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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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창세기 1:1
“창조주 하나님”
2019. 2. 17
조 정 수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습니다.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연극, 수필, 에세이, 뮤지컬, 오페라. 이 모든 것은 시작이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든 슬픈 이야기든, 재미있는 이야기든 재미없는 이야기든 시작을 해야만 그 이야기를 우리가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죠. 시작도 안 한 것을 어떻게 볼 수가 있을까요? 공책에 점이라도 하나 찍어야 우리가 그 점이라도 볼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은 어떨까요? 성경에도 시작이 있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펴면 어때요? 시작이? 있죠~ 오늘 우리가 본 창세기 1장 1절이 바로 성경의 시작 아닌가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기록한 창세기, 이것이 바로 성경 66권의 시작입니다. 이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존재할 수 있었고, 우리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인 이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이 한 문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할 수 있는 성경구절 1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짧고 간단하니까요. 다른 건 못 외워도 이거는 외울 수 있죠. 세 살짜리 애기도 외웁니다. 절에 다니는 제 친구도 알아요. “니가 이걸 어찌 아냐?” 물어보면, 어디서 들었대요. 그냥 한번 들으면 딱 귀에 꽂힐 정도로, 그만큼 간결하고 심플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한 문장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라는 완전무결한 지식이죠. 친절하게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육하원칙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언제? 태초에. 누가? 하나님이. 무엇을?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다. 우주만물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현대과학도 풀지 못하는 신비를 이 하나의 문장으로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잘 보면 육하원칙 중에 두 가지가 빠져 있죠. “어디서”, 그리고 “왜” 이 두 가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 “어디서” 라는 말은 사실 “태초에” 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태초에 시간이 있었나요? 시간이 없었죠. 공간은 있었나요? 공간도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 무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태초”라고 하는 시간 개념을 일으키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시작”을 만드신 거예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그곳에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인해서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었고, 공간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를 우리는 “태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바로 그 때, 바로 그 곳, 그것이 바로 “태초”입니다. 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하원칙 중에 다섯 가지가 충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하나가 남았죠.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왜” 라는 질문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굳이 천지를 창조하셨을까? 이미 그분 스스로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고, 완벽하신 분입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무리를 지어서 생활합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위로를 얻기 위해서,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유로 인해 인간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아요. 혼자서도 전혀 외로움이 없으신 분이고,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자기충족성” 이라고 합니다. “자기충족성” 자기 스스로 부족함 없이 충족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부족함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 왜, 이 세상을 만드셨을까요?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는 없어요. 한낱 피조물인 우리가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셨어요. 바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제자들을 통해서 기록하신 66권의 성경에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설교할 수 있는 것도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왜 천지를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4절을 보면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그 빛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10절과 12절, 18절, 21절, 25절, 31절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보시면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셨다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특히 사람을 만드신 여섯째 날이 끝난 3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아멘.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며 심히 좋아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보기에 좋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을 가만히 보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에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흐름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가 모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을 만드셨고, 사람이 밟고 설 수 있는 땅과 바다를 만드셨고, 사람이 경작하고 먹을 수 있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셨고, 사람이 일과 휴식을 가질 수 있는 낮과 밤을 만드셨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짐승과 가축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창조된 후에 하나님은 그것들을 다스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31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심으로써 심히 좋았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섯 날 동안의 모든 창조가 바로 이 사람을 위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심심해서 천지를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외로워서도 아닙니다. 뭐가 필요해서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 이하를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부터 28절까지, 같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아멘.
지금 이 26절에서 28절까지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가 인간을 위해서라는 것을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셨고, 그 사람이 피조물들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자기충족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굳이 필요도 없는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빛과 하늘과 땅과 초목과 짐승을 준비하면서까지 사람을 만드신 걸까요? 도대체 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금 전에 함께 본 26절부터 28절까지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다스리게 하자” 바로 이것이죠. 하나님은 사람을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임무를 주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되죠. 왜 하나님은 사람이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을까?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나무를 사람에게 주어서 먹을 거리가 되게 하시면서 왜 사람을 온 땅에 충만하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시고, 다스리게 하셨을까?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시나요? 대답이 없으시군요. 이 답을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직접 대답해주셨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으신 이유가 바로 “나를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행위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원초적인 방법인 우리의 목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을 노래하기를 원하십니다. 한낱 피조물인 사람의 연약한 음성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젊은이의 힘찬 노래나 소녀의 가냘픈 노래나 병든 자의 연약한 노래나, 심지어 말 못하는 자의 소리 없는 노래까지도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그 노래에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찬송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찬송이 하나님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찬송이 없어도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혹시나 하나님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공기중에서 힘없이 흩어져 버리는 이 미약한 노랫소리가 하나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우리의 목숨을 내어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말씀으로 우주를 지으시고 말씀만으로 그것을 다시 없애실 수 있는 하나님.
하지만 그러한 위대하신 하나님이 정말 이해할 수 없게도 피조물 중에서도 작고 미약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노래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노래를 들으시고, 우리의 몸짓을 바라보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높이우는 것. 전능하신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너무나 겸손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지으셨고, 또한 우리를 탐욕과 죄악에서 건져주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위하여서 우리가 어찌 찬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깊이 깨닫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노래를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곳에 던지곤 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5절을 보면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 신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그 신들이 하늘과 땅에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800만이나 되는 신이 있다고 하잖아요. 태양신, 달신부터 해서 집에 사는 신, 장독대 신, 나무 신, 돌멩이 신, 이런 신들이 일본에만 800만인데 전 세계적으로는 얼마나 많겠어요.
이런 신들에게 사람들이 찬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목적을 상실한 것이죠. 고린도전서 8장 6절에서 목적을 상실하고 헛되이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누구에게 찬송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아멘.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났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이 한 분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있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주셨습니다. 왜?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노래를,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입술의 말과 우리의 음성을 듣기를 즐거워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분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토록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을 잃어버리지 말고 우리를 지으시고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며 구원의 기쁨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