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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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도입
할렐루야~ 앞 뒤 옆사람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의 주인은 완전하십니다.” “너의 주인은 완전한 분이야”
서론 – 욥의 고난과 하나님의 질문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예상치 못한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신가요?”
오늘 본문인 욥기 38장은 긴 침묵 끝에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욥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며 하나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아닌 질문이었습니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이 질문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
진짜로 욥이 어디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이시며,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우리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즉 “너는 피조물이고,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 너는 있지도 않았다.
너는 시작도 없었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네 인생의 주인은 누구겟느냐?”
욥은 당대의 가장 위대한 의인으로 평가받던 인물이지만,
고난 앞에서는 하나님께 불평하며 질문했습니다.
그의 질문은 정당했습니다.
고통의 이유와 의미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욥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욥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종종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묻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요?”
이런 질문은 신앙생활 하면서 당연히 일어나는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질문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과 우리의 자리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자연의 법칙, 우주의 운행,
생명의 시작과 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질문에 욥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창조주가 아니라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내 삶의 결정은 내가 내린다”
이런 사고가 우리의 모든 문화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결국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신을 높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 교만은 결국 삶을 무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탄은 하와에게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유혹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한다는 생각은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자신이 주인 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타락과 절망입니다.
북미와 유럽에는 사탄교라는 종교가 실존합니다.
그들의 경전에는 “네 자신이 너의 주인이다”라는 말이
맨 앞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겉보기에 자율적이고 멋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인간을 파괴로 이끄는 독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이 주인 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정말 네가 주인이냐?”
하나님이 하시는 수많은 질문은 단지 욥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무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인정은 겸손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주인을 다시 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인생의 주인이라 여겼다면,
이제는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진짜 주인 되실 때
비로소 참된 회복과 자유가 시작됩니다.
본론 1 –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질문을 이어가십니다.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창조의 모든 과정에 대해 욥은 단 하나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폭로하심으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네가 아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본질적 무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정확하게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과학과 기술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무지한 존재일 뿐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더 치명적입니다.
8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9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바다가 터져 나오게 했고, 그 경계를 정했고,
구름과 햇빛 양을 조절해서 지금처럼 바다가 유지되게 했고,
아무리 높은 파도도 정한 높이 외에는 못치게 했는데
이거 다 누가 했느냐?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인간은 자연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홍수, 지진, 기후변화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코로나가 터지자 전세계가 한번에 마비되었습니다.
쓰나미가 치면 한 도시를 집어삼키기도 합니다.
태풍과 지진은 나라를 뒤흔들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합니다.
이런 차원이 다른, 터무이없는 질문 세례를 받은 욥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회개이며, 겸손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이 주인 되었다고
착각했던 삶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정말 통제하고 계획한 것이 얼마나 되나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올 수 있는 보장조차
우리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는 것입니다.
14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반어법입니다.
“네가 앞에 말한 것처럼 그것들을 다 할 수 있따면,
그러니까 네가 전지전능하다면 너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구원은 커녕 하루 앞일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려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부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나를 구원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정말로 부담스럽고, 답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시작입니다.
자유가 곧 구원입니다.
우리가 무능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조종할 줄 모르는 사람이 조종석에 앉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곧 재앙이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생이라는 비행기의 조종간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이 재앙처럼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방법은 조종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것,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본론 2 – 우리는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그럭저럭 산다”,
“마지못해 산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이 자기 인생의 주인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고,
모르는 길을 스스로 개척하려 하다 보니
인생이 무겁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교묘한 거짓말을 던집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의 길은 네가 개척해야 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길에서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있다”며 자랑스럽게 시작하지만,
끝은 실패와 좌절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단순한 "나는 할 수 있다” 자기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능력을 말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처럼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워터루 전투에서 패배하고,
유배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인간의 교만이 만들어 낸 결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내가 주인이다”라고 외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끝이 나폴레옹과 다르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공허합니다.
아무리 성공을 이뤄도, 마음은 늘 불안하고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잘못 선택한 인생은
외로움과 무력감 속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며 세상을 다스릴 때,
자연은 파괴되고 고통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인간의 죄와 탐욕은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피조물까지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년의 정신을 잘 새겨야 합니다.
희년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회복하는 제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지파별로 정해준 땅을 절대 옮기지 않습니다.
땅을 사고 팔더라도 50년, 희년이 되면 모두 원상복귀 시킵니다.
왜냐하면, 모든 땅의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되기 전까지 잠시 잠깐 빌려쓴 것 뿐입니다.
그래서 땅도, 노예도 하나님의 것으로 돌로 보낼 때,
모든 자들에게 자유가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소유, 우리의 인생을 내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삶은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단순히 돈의 일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물질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정한 일부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것인데, 내가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면, 많이 드린 만큼
우리 삶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빈곤해집니다. 힘들어집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물질,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면,
그 사람의 삶의 주인도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네가 주인이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에 속지 마십시오.
우리는 창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인생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삶의 길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본론 3 –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주어지는 자유와 권세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의 정체성은 바뀝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자녀가 됩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단순한 신분 변화가 아니라,
삶 전체를 뒤바꾸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분의 유업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가진 것을 자녀가 함께 소유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나라를 상속받는 자로 살아갑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권세는 입으로만 믿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입술로는 하나님을 주라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내가 주인 되어 살아간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삶의 주인이 바뀌면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시간, 물질, 관계, 미래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삶은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순하고 명확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빛이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순종’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따르는 삶이
진정한 청지기의 삶입니다.
이것은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능동적인 믿음의 선택입니다.
우리가가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가 됩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을 때 세상은 회복됩니다.
가정, 교회, 사회, 자연까지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회복되고,
다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결단은
“누가 내 삶의 주인인가?”를 분명히 정하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그 주권을 삶의 방향과 목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히 ‘내가 주인이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신 삶의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욥기 38장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질문은
단지 욥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세우기 위한 초대였습니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라는 질문은,
욥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참된 자리로 돌아오게 하려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욥을 버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더 큰 회복과 축복으로 이끄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은
우리를 억압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길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 실패와 후회 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권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오히려 가장 안전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가?”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권의 전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기도와 말씀 안에서 끊임없이 삶의 방향을 점검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갑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기준은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것은
단지 삶의 시작과 끝만을 맡긴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매일의 결정, 관계, 감정, 미래의 계획까지도
하나님께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기준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준으로, 주인으로 삼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마스터플랜 속에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길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주인 자리를 놓고 하나님과 다투지 맙시다.
조종간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삶의 조종간을 누구에게 맡길지 다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시라면,
여러분의 삶은 결코 혼란 속에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이 바뀔 때, 삶의 길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그 길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주 앞에 겸손히 고백합니다.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도 실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만 바라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 은혜로 찾아오십니다.
그분은 한없는 긍휼로 우리를 덮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주님만이 길이십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실 분은 완전하신 주님뿐이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시간과 인생을 주님께 맡김으로
그 길의 끝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충만함을 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일어나셔서 “주는 완전합니다.” 찬양하시면
준비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찬양 - 주는 완전합니다.
기도제목
내 삶의 주인이 정말 누구였는지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시고, 주님 없이 스스로 주인 되어 살았던 교만을 회개하게 하소서.
시간, 관계, 감정, 물질,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하루하루의 작은 결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주님만이 나의 길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이룸청년부가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는 주님의 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통성기도
오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지만, 실제로는 내 뜻과 계획대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이 앉아 있었던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주권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이제 제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 시간, 관계, 감정,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며, 나는 다만 청지기일 뿐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이 나의 삶을 이끄는 기준이 되게 하시고, 내가 주인이 되려는 욕심과 고집을 내려놓게 하소서. 매일의 선택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주님, 순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한 걸음씩 순종의 삶을 걸어가기를 원합니다. 작은 것부터 주님의 뜻을 따르는 훈련을 하게 하시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주님의 손을 붙드는 겸손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청년 공동체가 세상 가치에 휩쓸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함께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쓰임 받는 청년들로 세워 주옵소서.
주여,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실수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만이 길이시오, 진리시오, 생명이심을 믿습니다. 완전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믿음으로 그 길을 따라가게 하소서.
마무리 기도 + 헌금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 마음 깊은 곳을 찌르시는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시고, 누구를 주인 삼고 살아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주셨으니,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께서 도우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 실수와 부족함이 있더라도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심겨진 말씀의 씨앗이 각자의 삶 속에서 열매 맺게 하시고, 청년부 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공동체로 자라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 앞에 예배하며 마음을 다해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이 헌금 속에는 주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 이 예물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아름답게 사용되게 하옵소서. 또한 드린 손길마다 주님께서 복 주시고, 물질뿐 아니라 삶 전체가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고 살아가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광고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며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날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길을 걷도록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하심이,
오늘 하나님을 내 삶의 참된 주인으로 고백하며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사랑하는 청년들 위에,
그들의 삶의 모든 자리와 청년부 공동체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