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이다(4:1-17) 중고등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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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주기철 목사의 십자가 순종”

일제 감정기,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시절이었습니다. 평양 산정현 교회의 주기철 목사님은 “무릎은 오직 하나님께만 꿇을 수 있다”하시며 일제의 강요를 거부하셨습니다. 이 일로 목사님은 여러번 반복되는 체포와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주 목사님은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목사님의 가족과 교인들이 눈물로 호소하며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잠시만 참으세요. 살아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러자 목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내가 어찌 그분의 이름을 부인할 수 있겠소”
결국 목사님은 혹독한 고문 끝에 1944년 옥중에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의 순교는 당시 많은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용기와 순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용기”

우리 삶에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가 가져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보통 교회를 처음 다닐 때는 모르지만, 말씀을 듣고 신앙이 깊어지면 분명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환경과 부딪힐 때가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명절날 친척들과 모여서 아침에 차례를 지내려고 하는데, 절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친한 친구나 학교 행사가 주일에 있는데, 용기를 내어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을 하거나 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이 세상 가운데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이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분리해야할 때가 분명히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은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우리 삶을 변화시키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내 삶을 맡겨드릴 때, 우리는 키가 자라듯 신앙도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2. 강해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용기를 내었던 한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에스더서의 요약”

오늘 우리가 읽었던 에스더는 역사를 기록한 이야기이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와 흐름을 아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순신 전기를 읽는다고 예를 들면, 이순신의 어릴적 이야기와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서 거북선을 만들었던 이야기까지 모두 알아야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에스더서는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의 백성들이 이제 바벨론이 멸망한 후 페르시아 제국에 여전히 포로로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포로로 끌려 갔던 백성들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여전히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민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던 시기였지만, 여전히 페르시아 남아 있던 사람들은 포로와 같이 무시 당하고 차별당하는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런 중에 유다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라로의 왕후가 된 에스더의 사촌 오빠이자, 부모없는 에스더를 친 딸처럼 기르던 모르드개가 대궐 문 앞에 있을 때, 당시에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하만이라는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하만의 귀에 들어가면서 그는 분노했고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스더 3:8–11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하니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하만은 왕에게 말해 칙령을 내려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 민족을 몰살하려는 계획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말씀이 시작됩니다.

“모르드개의 탄식”

모르드개가 하만이 행한 모든 일에 대해서 듣게 되었을 때, 그는 몹시 큰 괴로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기 옷을 찌고,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며 크게 울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부가 몰살 위기에 처하게 됐으니 괴로웠던 것이 당연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사람들도 그 사실에 금식을 하고 율며불며 통곡을 했습니다.

적용) 신앙을 가진 사람도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모르드개와 같이 오늘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 민족 신하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이 주일날 모여서 조별과제를 같이 하자고 할 때도 예배를 드려야하기 때문에 그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굽히지 않아서 어려움에 처한 것처럼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타협하지 말아야할 것은 타협하지 않다가 친구들로부터 미움을 사거나 심할 때는 따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아주 당연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차별 받고, 때로는 무시 당하기도 하면서 그런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을 때는 우리가 참 어리석어 보이고, 지혜롭지 못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올리시고 사용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메시지 교환”

왕궁에 있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참 괴로워 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베옷 대신 다른 옷을 입으로 보냈지만 모르드게는 그 옷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에스더가 자기 시중을 드는 내시 하닥을 불러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자세히 알아오라고 보냈습니다.
모르드개는 내시 하닥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낱낱이 말해주었습니다. 하닥은 돌아와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에게서 들은 말을 전해줬고, 에스더는 자기가 지금 왕 앞에 함부로 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다시 하닥을 통해 모르드개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왕이 부르기 전에 어떤 사람도 왕 앞에 먼저 나갈 수 없고, 만약 그것을 어길 시에는 죽음으로 다스려야하는 법이 있었는데, 실제로 왕이 30일이 지나도록 에스더를 부르지 않았기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왕에게 나아가 간청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하닥을 통해 에스더의 말을 전해 들은 모르드개는 다시 하닥을 통해 에스더에게 이렇게 전달합니다. 함께 13-14절을 보겠습니다.
에스더 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궁에 홀로 있다고 할지라도 나중에 하만의 계략대로 일이 진행되면 에스더 자신의 신분을 들통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네가 이 때를 위해 앙비의 자리에 오르게 됐는지 누가 알겠느냐?” 이 말은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왕후의 자리를 너에게 예비하셨지 않느냐? 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용)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에스더의 선택뿐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선택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던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그것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학생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학생이라면, 세상의 가치관과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가치관과 비전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하나씩 모두 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말처럼,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이 교회로 부르시고, 이렇게 예배하신 것이… 여러분 앞에도 있을 그 선택을 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서 선택이 놓여져 있고,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를 가지고 선택하는 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이 두 가지 선택 중에 이런 마음이 들겁니다. 세상을 택하자니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해 천국에 가지못할 것 같고, 하나님을 택하자니 이 땅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을 것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나타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결론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십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아무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커보여서 하나님을 선택했을 때,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은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늘 아뢰 뫼”, 즉 “하나님 아래에 있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사실을 믿으며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합니다.

“에스더의 결단과 용기”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16절의 말씀입니다.
에스더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이 때까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과 행할 것을 명령하고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명령합니다. 유다 사람을 모으고 자신을 위하여 3일동안 금식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왕께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용기를 단번에 보여주는 한 마디를 남깁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의 죽음이 다가온다면 그냥 죽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며 법을 어기고라도 왕 앞에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에스더의 이런 고백은 “저는 이제 죽으러 갑니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녀가 이런 용기있는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이 와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라는 의미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적용) 용기의 원천

에스더의 용기의 원천은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선택을 할 때, 비록 세상이 우리에게 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세상에 좋은 책을 놔두고 성경을 읽는다고 비웃음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시험 공부해야 할 시간에 교회 나와 예배를 드린다고 선생님께 혼날 수도 있습니다. 급식소에서 밥을 먹을 때 다른 친구들은 바로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는데, 우리는 기도하고 밥먹는다고 친구들이 놀릴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유난을 떠냐고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용기를 내어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보다… 때로는 친구들의 비웃과 비난 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난이 아무리 많아도,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길을 따르기 위해 많은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으며 그 좁디 좁은 그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은 기적과 같이 내 삶을 이끌어가시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에스더서의 결론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죽으면 죽겠다”고 고백하며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한 에스더를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민족을 구원심으로 이 책의 결론이 맺어집니다.
여러분 에스더가 특별히 강하고 똑똑해서 아니었습니다. 그가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했더니 용기낼 수 있었고, 그가 용기 내었더니 하나님은 기적과 같이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이런 하나님을 신뢰할 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나를 비난했던 친구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공부하지 않고 주일을 지킨다고 뭐라하셨던 선생님들도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불리해보였던 모든 상황에 역전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다 선택을 해야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 용기조차도 우리 힘으로 스스로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알고 믿을 때, 그 믿음으로부터 용기가 시작되고, 에스더의 멋진 결단 “죽으면, 죽으리라”는 고백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기쁘게할 고백과 삶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서 나의 삶에 기적의 은혜가 일어나고,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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