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518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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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는 것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아나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대를 막아 존귀하지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신들에게 내가 말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에 내 마음대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1 또 겐 족속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네 거처가 견고하고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약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예언하여 이르기를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가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본문 설명
본문 설명
먼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 봅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후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있었고,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이미 강력한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을 물리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 이스라엘이 자기 땅 주변에 진을 치자 모압 왕 발락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발락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사람들을 어떻게 격파했는지 보았고, 또 그 수와 위력에 극심한 공포와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발락이 생각하기론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당시 유명한 주술가이자 선견자인 발람을 돈으로 매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재앙을 내리려 하였다.
당시 고대근동에서 주술사나 예언자가 저주하거나 축복을 하면 그 말이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민수기 22:6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발락은 발람에게 막대한 대가를 약속하며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한마디로 세속적인 거래를 제안한 것입니다. “내 원수 이스라엘 좀 저주해주면, 내가 당신을 크게 부귀영화로 보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 가운데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를 보면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입에서 저주 대신 축복의 말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민수기 22장22절 이하에서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길에 그의 나귀가 계속 길을 벗어나고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자 화가 난 발람은 나귀를 때렸습니다. 그때 나귀가 인간의 말로 “왜 나를 때리냐”고 항의하고, 눈을 들어보니 자신 앞에 여호와의 천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던 것입니다(민 22:21-34).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까지 열어 경고하실 만큼,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거죠.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하셔서 발람에게 **“내가 말하는 것만 말하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인 민수기 24장 10-25절의 장면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합니다.
선지자 발람은 이미 세 번이나 입을 열 때마다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이에 모압 왕 발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맙니다. 10절을 보면, 발락이 화가 나서 손뼉을 치며 발람을 크게 나무라지요.
여기서 손뼉을 친다는 것은 단순한 박수가 아니라, 고대 근동 문화에서 격렬한 분노와 조롱의 제스처였습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거칠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불러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고 한 것인데, 도리어 세 번이나 그들을 축복했도다. 그러니 이제 당장 내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원래는 내가 당신을 높여 심히 존귀하게 (크게 상 주고) 해주려 했는데, 여호와께서 당신이 존귀해지는 것을 막으셨소!” (민 24:10-11 요약) 발락의 말투에는 분노와 함께 엄청난 실망감이 묻어 있습니다.
그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저주해 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이제는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당신 때문에 내 계획이 망쳤다”며 모욕을 담아 발람을 돌려보내려 하고 있죠. 세상이 믿는 이를 바라볼 때 종종 이런 식입니다. “내가 너를 성공시켜 주려 했는데, 네 하나님 때문에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구나” 하고 비아냥댑니다. 발락의 말처럼,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라 출세의 기회를 놓쳤다고 비웃을 때가 있습니다.
발락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 할 것을 원했지만 계속해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하였다. 그럴때마다 바락은 장소를 옮겨가며 제사를 지내고 이스라엘을 저주 할 것을 원했다.
이처럼 발락이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저주 선포를 시도하는 이유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신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형적인 이교도적 사고방식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마음을 바꿔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여기서 발람을 선한 선지자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가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가 전심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민수기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발람에게 모압으로 가지 말 것을 말씀하셨고, 처음에는 그것을 거절하였는데 두번째는 처음보다 더 높은 고위 사신들과 보상 이야기를 듣고선 한 번더 하나님게 물어보겠다며 미련을 보인다. 이것은 이미 발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 것인가? 모압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것들을 얻고 싶은것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기도 할 때 내가 원하는대로 응답을 받으면 바로 행동에 취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대로 어쩌면 내가 정말 하기 싫은 응답을 받을 땐 하나님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며 다시 기도한다. 지금 발람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할 것을 발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몇번을 말씀하시는지 모른다.
이처럼 하나님은 옳지 못하고 믿음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결국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붙드셔서 결국 끝까지 축복의 말만 선포하게 한다.
그리고 오늘 본문 14절 이하를 보면 발람은 발락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예언한다.
그중에서도 17-19절에 기록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리니, 모압의 이쪽 귀퉁이를 쳐서 무찌를 것이다. 라면 오히려 모압의 멸망에 대해서 선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곱의 별과 이스라엘의 규 인데 이것은 왕권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스라엘에서 나올 강력한 통치자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이것은 궁극적으로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발람의 선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된 통치자를 통해 궁극적으로 모든 적들을 이기고 승리할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것이다.
발락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선으로 사용해 하나님의 뜻을 꺽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발락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내용을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계획하시면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지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여러분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5세-29세 사이의 청년 중 경제활동을 포기한 인구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이상이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밝게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청년은 14%에 불과하며, 60%는 현재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25%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MZ 세대의 67.9%가 정신 건강 및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성세대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그래서 20-30대 우울증 환자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특히 청년들이 겪는 압박감과 유혹은 발락의 욕망과 발람의 탐욕과도 닮아 있다. 발락이 자신의 권력과 안전을 위해 어떤 장애물이라도 제거하려 했던 것처럼, 청년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학업, 취업, 사회생활 등 여러 영역에서 성공을 향한 강항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은 청년들에게 끊임없는 노력과 성취를 요구하며 때로는 생존 경쟁과 같은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또한 발람이 보상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던 것처럼, 청년들도 세상적인 성공이나 인정을 위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앙을 타협하려는 유혹에 직면할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나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옳지 않은 길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상황에 놓일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진정으로 중요하고 영원한 만족은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데서 비롯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 더 큰 의미와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겪는 사회적 고립과 정신 건강 문제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하는 것은 외로움과 절망감을 극복하는 중요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성경에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했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나온다. 그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요셉이다. 요셉은 형들의 배신과 억울한 누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했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나라를 구원하는데 쓰임 받았다.
또한 다윗은 수많은 적들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쏙, 하나님은 그를 건지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통해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아들을 바칠 것을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지금 이삭이 재물이 되어 죽음을 당할지라도 다시 하나님께서 부활시켜서라도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실 것을 아브라함음 믿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니엘의 세친구들도 그랬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은 바벨론 왕의 금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해서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극한 상황소겡서도 뭐라고 고백하였는가?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믿음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별과 규로 상징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빛과 구원을 가져오셨다.
청년 여러분, 학업과 취업의 압박 속에서 여러분의 가치는 성취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여러분 한명한명은 이미 존귀하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나를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로 나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소중한 지체이며,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 처럼, 여러분 한명 한명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예레미야 29:11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의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그분의 계획은 항상 선하신다.
오늘 말씀을 통해 결단하길 바란다. 세상적인 타협 대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길 바란다. 눈 앞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기로 결단하길 바란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나가길 결단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셨던 것 처럼 여러분 또한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도하심을 믿으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주의 청년들이 되길 소망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머리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든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공동체로 모인것이다. 옆에 있는 지체들을 봐라 여러분들의 믿음의 동역자들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지만, 우리가 또하나 알아야 할 것은 내 옆의 지체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으로 보고 섬기고 위로해주고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 몸 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내 옆의 지체들을 위해 동산원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길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