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여섯째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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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30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11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강이의 수준으로 말하기]
[맥락 짚어보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의 예배로 이어진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부활이 어떻게 우리의 예배와 관련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경험했던 ‘평화의 인사, 말씀, 식탁교제, 파송’, 이 요소들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로 이어져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된다는 것이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입니다.
[식탁교제]
그래서 우리가 이 예배의 요소들을 하나씩 짚어보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세번째 시간으로 ‘식탁교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할텐데요. 우리의 예배에서 이 식탁교제는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요?
그 의미를 찾기 위해서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24:29–35 “29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30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31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34 모두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래서 그 두 사람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하였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두 제자는 엠마오에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집으로 초청하고, 그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고, 그러자 그제야 제자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식사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던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주시는 행동은 오병이어와 마지막 만찬 때에도 등장합니다.
누가복음 9:16 “16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시고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누가복음 22:19 “19 예수께서는 또 빵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
누가복음의 말씀을 읽었지만, 다른 복음서에도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이 행동 자체가 예수님의 식탁을 기억하게 하는 행동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제자들과 함께 사역을 하실 때에도 예수님의 식탁은 특별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에는 죄인과 세리들도 함께 했기 때문에 다른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통 종과 여인들이 시중을 들었지만, 오병이어 사건을 보면 제자들이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합니다.
이런 식탁교제의 독특함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보여줍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높고 낮음이 없고, 서로 자신의 것을 나누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자리가 예수님의 식탁이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런 정신을 따라
예배 때에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는 것은 예수님 이전부터 유대교에서 해오던 전통입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것은 이전의 예배 전통에서는 없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eh
사도행전 2:42 “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예수님은 왜 ‘식사’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셨을까?
식사의 자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누구를 우리의 식사에 초대할거야? (공동체의 자격)
누가 높은 자리(상석)에 앉을거야? (위계질서)
음식은 어떻게 분배할거야? (경제)
누가 음식을 만들고 서빙할거야? (일)
이 모든 일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거야? (정치)
->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득하다. 식탁의 자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집약체.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
-> 우리는 식탁교제를 통해 예수님을 기억한다. “나를 기억하라”, 식탁교제를 통해 에수님을 알아보는 제자들.
-> 그리고 오늘 우리의 식사에서도 그러한 문제는 반복된다.
(메뉴는 어떻게 결정할지, 비용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지, 식사 예절 들)
* 우리가 이 식탁에 참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고,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이 옳은지 안다고 실천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성으로 행동하지 않고, 감정과 욕구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이고, 운동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렇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습관적으로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오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죠. 그것은 행동 뿐만 아니라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하는 방식대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담은
사람의 인격은 행동으로 형성된다.
무엇이 옳은지 안다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지지는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은 이성으로 행동하지 않고, 감정과 욕구로 반응한다.
우리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이유. 운동하지 않는 이유
[정리]
밥상머리 교육
[핵심 질문]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바뀔까?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뭐가 다른가?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
YES! 뇌의 신경가소6+
반복적인 행동은 습관을 형성하고, 나의 습관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나의 정체성은 나의 욕구를 형성하고, 나의 욕구는 나의 감정을 형성하고, 나의 감정은 나의 믿음을 형성하고, 나의 믿음은 나의 생각을 형성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말을 배우는가? 모방 -> 사회화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가는가? 모방이 먼저다. 그 다음 이해.
사랑은 훈련이 필요하다.
김연아,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거지!
하다보면 잘하게 된다.
우리는 왜 모여서 식사를 할까?
애찬의 자리는 하나님 나라를 훈련하는 공간.
하다보면 익숙해진다. 훈련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적응되지 않을 것.
반복된 행동은 상식이 되고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애찬의 자리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실재적인 힘이 있다.
예수님의 식탁이 그 때 거기에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도록 하자.
질문: 왜 우리는 예배 때 식사를 할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를 하셨다. 그 때 제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식탁교제는 예수님의 트레이드 마크. 평범한 식사가 아닌 죄인과 세리도 함께하는 매우 특이한 식사였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빵을 떼어주심으로 예수를 알아봄.
이 식사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하는 식사구나! “나를 기억하라”
그러면 예수님을 기억하게만 하는가?
기억하는 것만 이라면 말씀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할 수는 있다.
우리는 기억할 뿐만 아니라 재현한다.
그것은 말씀이 그저 공허한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사건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그려보고, 그 나라를 향한 불이 붙었다면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것.
오늘날 왜 많은 크리스찬들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실패하는가?
말씀 중심의 예배. 애찬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졌다. 교회가 말로만 사랑하고 실천하지 못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실천할 수 없다. 사람은 익숙한대로 행동한다. 습관은 무섭다.
비폭력대화에 실패하는 이유. 자동화된 사고 회로.
세상의 질서에 익숙하면 그렇게 살게되고, 그렇게 살다보면 합리화하게 된다. 그렇게 복음은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주일에 회개기도만 되풀이한다.
변화하려면 훈련해야한다. 훈련하지 않고 그냥 변화하는 일은 없다. 의도적으로 변화된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삶을 변화시킨다.
애찬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훈련하는 시간이다. 익숙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체화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훈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식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누가 참여할 수 있는가?
누가 어디에 앉을 것인가?
누가 일할 것인가?
음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을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우리도 애찬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메뉴, 비용, 설거지 등등
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식탁을 기억해야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것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자리가 우리의 애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원리를 머리로 뿐만 아니라 몸으로 익힌다. 몸에 익은 습관은 일상에서 베어난다.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자들이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이 된다.
그리고 이 식탁의 원리는 교회 공동체 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회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그러므로 이 식탁이 중요한가 아닌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닌가? 온라인 예배는 반쪽짜리 예배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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