안하고, 안전한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바베큐 해먹고, 기타치며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걸까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이 땅에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게도 각자의 니느웨로 가라고 부르십니다. 세속화된 도시, 예수님을 믿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서 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을 섬기고,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나처럼 니느웨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목사님, 저는 이미 니느웨에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일터와 학교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거기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요나가 니느웨에 가느냐 안가느냐를 문제 삼는게 아닙니다. 물고기 사건 이후에 요나는 니느웨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지역에 믿지 않은 사람들, 여러분의 캠퍼스와 일터에서 믿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 삶의 그늘이 되어주었던 박넝쿨이 망가지자, 안타까워 하고 슬퍼했던 것처럼, 영적으로 망가져가고 있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나요? 슬퍼하고 있나요?
하나님은 요나가 불손종해 니느웨로 가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마음의 상태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게 첫번쨰 증상입니다.

2) 요나의 분노

두 번째 증상은 요나의 분노입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특별하게 말씀하시는 포인트가 있는데요. 그게 무엇이냐면 분노입니다.
요나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너가 지금 분노하는 것이 맞냐?”라고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요나는 “네, 제가 홧병에 죽더라도 맞습니다. 차라리 죽는게 낫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여러분, 분노가 죄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얼마든지 화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진노하셨고, 예수님도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화를 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그 화가 올바른 것이냐?라고 묻고 계신 겁니다.
요나야. 너가 이토록 분내하는거 좀 이상하지 않니? 살고 싶지 않다니. 너의 삶 조차도 부정하게끔 만드는 너의 분노가 과연 맞는거니? 그 분노 안에 뭔가 다른 것이 있는거 아닐까? 무언가 네 마음이 지금 엇나가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나님은 마치 심리 상담사처럼 요나로 하여금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게끔 만듭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짜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화난 이유는 심판받아 지옥 구덩이에 떨어질 저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꾸 은혜와 구원을 베푸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만 부어주시는 복과 구원을 저 이방인들에게 똑같이 베푸시다니요? 저들을 살려뒀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 요나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나는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의롭다는 단어는 도덕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죠.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의로움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의로움의 반대말이 부끄러움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죠?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모든 사람은 의로움을 추구한다는 겁니다.
나를 의롭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의로움을 추구합니다.
요나처럼 자기 의라는 좋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의 수치심을 가리는 겁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은 특별해집니다. 확신이 생깁니다. 자기 의라는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는 의로웠습니다. 자기 민족을 생각하고, 자기 백성을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을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살아갈 희망마저 잃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사실 요나의 영광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니느웨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정체성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였고, 그의 의로움이었고, 그의 구원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무너지니깐, 완전히 멘붕이 온겁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나이다” 자살충동까지 느끼죠.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요나의 자아는 다른 문화와 종교에 대한 우월감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의 자기 의로움입니다.
이렇게 요나의 자기 의로움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요나에게 손내미는 순간 요나서는 갑자기 끝이 나게 됩니다. 5장이 없나? 넘겨봐도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소위 이런걸 열린 결말이라고 하죠? 하나님의 질문으로 이 책은 끝나게 됩니다.
왜 이렇게 끝나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의 질문 앞에 놓여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요나라는 것이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하십니다.
물론 여러분이 요나처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요나처럼 자기 의로움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 조지 휫필드는 이러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해야 할 두가지의 일이 있다고 하면서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로움을 회개해야 합니다.
휫필드는 자기의로움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마음에서 뽑아내야 할 마지막 우상이라 말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내 삶에서 밀어낼 수 있지만, 순종함으로도 하나님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훌륭하니깐, 자신의 의로움으로 자신이 구원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전까지는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가끔 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회개할 게 없습니다. 교회에 안나오고, 막 사는 애들이 회개해하지, 제가 뭐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놀랍게도 성경에 이렇게 똑같이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죠? 탕자의 비유에서 큰 형입니다.
큰 형은 방탕한 동생을 받아준 아버지를 보며 분노하며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허랑방탕한 인간을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겁니까?”
큰 형은 자신의 선행으로 의로워지고 있었고, 그 선행이 자신의 구원이 된 겁니다. 아버지의 은혜 따윈 필요없는 것이죠.
모든 규칙을 지키고 선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멀리 달아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로움이라는 내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권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문제는 그들의 악행이 아닌 저주받을 선행이다”
내가 잘못한 일을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선행까지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회개해도 내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내 안에 있는 자기 의로움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제거해야 할 마지막 우상은 바로 자기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구원인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줄로 믿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Jonah 2:8–9 NKRV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헛된 우상에 집착하는 자들은 은혜를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니느웨 백성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는게 구원의 조건이 되는게 아니다. 그것 또한 우상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선행과 의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로 받는 거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자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해내시죠.
하지만, 요나는 금새 그것을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고기 뱃속과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붙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자기 의로움으로 관성처럼 되돌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그때마다 우리 안에 있는 문제들을 다시금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십시니다.
따라서, 성장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의로움이 다 제거된 완전한 상태? 아닙니다.
성장이란 내 안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거짓된 마음, 자기 의로움을 더 크게 더 민감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 것일까요?
요나가 보여준 신호들이 있는데,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월감

첫번째는 우월감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내가 영적으로 더 낫다라고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건 자기 의입니다.
예를 들어, 전혀 도덕적이지 않고, 예의도 바르지 않고, 교회와는 전혀 어울리는 사람을 보고, 내가 일종의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건 자기 의입니다.
일년내내 새벽기도회 참석하는 사람이 새벽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을 보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기 의로움입니다. 
나보다 새벽기도회 나오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은 더 받는다? 이거는 용납못하는거죠, 거기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나는 아침부터 와서 일했는데, 오후늦게 와서 일하는 자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다니,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분노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가 강한 공동체는요. 새로운 사람들을 못받아들입니다. 텃세가 강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자기 의가 강하다는 겁니다. 나와는 다른 다양함 사람들을 못받아들이는거죠. 그리고, 나보다 부족해보이는 사람이 교회에서 주목 받으면 참지를 못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탕부 하나님을 보면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문장인데요.
“오늘날 교회가, 다시 말해 우리가 끌어들이는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반듯하고 도덕적인 경향이 있다. 인습을 벗어난 난잡한 사람들이나 소외되고 망가진 사람들은 교회를 피한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정 반대죠. 죄인들, 소외받은 자들이 그분께 끌렸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전하는 메시지가 예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와 같지 않다라는 반증인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히면, 세상에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줄수 없어요.
그래서, 자기 의로움의 또 하나의 증상이 뭐나면, 삶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괜히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가, 지적질만 당하고, 상처받고, 멸시만 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은혜를 이해하고, 복음 안에 잠겨 있다면, 우선 내가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들어줄 수 있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서 배웁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직장인이고, 재네는 학생인데 무슨 대화가 되겠어? 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이제 막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무슨 대화가 되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독선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에요.  
작은 교회 사역자를 보며 우월감을 가진다면?
더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다면, 그들을 존중하며 이야기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자기 의로움에 사로잡힌 요나입니다.

2) 자각하지 못함

두번째 자기 의로움의 신호는 스스로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그랬죠. 그는 자신이 자기 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겁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만한 사람은요. 자신이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있는 자기 의를 의식하는 사람은요. 비교적 자기 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은혜 아래 거하려고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요나처럼 자신이 자기 의에 빠져있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요. 자기 의로움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숙한 사람일 수록 어떻다라고 말했죠?
내 안에 있는 부족함을 더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혹시 비판을 받으면 견디지를 못하나요? 악플 때문에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크게 낙담하나요?
왜 그런 것일까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이미지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걸 못참는거에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의로움입니다.
그래서, 반대의견을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죠. 스스로 쌓은 자기 의미지, 자기 의로움이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하는 겁니다.
비판하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가차없이 비판한다면. 나는 팩트만 얘기하는 거야. 티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요. 이것은 티와 에프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의로움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일부는 왜 매사에 짜증이 나고, 나 빼고는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투덜되는 걸까요? 여러분의 의로움 때문이고, 또 열등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항상 불안하고 항상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가를 비판함으로 내가 맞다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부족함을 드러내서 내 부족함을 메꾸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비판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아니면 비판을 즐기는 것은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계속 살피는 사람입니다.
최근, 류명한 목사,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많이 보면 볼수록, 내 의로움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것을 보지 못할수록, 내 의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치료법

그 약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복음입니다. 요나가 처음 복음을 경험했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구원은 주님께로부터 옵니다라고 외치죠.
지구상의 어떤 종교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가장 하층민이든 가장 도덕적으로 뛰어난 정직한 시민이든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은혜로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복음을 깨달을때, 우리 안에 있는 자기 의로움이라는 암 세포는 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갈까요? 어떻게 약을 쓰시죠?
요나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사랑으로 알려주십니다.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사랑으로.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나간다는건,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너는 복음을 잊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겁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복음을 경험하고, 목숨을 건지지만, 금새 그것을 잊죠. 회개하는 니느웨를 보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박넝쿨을 통해 또 다시 복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셔야 하고, 여러분은 그것을 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시도록 하는 것이죠.
내 안에 어떠한 의로움이 있는지, 내가 왜 비판에 방어적으로 반응했는지, 왜 충동적으로 했는지, 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미워했는지, 왜 분노했는지 말씀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셔서 너는 복음을 잊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물고기 뱃속에서 만난 하나님, 그 은혜,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내가 해야 할 일을 너 스스로 하려느냐? 왜 너가 스스로 구원자가 되게 하느냐?
구원은 오직 나에게 속해있다.
두 번째, 고통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어떻게 깨달았죠? 물고기 뱃속이라는 고통스러운 절망 가운데 깨달았죠.
또 내가 사랑하는 것을 취하시기도 합니다.
요나 같은 경우는 박넝쿨이죠. 벌레로 하여금 갉아먹게 하십니다.
내 삶의 안정감을 두고 있는 것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취하심으로 고통스럽게 하시죠.
그러면서 알게 되는 것은 ‘아 내가 얼마나 이것에 안정감을 두고, 소망을 두고 있었는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의 작곡가 존 뉴튼은 여러 찬송가를 작곡했는데, 우리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찬송가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나는 주님께 성장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네”라는 찬송인데(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소개). 이러한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주님께 구했네 믿음과 사랑과 모든 은혜에서 자라게 해 달라고. 주님의 구원을 더욱 알게 해 달라고,  그리고 더욱 진지하게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해 달라고. 그러나 그 대신에 주님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죄를 느끼게 하셨네. 그리고 지옥의 성난 세력이  내 영혼의 전부를 공격하도록 하셨네. 그 뿐 아니라 주님 자신의 손으로  나의 비통함을 더 깊게 하시느라 애쓰셨네. 내가 세운 모든 훌륭한 계획을 방해하셨고,  나의 모든 희망을 사라지게 하셨으며 나를 쓰러뜨리셨네 나는 떨면서 울부짖었네. "주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세요?" "벌레 같은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주님은 대답하셨네. "바로 이것이 은혜와 믿음을 구하는 기도에 대한 나의 응답이니라." "이 내적 시련들을 사용해서 나는 너를 자아와 교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려 한다. 그리고 지상의 기쁨을 위한 너의 계획들을 무산시켜  네가 내 안에서 모든 것을 구하게 하려는 것이다." 존 뉴튼(John Newton), I asked the Lord that I might grow
얼마 전에 아내가 기도한게 기억나네요.
“하나님, 우리의 계획대로 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스럽게,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그분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분은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화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요나야, 지금 너가 그렇게 하는게 맞는 일이니”
하나님은 요나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끊임없이 질문할 뿐이죠. 왜 그럴까요?
“내가 직접 나서진 않을거야, 하지만, 내가 너를 도울거야”
하나님은 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실까요? “감히 네가 내 앞에서 화를 내느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그분은 요나에게 폭풍을 보낸 적이 있잖아요. 얼마든지 그분은 요나에게 진노의 폭풍을 보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왜 진노하지 않으시는 걸까.
수백년 후, 어떤 분이 자기 의로 똘똘 뭉쳐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Matthew 12:39 NKRV
39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니느웨 사람들도 회개하였는데, 자기 의로움으로 똘똘 뭉쳐 회개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아 들어라. 이제 너희들에게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하지만 여기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있다”
요나보다 더 큰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에 던져져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했듯이, 예수님께서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진노의 폭풍이죠. 십자가에 달려, 공의와 파도 속으로 던져지셨습니다. 왜? 이 세상이라는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던져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던지신 겁니다.
우리에게 “한번만 더 나에게 와주겠니?”라고 말씀하시기 위해서죠.
또 하나의 찬송시, 존 리펀의 찬송시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불러 깊은 바다 지날 때 슬픔의 강 범람하지 않을 것이니 내 너와 함께 있으니 환난도 복이라 네 깊은 고통 거룩하게 하리라 존 리펀, How firm a foundation
오늘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나의 아들의 희생을 통해, 복음을 통해 너희에게 보여주겠다.
내 사랑을 통해 너희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찬양

보여지는 예배 아닌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노래하는 찬양보다 삶으로 고백되는 예배
나를 위한 예배 아닌 주님 뜻을 향한 예배 내 맘과 정성 다하여서 주 앞에 드려지는 예배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온전한 예배 내 맘의 예배 내 모든 것 받기 합당하신 분
주 앞에 엎드려 예배합니다 나의 모든 삶 나의 모든 뜻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의 예배
드리기 원하네
(4)-V1-V2-C-(4)-V2-C-(8)-키업C-C
우리 모두 예배하는 자 되어 온전히 영과 진리로 주를 예배하자
주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고 마르지 않는 샘물로 우릴 채우시리러
기도제목
하나님, 나의 기념비를 무너트리고 주 앞에 엎드려 주님을 예배합니다.
나의 죄와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는 정직한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순종을 보여주는 자 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하나님, 거룩한 예배자로 세워 주옵소서.
주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정직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예배자로 우리를 세워 주옵소서.
학교나 가정에서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정직한 자들이 되게 해주시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성공을 위해 나의 연약함을 감추고, 속이는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우리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자신을 높이고 증명하려는 기념비를 무너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예배함으로
기념비가 아닌 하늘의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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