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가르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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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03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2:1-16
1 Corinthians 2:1–16 NKRV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설교
1절에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에 나온 “하나님의 증거”는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증거’는 다른 사본에 ‘비밀’이라고도 나옵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비밀도 될 수 있습니다. 비밀은 소중한 것이고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아무나 알 수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알려줘야지만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의 영이 알려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깨닫게 하셔야 깨우쳐집니다. 그래서 이 비밀 또는 증언이라는 단어는 어원을 보면 고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알 수 없던 일, 깨닫지 못했던 일을 마음으로부터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증언은 무엇에 대한 증언입니까?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에 대한 증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이 되신다는 것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이 증언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닌 성령님이 깨닫게 하셔야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고 사람의 마음에 깨우쳐주셔야 고백되어지는 증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그 복음의 비밀을 증언할 때에 아름다운 말로 하지 아니하고, 박식한 말로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훌륭한 언변으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1절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1:17 에서도 바울이 이미 또 말했는데요.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복음은 화려한 말이나 뛰어난 언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십자가 그 자체로써 복음의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오히려 본질이 약하면 겉이 화려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내면이 건강하게 채워지지 않은 사람일수록 겉모습이 화려합니다. 마음이 건강하지 않고 중심이 잘 잡혀있지 않으면 겉모습에 치우칩니다.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춘기와 같은 청소년 시절에 자아가 잘 확립되지 않고, 사랑이 부족하고 정체성이 잘 세워지지 않은 아이들이 화장도 진하고, 옷도 화려하게 입고 그렇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죠. 이렇듯 십자가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자체에 능력과 본질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절에서 말하는 ‘말’이라는 것은 입소문을 통한 보다 지속적인 소통의 행위; 특히 듣는 사람을 설득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말을 말합니다.
‘지혜’는 ‘σοφία’라고 해서 신의 계시를 존중하지 않고(일반적으로 반대) 파생된 지식의 축적. 아마도 교활한 성격의 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 수사학과 같은 사람을 설득하는 지혜를 말합니다. 고린도지역이 지금의 그리스인데요. 그리스는 민주정치의 시작이었죠? 지도자가 시민들을 설득해서 표를 얻고 하는 정치 방법이었습니다.
그때 수사학이 발전하고 말을 잘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다 지식이 뛰어나고 수준이 높았고요. 그것 때문에 분쟁이 있었는데요.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십자가는 그런 언변과 말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말재주가 아닌 진실함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12절에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순박함이라고하는 단어는 거룩함이라고도 번역되기도 합니다. 거룩함과 순박함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어떠해야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십자가는 거룩하게 또는 순박하게 즉 깨끗하게 전해저야 한다는 것이죠.
거짓이 있거나, 왜곡이 있거나, 화려한 장신구가 붙거나, 진하게 화장을 하거나 하면 십자가는 감춰집니다. 그래서 바울도 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건 그 하나면 복음은 충분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이 말 하나면 십자가의 의미는 충분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다른 장신구를 붙이는 것은 무엇이냐면 십자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높임 받는 것이 아닌 내가 높아지기 위해 십자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은사를 받은 것, 그 은사를 받은 것이 더 자랑이 되고 은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치유해주신 것은 잊고 치료된 것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치료해주시는 예수님만 믿는 것도 십자가의 본질에서 벗어난 겉모습입니다. 십자가는 은사를 주거나, 병을 치료하거나, 물질을 채워주시거나 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십자가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능력이라는 본질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 외의 것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병이 낫는 것, 물질이 풍성해지는 것, 이러한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본질이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병을 낫게 하셨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하셨거나, 물질을 풍성하게 하셨다거나 하는 것은 전도하기에 좋은 방법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십자가의 도는 예수의 죽으심 하나로 충분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죽으셨다. 라고 하는 투박한 말 하나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언변이 부족하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내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말합니다.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렇게 말합니다. 학벌도 좋고 실력이 뛰어난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글은 굉장히 잘 썼지만 말주변이 없고 언변에 능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면서 복음을 전했겠죠. 그러나 그 순박함과 진실함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져서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이 전해진 것입니다. 바울은 언변이 부족하지만 고린도 교인들이 십자가를 믿게 된 것을 봤을 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라고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5절의 말씀처럼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라면서 자신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에게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실텐데요. 뛰어난 언변이나 세상의 말로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아닌 순박하며 진실된 말로 십자가를 전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성결한 모습과 말을 통해 십자가는 전달될 것이고요.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발휘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 하루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만나는 사람에게 십자가가 전달되게 하옵소서. 내 모습과 말을 통해 십자가가 전해지게 하옵소서. 우리는 부족합니다. 실력도 없고, 말도 잘 못합니다. 그러나 나의 순박함과 진실된 생활과 말로 다른 이들에게 십자가를 전하는 내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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