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문제와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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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중고등부 설교>
사도행전 15:36-41
“작은 문제와 큰 문제”
2018. 9. 23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선교활동에 있어서 환상의 콤비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갈라서게 되었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원래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어요. 원래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감옥으로 끌고 가서 죽이던 악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어요. 예수님은 바울에게 “네가 앞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라” 라고 명령하셨어요. 바울은 당연히 그 명령에 순종하고 이방 땅을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그 문제가 뭐냐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모른다는 게 문제였어요.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려면 일단 먼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됐거든요.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었어요. 그들과 친분도 쌓고 자기가 받은 은혜와 감동을 함께 나누면서 교제를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자기가 정말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그들에게 밝히고 인정도 받고 도움도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어떻게 알고 있었냐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악인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놀라서 다 도망쳐 버렸다는 거죠. 사도행전 9장 2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ppt)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모든 제자들이 바울을 피했어요. 자기들을 잡으러 온 줄 알고. 바울이 막 자기가 예수를 만나서 변화됐다고 말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안 믿었어요. 그걸 어떻게 믿어. (ppt) 8장 3절에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고 나와요. 바울이 아주 악독하게 교회를 없애려고 예수 믿는다고 하면 마구잡이로 잡아다가 감옥에 가둬버렸다는 거죠. 바울이 그렇게 난리를 피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ppt) 8장 1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오냐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나와요. 그만큼 엄청난 박해와 핍박이 있었어요.
그런 엄청난 일을 주도했던 바울이 갑자기 예수님 만나서 나 새사람 됐다면서 찾아온다면 그걸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아무도 안 믿었어요. 좀 가까이 가서 말 좀 하려고 하면 다 도망가 버려. 그래서 바울의 사역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내가 사도라는 걸 예루살렘 교회에서 인정을 해줘야 내가 다른 곳에서 마음껏 복음을 전할 텐데,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으니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그때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바울을 믿어줬어요. 그리고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바울을 보증을 서줬어요. 내가 보증한다. 바울은 진짜 예수님을 만났고, 진짜 새사람을 거듭났다. 그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자기가 책임을 지고 바울을 변호해줬어요. 그렇게 해서 바울은 마침내 예루살렘의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기가 어떻게 새롭게 거듭났는지를 전했어요.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냐면, 어떤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바울을 죽이려고 한 거예요. 옛날에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뒀던 일을 다른 유대인들이 여전히 하고 있었던 거죠. 그 사람들이 바울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잡아 죽이려고 쫓아온 거예요.
그래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다소라는 동네로 피신을 보내요. (ppt) 사도행전 9장 29절부터 보면,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바울이 형제들의 도움으로 다소로 도망가게 됐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머물고 있는데, 어느날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러 왔어요. 지금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돼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거기서 말씀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같이 가자고 바울을 찾아온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 가서 일 년 동안 말씀을 가르쳤어요.
이처럼 바울과 바나바는 친형제보다 더 끈끈한 우정과 친분을 가진 사이였어요. 아무도 안 믿어줄 때 믿어주고 함께 주의 일을 하기 위해 찾아가는 진짜 친구였어요. 이후로도 두 사람은 함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일으켜세우는 놀라운 일들을 하게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토록 친했던 두 사람이 심하게 다투고 서로 갈라서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39절에 보면 (ppt)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섰다고 나와요. 심히 다투어. 아주 심각하게 다툰 거예요. 왜 심하게 다퉜냐면, 바울과 바나바가 이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이 말씀을 잘 간직하고 있나 살펴보려고 하는데, 이때 바나바가 자기 조카인 마가도 데리고 가자고 바울에게 말을 했어요.
그런데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한 거예요. 왜냐하면 예전에 마가가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하고 같이 전도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라는 도시에서 갑자기 마가가 “나 더 못하겠어요.”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린 거예요. 뜬금없이 혼자 떠나버렸어.
그러니까 바울이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물론 전도여행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엄청나게 힘들고 피곤하고 괴로운 일이었던 것은 분명해요. 수 백 키로를 걸어야 되고, 때로는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복음 전하다가 뚜드려 맞기도 하고 했으니까. 마가 입장에서는 그런 엄청난 고통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거예요. 두렵고 무섭고 자신감도 없고.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고 혼자 돌아가버린 거죠.
바나바는 그런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내 조카 마가가 다시 믿음으로 일어서서 이번에는 기필코 끝까지 사명을 완수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마가를 다시 데리고 가자고 바울에게 말한 거예요. 하지만 바울은 생각이 달랐어요. 한 번 포기한 사람은 또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예전에 밤빌리아에서 제대로 된 고생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던 마가가 과연 이번에는 버틸 수 있을까? 이번에는 더 엄청난 이방 지역, 더욱 거센 핍박과 고난이 있는 곳으로 갈 건데, 과연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바울은 마가가 이번에도 포기하고 말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마가를 데려갈 수 없다고 했고, 바나바는 그래도 한 번 믿어보고 데려가자고 했어요. 둘의 의견이 서로 조율이 안 돼서 결국에는 심하게 다투게 됐고, 결국에는 서로 갈라져서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고 말았어요.
(ppt) 39절에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전도여행의 환상의 콤비였던 바울과 바나바가 이렇게 완전히 갈라서게 돼버렸어요. 왜 이 두 사람이 갈라졌죠? 마가를 데려가느냐 마느냐에 의해서 서로 다투게 되었고 갈라서게 됐죠. 그런데 이 문제가 두 사람이 그렇게 심하게 다툴 만한 일이었을까요? 그냥 한쪽이 조금 이해해주고 보듬어줬으면 되지 않았을까?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을 보면 복음을 문제 없이 잘 전달한 적도 많지만 어떤 때는 도시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달려들어서 도망친 적도 있었어요. 그런 큰 문제들을 만났을 때는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더 끈끈하게 우정을 다졌던 두 사람인데, 마가를 데리고 가냐 마냐 하는 작은 문제 때문에 싸웠다는 것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에요. 그게 그렇게 크게 싸울 일인가?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우리가 볼 때는 이 문제가 사소한 문제로 보이죠. 그리고 실제로도 바울과 바나바가 겪어 왔던 큰 문제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문제였어요. 그런데 이것을 두 사람이 작은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게 중요해요. 실제로는 작은 문제였지만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죠.
우리들도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들을 갖고 있죠. 큰 문제도 있을 거고 작은 문제도 있을 건데, 그 중에서 남이 볼 때는 작은 문제지만 나한테는 큰 문제인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학교에 준비물이 있는데 안 갖고 갔다든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맘에 안 들게 잘랐다든지, 놀러 갔다 왔는데 슬리퍼가 바뀌었다든지. 아주 작은 문젠데 굉장히 신경 쓰이고 어쩔 때는 짜증도 나는 그런 문제들.
그런 문제들이 내 머릿속에 꽉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정작 큰 문제는 생각이 안 들고 그 작은 문제들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그것만 계속 생각하고 마음을 쏟게 된다는 거예요.
바울과 바나바가 그래요. 그들에게 진짜 큰 문제는 뭐였냐면, 앞으로 어떻게 더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고난과 역경을 헤쳐갈 것인가 하는 거였어요. 앞으로의 자신들의 전도여행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마가를 데려가냐 마냐 하는 작은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결국에는 함께 헤쳐나가야 할 전도여행을 때려치고 각자 따로 가게 됐다는 거예요. 작은 문제가 큰 문제를 엎어버린 거죠.
두 사람이 이 작은 문제를 두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했다면 이 문제는 쉽게 풀렸을 문제였어요. “야, 전에 마가가 쉽게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마음도 굳게 먹었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한번만 믿어주라.” “그래? 알았어. 이번에 믿어볼게. 같이 가자.”
이랬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반대로 “야, 저번에 마가 보니까 마음이 약해서 이번에도 포기할 거 같다. 이번에는 더 힘들고 어려운 곳을 갈 건데, 마가는 나중에 데려가자.”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마가는 놔두고 가자.”
이랬다면 어땠을까? 어느 쪽이 됐든 이렇게만 됐다면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일 없이 더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며 여행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사소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 큰 문제까지 한꺼번에 무너져버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죠.
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문제, 그것은 공부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에요.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음의 문제예요. 내가 복음을 얼마나 잘 아는지, 복음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내가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이 문제 앞에서는 어떤 것도 큰 문제일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복음을 우선해야 하고 만약 그것을 막는 문제들이 있다면 그것을 물리쳐야 돼요.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잠이 방해를 한다? 물리쳐. 친구가 방해를 한다? 물리쳐. 숙제? 시험? 그런 거는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지. 왜 주일에 해. 내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그런 것들은 과감하게 물리쳐야지. 그냥 무작정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미리 할 수 있는 것은 해놓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참고. 복음을 위해서 삶을 살아야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서 살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이 걸린 문제를 허투루 여기지 말고 항상 복음을 먼저 생각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평민교회 중고등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보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