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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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설교>
마태복음 5:1-3
“천국의 주인”
2018. 12. 16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산상수훈에 대한 내용입니다. 산상수훈은 말 그대로 산 위에서 가르침을 주신다는 뜻이에요. 산상, 산 위에서, 줄 수, 가르칠 훈. 가르침을 준다. 산 위에서 가르침을 준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어떤 산 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무리가 다 어디서 왔냐면, 오늘 본문 앞에 4장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그 일행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온 갈릴리 땅을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백성들의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하신 것이 나와요. 그러다보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수리아 땅에 퍼진 거예요. 예수라는 분이 온갖 병자들을 다 고쳐주신다더라, 우리도 한번 예수님을 찾아가보자. 이런 생각을 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그래서 4장 2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ppt)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소문을 듣고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따랐다는 거죠. 그리고 바로 이 무리가 오늘 본문 5장 1절에 나오는 그 무리예요. (ppt)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ppt) 앞에 사진을 보면 작은 산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지금 예수님과 무리가 서있는 산이에요. 산이라기보다는 동산이나 언덕 정도로 볼 수 있는 작은 산이에요. 꼭대기에 보면 오른쪽에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기념해서 만든 팔복교회가 있어요. 당연히 예수님이 계실 때는 위에 교회도 없고 아무 건물도 없었겠죠. 이 산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빈산이었어요. 그런데도 이 빈 산 위에 예수님이 올라오신 이유가 뭘까요? 당연히 자신을 따라온 무리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죠. 산은 아무런 방해 없이 사람들이 집중해서 잘 들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리고 “산”이라는 장소는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소예요. 예수님은 때때로 산에 홀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어요. 그리고 구약을 보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장소가 어디죠? 시내산이죠. 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요. 그만큼 산은 성경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소예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서 벗어나 있는 조용한 장소. 멀리 바라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그런 장소. 그게 바로 산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일부러 산 위로 올라오신 거예요. 이곳에서 무리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
(ppt) 그런데 1절을 다시 보면 예수님이 무리를 가르치시려고 산 위에 앉으시니까 제자들이 나아왔다고 그래요. 무리 속에 같이 있다가 거기서 예수님 앞으로 나온 거예요. 왜 갑자기 제자들이 나왔을까? 그것은 예수님이 자리에 앉으셨기 때문이에요. 유대 사회에서는 랍비들이 가르칠 때 자리에 앉아서 가르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었어요. 그래서 같이 길을 가다가 랍비가 돌이나 땅바닥이나 어디에 자리를 잡고 앉아면 “아, 이제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제자들도 예수님이 자리에 앉으시니까 가르침을 시작하시려고 하신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온 거예요. 그 가르침을 더 잘 들으려고.
그런데 이때는 제자들이 아직 열두 명으로 정해지지 않은 때였어요. 지금은 마태복음 5장인데, 나중에 10장에 가서야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거든요. 지금 있는 제자라고 해봐야 베드로,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의 형제 요한. 이렇게 4명뿐이었어요. 열두 제자 중에 넷만 지금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 제자는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지금 같이 있는 베드로나 안드레나 요한이나 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에요. 누구를 말 하냐면, 바로 지금 같이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온 모든 무리,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는 이 모든 사람을 여기서 “제자”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나아왔다는 말은 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 예수님께 가까이 왔다는 말이에요.
(ppt)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기 시작하셨어요.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신 가르침,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이에요. 산 위에서의 가르침, 이걸 한자로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거죠. 이 산상수훈은 내용이 엄청나게 길어요. 5장에서부터 7장까지가 다 산상수훈 내용이에요. 그 중에서 오늘은 5장 3절까지만 볼 건데, 사실 3절부터 10절까지가 한 단락이에요. 3절부터 10절까지 내용을 보통 “팔복수훈” 이라고 말해요. 왜냐하면 여덟 가지 복에 대한 내용이거든요. 여덟 가지 복, 그래서 팔복이에요. 그런데 이걸 한 번에 설교하려면 최소 1시간은 걸려요. 그래서 오늘 1절에서 3절까지만 보는 거예요. 3절이 팔복 중에 첫 번째 복에 대한 내용인데, 이것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딱 3절까지만 본문을 잡았어요. 자, 그럼 첫 번째 복에 대해서 봅시다.
(ppt)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여기서 가난한 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를 말해요. 돈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는 가난한 자, 신약시대에는 이런 가난한 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밥을 사먹을 수도 없고 옷을 사 입을 수도 없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광장에 나가서 누가 자기를 일꾼으로 써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젊고 몸이 건강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몸이 약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냐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는 거예요. 누가 나를 일꾼으로 데려가거나, 누가 나에게 돈을 던져주거나. 이런 도움이 있어야만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가난한 자 앞에 무슨 말이 있죠? “심령이”라는 말이 있죠. 가난하긴 가난한데, 뭐가 가난하냐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도대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심령”은 인간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요.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텅 비어있다”는 말이에요.
조금 전에 가난한 자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죠. 그것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는 그 영적인 가난함을 내 스스로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 채워야 돼요. 심령의 가난함, 그 영적인 가난은 내가 채울 수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채울 수 있어요. 가난한 자가 길거리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구걸하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돼요. 가난한 우리의 심령은 결코 우리 스스로 채울 수 없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돼요. 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먼저 깨닫고, 그것을 내가 스스로 채울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아야 돼요. 그래야만 하나님께 채워달라고 구할 수 있어요. 빨리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심령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첫 번째 복이에요.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복을 받아요. 무슨 복이냐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복이에요. 천국을 소유할 수 있어요.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천국이 원래 누구 거예요? 하나님 거지. 그런데 그 천국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는 거야. 심령이 가난한 자라면 누구나. 정말 놀라운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들이 갖고 있던 천국에 대한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었거든. 이 사람들은 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천국개념을 갖고 있었어요. 구약성경을 보면 가난한 자에 대한 구절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그 구절들을 보면 대부분이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해주신다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냐면, 다윗의 자손이 메시야로 오셔서 다시 한 번 강대했던 다윗 왕국을 일으켜 세우면 가난한 자들이 다 그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메시야가 오기 전까지는 이 가나한 사람들은 그냥 소망 없이 그저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가는 거예요. 메시야가 와야만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언제 올지 모르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메시야가 나타난 거예요.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분이 바로 메시야라고 생각했어요. 이 땅에 다윗 왕국을 일으켜서 우리를 구원해주실 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른 거예요. 예수님이 나라를 세울 때 그 나라의 백성이 되려고. 그 나라의 개국공신이 되어서 이 지긋지긋한 가난 떨쳐버리고 좋은 자리 차지해서 살려고.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다 깨트려 버리셨어요. 천국, 하나님의 나라, 이 땅에 임할 그 거룩한 나라는 단지 메시야를 따르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옆에 붙어 있다가 어떻게 한 자리 해볼려고 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천국은 그런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에요. 내 심령, 내 영적 상태가 가난하고 가난해서 파산해버린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 지를 통회하고 이런 나에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소망이고 구원이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런 사람이 천국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어때요? 이 사람들은 돈이 없어요.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심령은 가난하지 않아요. 자기들의 물질적인 가난은 알고 있지만 심령은 가난하지 않고 가득 차있어요. 내가 메시야를 따라다니다 보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과 메시야가 세우는 나라에서 한 자리 해보려는 생각과 메시야를 만났기 때문에 벌써부터 내가 뭔가 다른 사람과는 차별된 사람처럼 여기는 생각. 이런 허영심과 교만과 잘못된 생각들로 꽉 차서 정작 자신의 심령이 어떤 모습인지,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너희의 심령을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거예요.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이다. 그런데 과연 너의 심령은 어떤 상태이니?” 라고 질문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의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큰 충격을 받았어요. 자기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천국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뒤집어진 거예요. 메시야를 따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메시야를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영적 가난을 깨닫고 그것을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 뒤에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예수님은 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ppt)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단지 “주여 주여” 하면서 메시야를 따른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산 위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따른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말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소망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다짐하고 결단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돼요. 나는 날 때부터 죄인이고,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나 혼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며 죄에 얼룩지고 찢어진 심령을 회개하며 오직 한 분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우리의 가난한 심령을 어루만지시고 밝은 빛으로, 그 한량없는 은혜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돼요. 바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돼요. 저와 그리고 여러분이 모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천국, 그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 되어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