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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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고린도후서 12:7-10
“육체의 가시”
2018. 12. 23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고린도후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 다 아시죠?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 가장 말썽도 많고 가장 바울을 힘들게 한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어요. 고린도전서 2장 3절을 보면, (ppt)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라고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너희 가운데 거하면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때 기쁨과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저 두렵고 떨렸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그만큼 고린도인들의 영적 상태가 문제가 많았어요. 고린도는 지중해 북쪽의 항구도시였는데, 바닷가 도시다보니까 도시 전체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도시였어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다보니까 도시가 아름다움과 성적인 매력을 추구해서 성적으로 타락과 방탕함으로 물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고린도에서 처음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은 자신이 없었어요. “과연 이곳에서 복음이 제대로 전해질까? 과연 이 도시의 사람들이 복음을 믿을까?” 이런 의심과 불안함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내가 두렵고 떨렸다”고 고백한 거예요. 
    그런데 그런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놀랍게도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졌어요.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전도한 결과 타락의 도시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예전에 우상숭배 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기도 하고, 파벌을 갈라서 누구는 베드로파, 누구는 아볼로파, 누구는 바울파 이렇게 편을 갈라서 싸우고, 또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또 바울의 뛰어나지 못한 언변을 무시하고, 또 바울의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이런 문제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그 중에 가장 큰 문제가 뭐였냐면 바로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한다는 것이었어요.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으로 끌고 가던 율법주의자였어요. 그래서 바울을 싫어하는 어떤 사람들이 어느날 고린도에까지 찾아와서 바울에 대해서 험담을 한 거예요.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복음을 믿기는 믿는데, 제대로 안 믿고 이상하게 믿는 이단 기도교인들이었을 거라고 추정을 해요. 바울은 그 사람들을 ‘거짓 사도들’이라고 불렀어요. 이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교회를 찾아와서 바울에 대해서 험담을 했어요. “바울 쟤는 진정한 사도가 아니야. 예수님을 만나보지도 못했고, 옛날에 그리스도인들을 엄청나게 잡아간 악독한 놈이야. 쟤 믿지 마.” 이렇게 뒷담화를 한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시끌시끌해졌어요. 어쩌면 고린도교회가 흩어져버릴 수도 있는 그런 암울한 상황에 빠졌어요. 
    그래서 바울은 어떻게든 고린도교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또 자기가 직접 찾아가기도 했어요. 오늘 우리가 보는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네 번째 편지예요. 총 네 번을 보냈는데, 네 번째니까 이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죠.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진정한 사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없고 말재주도 별로 없어서 많이 부족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수많은 역경들을 헤쳐왔고, 또 예수님이 환상과 계시를 보여주셔서 엄청난 비밀을 체험했다고 말해요. 저 거짓 사도들은 사람들이 소개를 하고 추천서를 써줘서 사도가 됐지만, 자신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직접 사도가 되라고 임명을 해주셨고, 또 놀라운 환상을 보게 하고 신비한 일들을 체험하게 한 엄청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바울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더 이상 이런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더 말하지 않아요. 이제 무슨 말을 하냐면, 내가 이러한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면서 오늘 본문인 7절의 말을 하는 거예요. (ppt)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7절을 보면 바울은 자기 몸에 가시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을 바울은 다른 말로 사탄의 사자라도 표현해요. 많은 학자들이 과연 이 육체의 가시가 무엇일까? 알아내려고 연구를 했어요. 눈 질환, 부족한 언변, 고질적인 어떤 질병이나 육체적 고통, 거짓 사도들의 방해, 혹은 때때로 찾아오는 좌절감이나 전도 실패에 따른 실망감 등등.. 많은 연구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연구의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바로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육체의 가시가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어쩌면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어떤 것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울에게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거예요. 7절을 다시 보면 바울은 이것을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해요. 그리고 그것을 주신 이유가 내가 받은 계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내가 자만할까봐 내가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주신 것이라고 말해요. 바울의 이 말처럼,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가 아니었다면 쉽게 자만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시시때때로 성령이 바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또 위기상황에서 신기한 방식으로 피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복음을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되니까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도 어깨가 으쓱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거죠.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가시가 바울을 고통스럽게 하고 괴롭혀서 바울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8절을 보면 (ppt)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 간구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서.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바울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세 번이나 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도 가시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여전히 몸에 남아서 끊임없이 바울을 찌르고 괴롭혔어요. 
    그리고 이제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말해요. (ppt)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자신이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을 때 주님이 들려주신 응답의 말씀을 들려주고 있어요. 내가 간구했을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주님은 바울에게 이미 부족하지 않은 충분한 은혜를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미 바울에게 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은혜는 바울의 지식이나 건강이나 배경이나 어떤 신비한 체험이나 환상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주님께 간구하는, 내가 꼭 고침 받고 싶고 해결 받고 싶고, 내 인생에서 완전히 떠나갔으면 하는 바로 그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주님의 은혜가 드러난다는 말이에요. 전혀 사람들이 보기에 은혜가 안 될 것 같은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 속에서 주님의 은혜와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변화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기뻐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약함을 더 이상 감추거나 숨기지 않고 그것을 자랑하겠다고 말해요. 왜냐하면 이 약함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말해요. 그리고 자랑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겠다”고까지 말해요. 나의 약함과 모든 괴로운 일들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기뻐하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약한 그 때에 내가 진정으로 강한 주의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이 깨달음처럼, 여러분도 약함을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 남보다 못한 상황들, 주위 사람들의 어떤 편견, 세상이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들.. 내가 가진 그 어떤 문제나 연약함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실 일들을 위하여 우리를 능히 온전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상황이 지금 우리 중고등부의 상황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저는 며칠 뒤면 광주로 떠나요. 광주에 있는 교회로 갑니다. 이제 그곳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하게 되는데, 제가 떠나고, 또 이미 숫자도 많이 줄어 있는 우리 중고등부가 어쩌면 지금이 가장 연약하고 힘든 시기일 거예요. 새로운 전도사님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새로운 학생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럴 때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더욱 분명하게 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자신의 약함 때문에 고린도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있었지만 그 약함이 오히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임을 깨닫고 더욱 주님을 의지함으로써 내가 이제는 약함을 자랑하고 기뻐함으로써 주의 백성으로서, 주의 자녀로서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 10절을 우리 함께 보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멘.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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