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바라보는 영적 유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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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가족에서 므낫세의 현손이며 마길의 증손이며 길르앗의 손자인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습니다.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그들이 회막 입구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대적해 일어난 고라의 무리 속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다만 자기 죄로 인해 죽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해서 왜 저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에서 빠져야 합니까? 저희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저희에게 재산을 주십시오.”
모세가 그들의 사정을 여호와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말하는 것이 옳다. 너는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유산을 반드시 주어라. 그들 아버지의 유산을 그들에게 넘겨주어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여라. ‘만약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유산을 그 딸들에게 넘겨주어라.
만약 딸도 없다면 그의 유산을 그 형제들에게 주어라.
만약 형제도 없다면 그의 유산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주어라.
만약 그의 아버지에게도 형제가 없다면 그에게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주어서 그가 그것을 갖게 하여라. 이것은 여호와가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하여라.’ ”
서론:
네 오늘 말씀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요청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므낫세 지파의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은 없었고, 딸만 5명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요즘 시대에는 딸이 최고죠. 모두가 딸을 낳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우리나라도 그렇도 이스라엘도 아들이 귀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한 지파에게 유업으로 받은 땅은 다른 지파에 넘어가지 않고
아들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죠.
앞선 26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2번째 인구조사를 명하셨는데요.
두번째 인구조사를 한 목적은 광야 생활 40년이 지난후에 가나안에 들어가
땅의 기업을 차지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이 두번째 인구조사의 목적은 가나안에서의 땅 분배를 위해 각 지파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민수기 26:33-34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딸뿐이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입니다.
이들은 므낫세 지파의 가족들로서 그 수는 5만 2,700명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아버지가 죽게 되면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해서 가문의 이름과 명예를 이어갔습니다.
그 당시 딸들이 결혼할 때는 아버지가 지참금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땅을 물려줄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슬로브핫이 아들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 슬로브핫의 유산은
이미 그 형제들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인 슬로브핫은 그 이름이 잊혀질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은 용기있게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 앞에서 말합니다.
그들이 회막 입구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대적해 일어난 고라의 무리 속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다만 자기 죄로 인해 죽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해서 왜 저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에서 빠져야 합니까? 저희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저희에게 재산을 주십시오.”
모세가 그들의 사정을 여호와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용기에 있게 말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여호와를 거슬러 반역한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자신의 죄로 인해 죽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앞선 민수기 16 장 큐티에서 고라 자손들이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대해서 반기를 들다가
땅이 갈라져서 이들을 삼켜지는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까?
슬로브핫의 딸은 아버지는 그들의 무리에 포함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죄로 인해 죽은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기에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그들의 지파의 종족중에서 삭제되면 안되기 때문에
딸들에게도 땅의 유업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될 것을 바라본 믿음에서 나온 고백이죠.
여러분 때로는 부당함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행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사역을 하다보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보니까요. 교회 안에는 평화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저역시도 평화주의자의 성향을 강하게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평화주의자들의 특징이 뭡니까?
갈등이나 부당함이 느껴져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혹시나 이야기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갈등들이 싫은 것이죠.
저도 이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도 그러한 성향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때로는 갈등과 겪어야할 난관들이 예상되어도 용기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때가 있습니다.
참고 가만히 평화를 지키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행동하고 움직일때, 새로운 변화와 개선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이죠.
종교개혁 역시, 루터와 수많은 개혁자들이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개혁교회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속한 곳에 진정 부당함의 변화가 필요한 곳이라면
믿음과 용기를 갖고서 개선되기 위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물론 충분한 기도가 선행되어야 겠죠 ㅎㅎ 할렐루야!
모세가 그들의 사정을 여호와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말하는 것이 옳다. 너는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유산을 반드시 주어라. 그들 아버지의 유산을 그들에게 넘겨주어라.
모세는 이들의 사정을 공감했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이 부분도 참 멋집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쉽게 결정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부분들은 결정하기에 앞서서
하나님 앞에 가져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 충분히 기도하시고 결정해야 실수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자, 하나님의 응답을 봅시다. 아버지의 형제들로 간 유산을 딸들에게 유산을 주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딸들도 이제 땅의 유업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영적 유연성이란 단어가 떠오르더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은 결국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것에 관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리 원칙도 중요합니다.
원리 원칙이 있어야 그 기준에 맞춰서 우리의 삶을 바르게 세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원리 원칙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정작 움직여야 할 순간에, 필요한 순간에..
원리 원칙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원리원칙은 누구를 위한 법이란 것인 말입니까!
이것이 바리새인과 예수님이 겪었던 갈등 아니였던가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에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조차 정죄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죠..
오늘 본문의 슬로브핫의 딸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갖고 나아갔을때,
하나님의 응답은, 딸들에게도 그 아버지의 이름이 이어지게 하고 그 땅의 유업을 줘서 살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슬로브핫 딸들의 부당함을 개선시켜주시고, 새로운 법으로 살길을 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러한 영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그럴려면 본질이 무엇인지 궤뚫어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본질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지식만 쌓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정작 중요한 이 본질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성경으로 지식만 쌓는 것이죠.
원리원칙만 중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이죠.
그러나 여러분 본질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영적유연성’이 있습니다.
움직여야 할때 움직입니다. 생명을 살려야 할때 살립니다.
변화가 필요할때 변화를 일으킵니다.
왜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본질을 보고 있기 때문에..
영적유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합시다!
찬양! 하나님 말씀으로
기도1)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서 믿음과 용기로 실천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2)
영적 유연성을 갖게 하소서,
본질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영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곳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되게 하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