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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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에스겔 3:24-27
“너의 일을 하라”
2019. 2. 3
조 정 수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포로로 붙잡아 끌고 갈 때 함께 잡혀간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당시 최강으로 군림하던 앗수르 제국을 물리치고 앗수르에 뒤이어서 최강대국이 되어 근동 지역을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총 세 번에 걸쳐서 예루살렘에서 포로들을 끌고 갔습니다. (ppt) 첫 번째는 기원전 605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기원전 597년, 바로 이 때 에스겔이 잡혀가게 됩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기원전 586년에 느부갓네살 왕이 세 번째로 예루살렘을 침략하였는데, 이때 결국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바벨론의 두 번째 포로로 잡혀온 에스겔이 잡혀온 지 5년째 되던 해에 일어난 내용입니다. 에스겔은 본래 솔로몬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으로서 정통 제사장 혈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인 서른 살이 되면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수기 4장 1절, 2절,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을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집계할지니.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이 말씀처럼 회막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핫 자손들뿐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고핫 자손이었어요.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삼십 세 이상, 오십 세 이하의 고핫 자손을 파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안의 사람들만이 회막 안에서 거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삼십 세 이상. 그래서 제사장은 삼십 세가 되어야만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에스겔이 삼십 세가 된 것이죠.
    오늘 본문에 앞서서 에스겔 1장 1절을 보면 서른 살이 된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바로 저 “서른째 해” 라는 말이 바로 에스겔의 나이를 뜻합니다. 내가 태어난 지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가 되었다, 라는 말이죠. 그리고 2절을 보면,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여호야긴 왕은 에스겔과 함께 잡혀 온 유다의 왕입니다. 그래서 여호야긴 왕이 잡힌지 오 년 됐다는 말은 에스겔이 잡힌 지 오 년 됐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종합해보면, 에스겔은 스물다섯 살에 잡혀 와서 5년이 지났고,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1장 3절을 계속해서 보면, 에스겔은 이미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은 이제 서른 살이 되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본인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 서른 살이 되었으니까, 이제부터 나는 제사장이다!” 이렇게 선포하고 있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교만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빨리 제사장이 되어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싶은 열정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하나님이 왜 찾아 오셨겠어요? 그만한 열정과 신실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았겠어요? 
    어쨌든 이제 에스겔은 제사장이 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제사장으로 쓰시지 않았어요. 회막에서 일하는 제사장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로 부르셨어요. 2장 3절을 볼까요?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 온 백성들을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들이라고 지칭하면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패역한 백성, 이 말의 히브리어는 “베트 므리 헴마”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적인 반역을 저지르는 족속이라는 뜻이 답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저 유다 백성들이 단순히 원망 때문에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의 근본에서부터 완전하게 돌아서서 나를 배척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계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신앙을 잃다 못해 아예 신앙을 내팽개쳐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상태가 이런데, 과연 에스겔 혼자서 열심히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그 제사가 하나님께 열납 될까요? 물론 에스겔은 신실하니까 그 믿음대로 살다가 구원을 받게 되겠죠. 하지만 백성들은? 그냥 사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선포해서 백성들의 영을 깨울 선지자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제사장이 아니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 패역한 백성들에게 가서 나의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말을 전할 때 어떻게 전하라고 하시냐면,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하지 말고 말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2장 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그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너는 “너의 일을 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보면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있는데 그 내용이 조금 이상합니다. 24절,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지금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아니, 밖에 나가서 백성들에게 선포해야 하는데 왜 갑자기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하시는 걸까요? 이 밑에 25절은 더 가관입니다.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장난 아니죠? 가만히 집에 있는데 사람들이 불법침입해서 에스겔을 줄로 묶어버린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클라이막스는 26절입니다.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이제는 완전히 말을 못하게 혀를 입천장에 붙여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말을 해야 할 선지자를 벙어리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아니 이럴 거면 왜 선지자로 부르셨을까요? 그냥 제사장으로 있게 놔두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27절을 보면,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됩니다. 27절 함께 볼까요? 시작,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내가 너와 말할 때” 네 입을 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신 이유입니다. 내가 너와 말할 때, 즉 내가 하는 말을 듣는 그대로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더도 말고. 오직 내가 하는 말만! 하라는 것이죠.
    에스겔 3장 14절을 보면 에스겔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에스겔은 제사장이 될 사람으로서 신앙심이 투철하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날마다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와서도 5년간 변함없이 믿음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에스겔이 보기에 하나님을 반역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이 어땠을까요? 당연히 화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에게 가서 외치라고 하시는데, 어이가 없는 것은 외쳐도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가서 외치라는 거예요. 차라리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르는 그런 일을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 에스겔의 마음은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이런 마음 상태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안에 있는 분노와 답답함과 근심과 걱정들이 버무려져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왜곡된 말이 나오고 말 것입니다.
    선지자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선포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나의 말,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어떠한 언어들을 선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6절을 다시 보면 에스겔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에스겔이 자기가 붙잡힌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오는 분노와 절망과 같은 자신의 감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백성들에게 쏟아내지 못하도록 막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결코 자신의 말로 백성들을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으로 그들을 깨우치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세상에 복음을 전할 것을 명령 받은 자들로서, 우리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때 오직 우리에게 허락된 복음만을 전파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말이 아니라 오직 복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상대방의 반응은 둘 중 하납니다. 듣거나 아니면 안 듣거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들은 듣지 않습니다. 피해버리고, 무시하고, 뒤돌아서버립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반드시 듣는 자가 있습니다. 27절 끝에도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아무리 반역하는 족속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들을 자는 듣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극히 어려운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음은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어서 분명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누군가는 듣고 그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때에 일어납니다. 내 감정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상식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만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어떤 핍박과 멸시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때 우리에게 분노와 좌절이 몰려온다면, 그때 반드시 침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말하지 못하는 자로 만드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침묵으로 그 상황을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으로 하는 말로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복음에서 떠나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지 복음을 날려버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5장 18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말은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그 말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내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부터 나온 말이라면, 그 말은 사람을 깨끗케 합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생명의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패역한 저 세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변화되길 소망하고 기대하며,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또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 말 못할 아픔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묵묵히 여러분이 해야 할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헌신이 벽에다 대고 외치는 것 같은 막막함과 외로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렇지 않은 날보다 그런 날이 훨씬 많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의 어려움을 주님께서 이미 아시고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하늘에 상급으로 쌓여갈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용기를 가지고 담대하게 꿋꿋하게 여러분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너의 일을 하라”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세상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주의 종이 되어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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