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5 청년 완전하고 좋은 길(고전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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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부르는 소리

여러분 ‘겨울왕국2’를 보신 분 계신가요? 혹시 안 보신 분은 계세요? 디즈니에서 제작한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은 우리 나라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죠. 저희 집에 우리우주 남매 쌍둥이의 인생영화입니다. 잠시 ‘겨울왕국2’편에서 등장하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는데요. 극중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엘사라는 인물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 소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였죠. 그런데 그 소리가 특정한 때가 되면 반복적으로 엘사에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은 엘사라는 인물에게 들리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들리는 곳을 향해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그 일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알 수 없는 소리를 찾아서 가는 길이 어떤 때는 위험한 곳을 지나야 하고, 힘든 고비를 지나서 계속 나가는 것이죠. 그 길은 결국 엘사라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었고, 극중에 배경이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그 스토리라인을 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또렷한 소리를 듣고,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서 살아가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우리들은 모두 나름대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서 살아가게 될 때, 마치 길이 없는 그 곳에 길을 만들며 걸어가는 삶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나침반의 N극은 항상 북쪽을 가리키듯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으로 정해져 있는가?’ 하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서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하고, 개인이 선택하는 것으로 각자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고 말하는 시대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서 무어라 간섭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삶의 기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치관으로 세워진 기준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분명한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이 된다는 것이죠.

2.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의 삶은 부름을 받지 않은 삶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불러 모아 주셔서 구원의 길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어떤 삶으로 나아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사람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보게 될 때,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부름받은 때를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본문 26절 말씀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NIV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Think of what you were when you were called,” 이 문장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 너희가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라’ 부름받은 사람은 자신의 출발지점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이전의 것을 생각하며 그 때를 그리워하고, 그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삶을 따라서 살아가는데 저와 여러분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죠. 육체의 삶, 사람의 지혜를 따르며 출생의 귀천을 따지는 세상의 가치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희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가 처음 부름받았던 때에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면서 다시금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스펙으로 학벌로 직장으로 외모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으로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 모두 구원받을 만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참으로 연약하고, 자랑할 것 없는 그 상황에서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완전한 길로 부르셨고, 오늘도 구원의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가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다른 기준

두번째로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본문 27-29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여기서부터 분명하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인격체로써 미련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존경받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것이죠. 하나님께서 택하신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통해서 지혜롭고, 영향력 있고, 강하고, 부요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것이 부족한 이들을 통해서 일한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모든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저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일하셨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 초기에 히브리민족이라 불렸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BC. 1800-1100년 경 사용되었던 단어 가운데 ‘하비루’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 의미는 사회에서 낮고 천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였죠.
그래서 그 당시에는 안정된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하층민, 유랑민, 무법자, 용병, 노예, 반란자 등을 가리켜서 ‘하비루’라고 불렀는데요.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사실 이스라엘 민족을 고대에 히브리 민족이라 불렀던 단어의 어원이 정확하게 ‘하비루’라는 단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음이 비슷하여 ‘히브리’의 어원을 ‘하비루’에서 찾아왔다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마침 히브리 민족의 삶이 애굽의 노예신분으로 하층민의 삶을 살았고, 출애굽 이후에는 광야를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민의 삶을 살았기에 그들의 모습이 ‘하비루’라는 단어와 아주 잘 맞아 떨어졌죠.
그렇다면 이와 같은 히브리 민족의 삶을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미련한 자들이었고, 약한 자들이며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삶을 살아가던 민족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7장 7절의 말씀을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당시 떠돌이 생활을 하며 가진 것도 없고, 자신을 보호할 능력도 없는 약자들이었던 히브리 민족에게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주님께서 애정을 두시고,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의 인구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은 중에 있었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은 무어라 고백하십니까?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하나님의 역사를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음을 고백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기준은 무엇으로 정해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의 자랑과 나의 잘 살아갈 것을 위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교회 공동체로 부름받은 것이 어떻게 세상의 스펙이 될 수 있겠어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은 나의 자랑과 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자랑하며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혹시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가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것인가?’ 하며 절망하는 가운데 놓인 지체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그 자리에 놓인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4. 완성을 향하여

세번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정체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는 완전히 변화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본문 30-31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욱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지혜, 의,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얻게 되는 지혜는 하나님 안에서 부어지는 지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 것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고백하던 바울의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완전한 의가 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시며 영원한 생명의 구원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완전하고 좋은 길이 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저와 여러분을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죠. 그 삶은 어떤 삶으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이제 이 내용에 대해서 나누며 말씀을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5. 이음세대
바로 우리가 나아갈 새로운 삶은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가장 완전하고 좋은 길을 걸어 가는 것이죠.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중간 세대로 살아가는 지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살아가게 될 때, 복음의 다리가 되고,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년들에게 있어서는 ‘부르심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장년세대는 오랜 세월을 지내시면서 세상의 기준을 따라서 살아가셨기에 성공, 안정, 유지 등의 가치를 따라서 삶이 정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완성을 이루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부르심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성공과 안정이 아니라 순종이 복음입니다” 장년세대의 부르심을 회복하며 나아가는 우리 청년교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있어서는 ‘부르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말보다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보고 있습니다. 다음세대는 어른들이 “공부해라, 잘 믿어라, 성공해라, 꿈을 크게 가져라” 말하는 것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기쁨으로 즐거이 헌신하며 살아가는 청년을 볼 때, 도전을 받습니다.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 “믿음으로 살고싶다” 고백하는 자리로 다음세대에게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가장 완전하고, 좋은 길을 전해줄 수 있는 우리 청년교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라고 원합니다.
세대 간의 단절과 갈수록 침체되는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세대 가운데 영적 흐름을 바꾸는 열쇠가 이제 우리 청년교구에게 달려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2025년 비전인 “이음세대”의 중요한 단어는 바로 ‘잇다’입니다.
위와 아래, 좌와 우, 앞과 뒤를 이어줄 수 있는 중간고리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 청년교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믿음으로 일어나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게 될 때, 다시 한 번 우리들 가운데 새로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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