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소중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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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적인

요한복음 12:20–26 NKRV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해본 적이 있는가? “만약에~”하면서 “무엇을 하면 돈 얼마를 준데, 할래?”하며 상상하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나 MBTI가 N인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를 상상하며 더더욱 좋아한다. 최근에 어떤 영상에서 한 남자가 제안을 한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7만원을 주겠다고 돈을 보여주면서 제안했다. 여러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영상 마지막쯔음에 어떤 한 여성이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영상이 마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그녀는 왜 단돈 7만원을 위해 소리를 질렀을까? 당연히 소리를 지름으로 주변사람에 줄 피해와 민폐와 부끄러움보다 돈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댓글을 보니 어떤 사람은 ‘앞에 사람들이 하지 않았던 것은 돈의 액수가 부족했던 것이다.’라고 농담하는 댓글이 있었다. 또 전도사님은 친구랑 길을 걷다가 길에 웅덩이가 있길래, 장난으로 “저기 물 마시면 1억준다고 하면 한다, 안 한다”라는 농담을 던졌을 때 당장이라도 물 앞으로 주둥이를 내밀려고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또 친구와 계곡에 놀러갔는데, 다이빙을 할만한 스팟이 있었다. 사실 계곡에서 다이빙은 위험한 행동이다. 잘못하다가는 목숨을 잃기 쉽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친구가 뛰어내릴까 말까 무서워하며 고민하고 있길래 마법의 한 글자를 말했다. “쫄?” 그 한 마디에 내 친구는 어이없어 하면서 곧 바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돈이 목적이라서,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중요해서 어떤 사람은 명예 누구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한 것들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죽고 난 후에 자신이 이룬 것을 기억하거나 멋지다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점점 사라져가게 되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도 보면 어떤가? 그들은 우리나라, 조국을 위해 독립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후손들을 위해 죽음을 무릎써서 어떻게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을 보았고 우리는 그들의 희생으로 끝내 독립이 오고, 헌법이 만들어지면서 국가의 보호 아래서 살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을 통해 후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역사를 잊어버리고 다른 나라에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면 한국의 조상들이 힘겹게 목숨을 버려가며 지켜냈던 희생이 결국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기에 세상은 발전되어져 갔고, 더욱 안전하게 변해간다. 비행기의 안전수칙과 건설현장의 안전수칙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 적혀진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얻어지는 자유와 안전은 반드시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기에 자유를 얻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후대에까지 계속해서 지키기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영원히 희생으로 얻어진 것을 영원히 지켜내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이다. 오늘 여러분과 나눌 주제는 ‘희생’이다. 희생의 뜻이 무엇인가? 희생(犧牲): 자기의 소중한 것(시간, 돈, 감정, 생명 등)을 다른 사람이나 더 큰 목적을 위해 포기하거나 내어주는 것을 말한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이야기로 우리가 본문을 읽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12장 1절에 마리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마리아가 깨뜨린 사건이 등장한다. 무엇을 깨뜨렸는가? 1번 향유 옥합, 2번 분위기. 그렇다. 아주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린 사건을 시작으로 요한은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마리아의 향유 옥합은 우리 시대에 적금이라고 볼 수 있다. 향유는 말 그대로 매우 비싼 향기 나는 기름인데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담는 고급 용기가 옥합이다. 깨뜨려야만 꺼낼 수 있는 구조라서 한 번 쓰면 다시 못 쓴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행사에만 사용되었다. 보통 결혼식에 들어가기 전 향유를 몸에 바르고 들어간다. 또 특별하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대로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장례식에서 시신에 바르는 기름이 향유였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향유는 가룟 유다가 말하길 300데나리온에 팔 수 있는 정도였다. 1 데나리온은 하루 일꾼의 품삯이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어 10만원이 하루 노동자 일당이면 대략 3천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이야 여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시스템과 사회 환경이지만, 2000년 전 고대 사회에서는 여자들은 돈을 버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요즘으로 다시 상상해보면, 여러분이 받는 용돈에서 티끌을 모으듯이 모아서 3천만원 정도를 모은다면 쉽게 모으기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그녀가 평생 겨우 모은 적금같은 향유를 예수님께 깨뜨려 그의 발에 붓고 머리로 닦았다. 그렇게 향유를 다 붓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2:7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그녀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알았다. 자신의 오라비였던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인 메시야이며 희생의 어린 양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준비하여 죽음을 앞둔 예수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것이다. 그때 차라리 향유옥합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가룟유다에 대해서 요한은 80쯔음 노인이 되어 요한복음을 썼는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당시에는 선한 마음으로 말한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 도둑놈이었네? 라는 이야기도 요한복음 12장 성경에 적혀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전부였던 마리아와 돈이 전부였던 가룟유다와의 대조가 요한복음 12장 첫 이야기에서 등장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제사장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작당 모임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생각해보라. 저번 주에 성전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임재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대제사장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더 잔인한 것은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회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 장면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그때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 찬양하면서 이스라엘의 왕이 오셨음을 노래하고 찬양했다. 그때 예수님이 무엇을 타고 들어오셨는가? 1번 나귀 2번 페라리. 그렇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했다. 보통은 멋진 말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초라한 나귀 그것도 작은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셨다.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멋진 말이 아닌 나귀를 타셨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한이 나이 80살이 넘어서 요한복음을 쓰면서 그때 딱 깨달았던 것이다. 구약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스가랴 9:9 NKRV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실제로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은 이 구약의 말씀을 생각하지 못하고, 진짜 말씀대로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구원자이신 메시아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본문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찾아오는가? 헬라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온다. 헬라사람들은 우리가 잘 아는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를 포함한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 이전에 자신이 숭배했던 신들은 능력이 없는 우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능력이시고, 진짜 신이신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뵙고자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께 오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내쫒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마디로 구원은 유대인의 혈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어느 출신이든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허락됨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사람은 누구의 통치는 받는 것인가? 비록 아직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에 살아가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구원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요한복음 12:23–24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여러분 상상해보라. 씨앗이 땅에 떨어지고 싹이 틔우려면 무엇을 찢어야 하는가? 씨앗 중심을 감싸는 껍질을 찢어버려야 싹을 틔우며 자라날 수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찢기시며 흘리신 죽음이 없으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곧 예수님이 얼마 있지 않아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당시 제자들에게 예고편처럼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열매는 예수를 믿는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면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 얻게 되는 대가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바로 설명해주신다.
요한복음 12:25–26 NKRV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여기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성경 말씀이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생각, 욕망, 자존심,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세상의 영광, 심지어 죽는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까지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의 욕망과 자존심을 다 죽여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칭찬 받는 것을 최고로 여겨 자기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무엇을 얻는가? 영생을 얻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인간에게 영광을 받기보다는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약속하신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단하여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곳에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섬기면 누가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가?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귀하다고 칭찬받을 것이다. 당연히 성경의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 모세, 엘리야, 예레미야,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기쁘게 고난받지는 않았다. 예수님도 역시 고난받지만, 고난받기를 원해서 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난 넘어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가치가 있었기에, 성경인물들은 알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상급을 주실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순종했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 가장 잘 알았기에 기꺼이 순종하셨던 것이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의 희생은 사회와 국가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후대가 그 일들을 기억하지 않으면, 그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찮게 여기면 아니면 다른 나라에 정복을 당하게 된다면 모든 희생은 그저 안타까운 죽음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진다. 그것만큼 슬프고 억울한 희생이 어디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헌신과 희생은 누가 기억하시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보배롭고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은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가까운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친구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선생님을 위해,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부단히 열심히 하다가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열심히 살아온 만큼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무엇이냐면, 사람들은 아무도 몰라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지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언제나 사랑스럽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난 모습과 성품이 조금씩 아름답게 변해간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영원한 것을 소망하십시오. 사람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때 반드시 행동하게 된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목적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목적에 대한 가치를 분명하게 알 때 사람은 그 목적에 따라가려고 한다. 미국 사람에게 어느 커플에게 두 가지 선택을 주는 것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10만원과 비트코인 1개를 준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남자친구는 1코인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여자친구가 왜 가상의 게임 돈을 얻어서 뭐하냐며 10만원을 가져갔다. 1코인의 가치는 현재 1억4천만원이다. 그렇다. 1코인에 대한 가치를 모르면 당장 눈에 보이는 10만원을 가져가져가서 그것이 좋은 것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이 길어야 8-90살 살 것인데, 80년 인생이 긴가? 영원의 삶이 긴가? 그렇다. 영원의 삶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의 80년의 인생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모습은 어쩌면 10만원을 얻고 기뻐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따라 사시길 바란다. 예수님만이 소망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실 수 있다. 비록 잠깐의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따라살 때, 고난이 따르지만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갈 때, 훗날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를 영광스럽게 부활의 생명을 주실 주님만을 소망하자. 예수님을 위한 헌신과 희생과 수고가 반드시 우리에게 큰 위로와 상 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성경말씀이 삶의 중심과 기준이 되는 꿈사땅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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