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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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형제자매
옛날에 어느 주막에 늦은 밤, 남녀 한 쌍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남자가 주인장에게 묻기를 “이보시오 주인장, 여기 방이 하나 있소?”라고 묻는데 주인장이 “워쩌나? 있긴 헌디 방이 하나밖에 없는디… 남녀가 유별헌디 한방을 쓰시게? 고것은 안 되는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이고~ 괜찮소 우린 남매요. 여긴 내 여동생이고”하니까 여자가 “맞습니다. 한양 가는 길에 오라버니가 피곤해 하시는 것 같아 잠시 쉬려는 것이니 방을 내어주시지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주인장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쓰읍… 남매가 아닌 것 같은디...”라고 하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 또 한쌍의 남녀가 들어왔습니다. 거기서도 남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시오 주인장 동생과 묵으려고 하는데 방이 있소?”라고 하니까 주인장이 “방이 있긴 헌디 하나밖에 없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그럼 됐소 그 방이라도 내어주시오”라고 하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화를 벅벅 내면서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사람이! 내가 죽어도 너랑은 같이 못자!” 그러니까 남자가 “얼씨구? 누가 같이 잔대? 너는 밖에 길 바닥에 누워자 요것아! 그리고 오라버니한테 말이 그게 뭐야?”하니까 여자가 “오라비는 무슨 네가 웬수지!”이러면서 둘이 막 싸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때 주인장이 처음에 왔던 남녀한테 “봤슈? 저것이 남매여~”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처음 왔던 커플이 그 주막을 떠나갔다 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남매, 아니면 형제자매를 생각할 때에 어렸을 때부터 아주 티격태격 싸우는 이미지를 상상하기가 쉽습니다. 어렸을 때 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많이 싸우고 다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자매 사이에는 떼놓을 수 없는 정이 있어서 싸우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사랑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제 누나랑 많이 다투기도 했는데요, 커서는 제가 조카들을 봐주기도 하고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누나도 제가 유학할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는등 좋은 교류들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형제자매가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면 그것만큼이나 큰 비극이 없습니다. 가족으로서 가장 가까웠던 만큼 갈라섰을 때의 충격은 아주 큰데요. 특히 뉴스 같은 것을 보면 상속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형제자매들이 다투다가 벌어지는 비극이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창세기 25장은 바로 그런 형제자매의 다툼, 특히 상속과 관련한 일에 있어서 다툼이 일어나는 그 계기에 대한 말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처
아브라함의 후처
먼저 본문말씀 1절을 아브라함의 후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두라 라고 하는 이름의 후처에 대해서는 저희가 아는 바가 많이 없습니다. 지난 23장을 읽었을 때에 사라가 죽은 이후에 맞이한 후처인 것 같은데요, 갑자기 왜 뜬금없이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할까요?
사실 이는 아브라함이 사라의 사후에 또 다시 아내를 맞아들였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로 그두라가 낳은 자녀에게 중요한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2절을 보시면 그두라를 통해서 아브라함은 미디안이라고 하는 자녀를 낳는데요, 또 4절에 보시면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이 그두라의 자손, 아브라함의 후처를 통해서 낳은 미디안이 또 아들들을 낳아서 자녀들이 번성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 그래서 이 말씀은 미디안 족속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미디안 족속은 성경에 저희가 잘 아는 말씀들에 등장합니다. 나중에 요셉 이야기에서도 나오겠지만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간 이들이 바로 미디안 족속이었구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해서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게 되기도 합니다.
5-6절 말씀에는 아브라함의 재산 분배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먼저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주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당시에 상속받을 사람을 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였습니다. 다만 누구 한명을 딱 정해서 상속을 하더라도 보통 다른 아들들도 부양해야할 책무가 있었어요. 그래서 예를 들면, 장자에게 상속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다른 아들들에게도 어느정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분할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6절에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여기서는 서자들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요, 사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첩들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 역시 포함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이스마엘 역시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사라의 질투로 쫓겨났던 이스마엘을 다시 불러서 서자로서 재산의 일부를 선물로 주었던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7-8절에 보시면 아브라함이 175세가 되어서 죽게 되는데, 9절 말씀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사라가 묻혀있는 막벨라 굴에 함께 장사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6절을 다시 보시면 뒷부분에 자기 아들인 이삭을 떠나서 동쪽 땅으로 보내버렸다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는 다르게 이스마엘을 포함한 자기 서자들을 잘 챙긴 것처럼 보이지만요 결국엔 그들도 엄밀하게 아브라함의 자손에 들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도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고 하지 않고 그두라의 자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구요, 오늘 본문말씀 12절에도 이스마엘의 족보를 그냥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하갈이 아브라함에게서 얻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사실 시간 순서대로만 보자면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가 됩니다. 여종의 아들이긴 하지만 사라가 여종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사라에게 귀속되어서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 아들이에요. 하지만 제가 전해드렸던 말씀처럼 사라가 이스마엘의 웃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쫓은 것처럼 이스마엘은 장자의 권리를 온전히 빼앗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말씀 18절 말씀을 보시면,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이스마엘의 자손들이 이집트 앞에 술이라는 지역에 이르러서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역개정에서는 이것이 마치 어디 집 앞 건너편에 살았던 것 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새번역에서는 “그들은 모든 형제들과는 적대감을 가지고 살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장자의 권리를 가질 수 있었지만 결국 첩의 아들로만 여겨지고 상속보다 재산 일부를 선물로 받아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쫓겨나게 된 이스마엘과 그 자손들은 아브라함의 직계혈통인 이삭의 자손들과 대적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에서와 야곱
에서와 야곱
또한 19절 이후에 등장하는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쌍둥이, 에서와 야곱의 형제간의 대립의 서막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제 말씀에서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찾게 된 리브가와 결혼하게된 이삭은 한동안 아이를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21절 말씀에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셔서 리브가가 임신하였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죠? 22절에 보시면 아들들이 리브가의 모태 속에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또 이식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로 물어보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두 민족이 태중에 있구나, 그 중에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쌍둥이가 태어나는데 먼저 나온 첫째가 에서이고 나중에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아들을 야곱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래서 장자, 장남은 에서고 야곱은 이남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면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죠.
그래서 그 이후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신 것에 대한 그 시작이 등장하게 됩니다.
27절 말씀을 보면, 아이들이 커서 에서는 사냥꾼이 되고 야곱은 장막에 거주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서 가져온 고기를 좋아해서 에서를 더 아꼈고, 리브가는 함께 장막에 거주하는 야곱을 사랑했다 라고 이야기하죠.
그러던 어느날 야곱이 죽을 쑤고 있을 때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너무 피곤하니까 야곱한테 “야 동생아 사냥갔다 오니까 진짜 너무 피곤하다. 응? 그 지금 쑤고 있는 그 붉으거좀 나좀 먹게 해주면 안되냐?”라고 이야기하죠
그래서 야곱은 “그래? 그럼 형, 장자의 명분을 나한테 지금 팔아. 그럼 줄게.”라고 말해서 에서는 곧바로 “아오 내가 지금 배고파 죽게 생겼는데 장자의 명분이고 나발이고 너 가져라.”하고 그 자리에서 에서가 맹세해서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이거든요,.
결국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일은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서 장자가 받을 명분과 축복 모두를 가로채고 사실상 자신이 장자의 자리에 오르는 일로 나타나고, 에서가 야곱을 거의 죽이려고 하는 지경으로 치닫게 됩니다.
상속과 형제다툼
상속과 형제다툼
이처럼 오늘 본문 말씀인 창세기 25장은 상속과 형제다툼이라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아내에게서 얻은 여러 아들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이삭에게만 상속하게 되어서 서자로서의 선물만 받은 이스마엘은 훗날에 다른 형제들과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또한 그두라로 부터 낳은 미디안과 그 후손인 미디안 족속은 나중에 민수기에서 모압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족속으로 또한 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구약 말씀에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언약의 가정으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내용을 저희가 살펴보고 있지만, 그 언약을 상속받지 못한 이들, 즉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과 그두라의 자손은 그들을 대적하는 이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이 다른 이들은 다 가져다버리신 것이냐, 그것은 아닙니다.
먼저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성경에 여러차례 이스라엘과 대적하는 족속으로 등장하는데요,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에돔 땅을 지나가려고 할 때에 에돔 왕이 그것을 거절하고 군대를 이끌고 나오는 장면이 등장하구요 열왕기하 8장 말씀에는 유다왕 여호람 시대에 에돔이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으로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아모스서를 보면요,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이것을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가 에돔 족속을 포함한 모든 민족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하리라는 말씀으로 인용해서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방인 선교를 설득하는 말씀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스마엘의 자손은 그 모든 형제들을 대적하는 이들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본문말씀 13절에 등장하는 이스마엘의 아들 중 게달의 후손인 게달 족속에 대해서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메시아를 예언하며 게달 사람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이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계보로서 상속을 받은 이삭과 훗날 그 언약을 이어받게 될 야곱은 분명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을 받았고, 다른 민족으로 갈라지게된 상속받지 못한 이들은 그 이스라엘과 대립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대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다가올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 역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 없어보이는 저희 한민족에게도 복음이 전해져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장자의 명분과 상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졌다면 그리스도 이후에는 믿음으로 저희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저희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은 이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본래 하나님 앞에 형제자매나 다름 없는 믿음없는 다른 이들과 다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하나님 나라를 상속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니까 땡큐! 하고 끝나게 되면, 저희는 또다른 에돔 족속과 이스마엘의 자손과 그두라의 자손을 만들게 됩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원래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상속의 문제로 갈라서게된 서자의 아들들과 에돔 족속처럼,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지만 아직 믿음이 없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 이들에게 함께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기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저희가 형제 자매라고 부르지만 사실 믿지 않는 이들도 같은 성씨를 쓰는 사람도 먼 친척이고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서 벗어나서 대적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믿음의 형제자매의 자리로 초청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또한 바로 그것을 위해서 에돔 족속과 모든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찾게 하려 한다는 야고보의 말씀처럼 정말 먼 이방 땅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분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 대하고 심지어 하나님 언약의 상속을 이어받아온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했던 이방 민족들처럼 정말 선교사분들을 물리적으로 대적하는 이들이 있음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난 것이거든요. 선교사분들의 하시는 일과 또한 건강을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