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세상, 묻고 하나님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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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전도사님이 문제를 풀다가
답답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여러분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합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 문제풀이에서 문제점을 찾아주세요.
맞습니다.
전제조건이 잘못되면
아무리 공식을 잘 외우고 있어도,
공식을 잘 활용하더라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게 되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 우리의 인생이
이 잘못된 수학문제 풀이방식과
똑 닮아있어요.
분명 공식대로 대입을 하면
그에 맞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 인생은 전제조건 자체가
잘못 되어 있어서
알맞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마치 미지수를 구하고
공식에 대입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성경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인생의 공식이
나와 있어요.
악인에게 돌아오는 삯은 헛것이지만, 정의를 심는 사람은 참 보상을 받는다.
잠언 말씀 뿐만 아니라
신명기 28장 말씀에서도
당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명령에 순종하면 모든 복이 당신을 따라다닐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인생의 공식 중 하나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이라도 한다는 듯이
세상을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15절 말씀읽어볼까요?
헛된 세월을 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인생의 공식대로
의롭게 살면 흥해야 하고,
악하게 살면 멸망해야합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는 거에요.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도 있고,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다는거죠.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아요?
친구한테 잘 해주면 나도 사랑 받아야 하는데,
기껏 잘해줬더니 뒤통수 맞고…
선을 베풀었는데 오히려 손해를 보고,
악하게 행동했는데 오히려
이득을 보았었던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야 하는데,
대충 한 친구가 더 좋은 결과를 얻어요.
SNS 속에 있는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허무하지?
싶어서 좋아요 많이 받으면 될 줄 알았는데
더 허전해졌던 경험은 없어요?
대체 이 세상은 공식이 쉽게 적용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7장
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분명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는데,
사람들이 많은 꾀들을 내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 그럼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가?
그래서 전도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 왜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죽으려고 하는가?
겉으로 보기에는
적당하게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생을 가만히 경험해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아도 망하는 사람 있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멋대로 사는 악인도 오래 살더라.
그러니까 그냥 적당하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처럼보입니다.
그러나,
전도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릅니다.
오히려
연약한 인간의 경험으로 바라본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는게 지혜인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는 말씀이에요.
인생의 공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따위 다 필요 없고,
인생은 적당히 대충 살아가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씀이에요.
이게 인간의 연약함이라는 걸
강조하는 말씀인거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저 인간의 눈으로만 인생을 바라보게 된다면
그 결과는 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여러분의 생각과 지혜를 의지하면
‘어차피 해도 안돼!’, ‘그냥 대충 살자!’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남들 하는 만큼만 하자!’
이런 생각에 빠질 때가 있을 거에요.
그게 바로 전도자가 말하는
인간의 지혜가 도달하는 한계라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나의 경험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내 경험으로 내 인생을 판단하지 말고,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해서
체념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이 세상을
구부러뜨리고 왜곡시키더라도
하나님은 그 구부러진 상황 속에서도
놀랍게 일하실 시는 분이라는 걸
신뢰하는 거에요.
내 경험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지만,
그럴 때일 수록 구부러진 길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구부러진 길을 다시 구부러뜨려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거에요.
내 경험으로 세상이 구부러졌다고 느껴질때
우리가 할 일은 불평하거나 적당히 타협하며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구부러진 길을 어떻게 사용하실지,
어떻게 다시 쭉쭉 펴주실지 기대하며 신뢰하는거죠.
그래서 전도자가 1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좋다’의 히브리어는
토브입니다.
토브는 단순하게 내가 이 물건을 좋아해!
내가 이 음식을 좋아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올바르고 건강하게
맺어져 있는 것을 뜻해요.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순조롭게 느껴지는
‘좋은 날’도 있지만,
때로는 관계가 어그러진 것처럼
‘나쁘게’ 느껴지는 날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는데 내 인생 왜 이러지?
나 적당히 악하게 살았는데 인생 술술 잘 풀리네?
이렇게 착각하고 살지 말고,
좋은 날에는 기쁨을 온전하게 누리고,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있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요.
시험을 망쳤을때, 친구랑 싸웠을때,
부모님하고 갈등이 있을때,
하나님께 힘들다고 다 털어놓고 기도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이 구부러진 길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신다는 신뢰를 갖는 겁니다.
구부러진 이 세상을 구부러졌으니 나도 구부러지게
대충대충 살아가야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부러진 세상을 묻고,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잘못된 전제조건 때문에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자 오답 투성이처럼보일지라도
우리는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혼란스러워할 필요도 없고,
혹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으니
그냥 인생은 적당하게 대충 살아가라고
인생을 쉽게 결론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부러진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완전한 해답이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인간의 모든 경험과 지혜의
측정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날에는 기쁨을 누리면 되고,
나쁜 날에는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고 더욱 굳세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에요.
구부러진 세상, 묻고 하나님과 함께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