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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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신명기 34:1-7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2019. 2. 10
조 정 수
    어렸을 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땐가 수련회를 갔습니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거기서 애들끼리 텐트를 치고 밥도 애들끼리 해먹었어요. 텐트랑 밥솥이랑 냄비랑 쌀이랑 다 우리가 갖고 와서 애들끼리 다 알아서 했어요. 낮에는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 밤에는 캠프파이어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진행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었냐면, 유서를 쓰는 것이었어요. 유서. 만약 내가 죽는다면 무슨 말을 남길까. 내 가족과 내 친척과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될까. 내가 조금 있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고 편지지에 유서를 썼는데, 그때 뭐라고 썼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 한 마디는 기억나요. 무슨 말이었냐면, “억울하다.” 이 말이 기억납니다. 억울하다. 내가 아직 10살 밖에 안 됐는데 왜 죽냐. 이런 생각으로 썼던 거 같애요. 만화도 봐야 되고 우체국에 4만원인가 저금한 돈도 써야 되고, 여행도 가야 되고, 할 게 많은데 왜 지금 억울하게 죽을까. 이런 억울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여러분이라면 유서에 무슨 말을 남기겠습니까? 부모님께 행복하시라고 말씀도 드리고 효도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하고, 또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고. 보통 유서는 이런 식으로 쓰죠.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들, 감사하고 싶은 말, 사과하고 싶은 말, 꼭 하고 싶었던 그런 말들.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는 그런 말을 남기려고 합니다.
    자,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오늘 본문은 모세가 죽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모세가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갑니다. 꼭대기에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넓은 땅을 보여주십니다. 길르앗과 단과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유다와 여리고와 소알까지, 여호와께서 내가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모든 땅을 모세가 다 살펴보도록 하셨어요. 
    그리고 4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냐면,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너무나 억울한 말이죠. 약속하신 땅을 보여주시고는 그 땅에 너는 건너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럴 거면 보여주지나 말지. 산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왔더니 눈으로 보기만 하라고 하시다니. 저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저 아름다운 세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단지 눈으로만 봐야 한다는 사실이 모세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까요.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저곳에.. 물론, 실제로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요. 상당히 멀었죠. 산 꼭대기에서 봐도 사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아요. 하지만 7절을 보면 모세의 나이가 백이십 세였지만 그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그래요. 말 그대로 여전히 시력이 좋았다는 거죠. 그래서 모세는 그 좋은 눈으로 멀리 있는 가나안 땅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자세하게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정말로 손을 내밀면 닿을 것처럼, 모든 정신을 눈에 집중했을 겁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가면 되는데, 무려 40년이나 되는 세월을 넘어 광야를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벗어나 그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뚫고 여기 왔는데. 잔인하게도 하나님은 나를 여기에서 멈추라고 말씀하시네.
    여러분, 모세는 80살이 되었을 때 처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이 이루어지죠. 호렙산에 양 떼를 데리고 갔다가 떨기나무에 붙은 불꽃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았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신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40년간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80살에 출발하여 40년이 흐르고, 이제 모세의 나이는 120살입니다. 
    7절을 다시 볼까요?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세는 40년의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 죽었습니다. 120세라는 나이에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죽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120이라는 많은 나이였지만,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지만 여전히 그는 젊은이와 같은 눈과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멀리 볼 수 있어서 요단강 건너 길르앗 온 땅과 유다 온 땅과 여리고 골짜기와 소알까지 모두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푸른 초장과 잔잔하게 흐르는 시냇물, 평화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 그 모든 것이 모세의 눈에 보였습니다. 아직 더 갈 수 있는데, 아직 더 할 수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그곳에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모세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걸까요? 그것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있을 때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흔히 “므리바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이 사건이 민수기 20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가데스에 이르렀는데 물이 없어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원망하며 비난을 했습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끄집어내서 여기서 죽게 하냐? 여기는 물도 없고 과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막 비난을 했어요.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어요. 민수기 20장 8절입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하나님이 방법을 알려주셨죠.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모아 그들 앞에서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면 물이 나올 거라는 거죠. 
    그래서 모세가 그 방법대로 행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한 그대로 한 게 아니고 조금 다르게 했어요. 11절을 보면,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지금 보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죠. 하나님은 지팡이를 들고 반석에게 말을 하라고 하셨지 반석을 치라고 안 하셨거든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거예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 앞에 10절이에요.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여기서 이 말이 문제예요.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모세가 백성들에게 감정이 북받쳐서 막 말을 쏟아내고 있어요.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너희 같은 반역한 자들에게 우리가 물을 내줘야겠냐? 이런 말이에요. 너무나 오만한 말이죠. 마치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물을 낼 수 있다는 듯이,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물을 낼 수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 단어가 가장 문제예요. 하나님이 물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물을 낼 수 있다는 거죠. 너희에게 물을 주는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거예요.
    이런 모세의 말에 대해서 시편 106편 32절, 33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어요.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모세가 망령되이 말하였다는 거죠. 하나님을 드러내고 높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포장한 것을 꾸짖고 있어요.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20장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이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겁니다. 또 너희만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 여호와에게 반역한 백성들 역시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처럼 아론은 이곳 가데스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르 산에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배경인 비스가 산에서 이제 모세도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번의 잘못으로 인해 40년의 고생이 날아가고 꿈꾸던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죽어야 하는 모세의 심정이 어떨까요? 지금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있는 모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구하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저 땅을 차지할 백성들을 부러워했을까요?
    민수기 27장을 보면 우리는 모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27장 12절부터 14절까지를 보면 좀 전에 봤던 민수기 20장 내용과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아까 본 말씀하고 거의 비슷하죠. 그런데 한 가지가 다릅니다.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이게 무슨 말이에요? 아론이 이미 죽었다는 말이죠. 네 형 아론이 죽어서 조상들에게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말씀은 아론이 죽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네가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말씀입니다. 아니, 이미 잘 알고 있는데 왜 굳이 또 말씀을 하셔서 속을 뒤집어 놓으실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모세는 전혀 기분 나빠 하지도 않았고, 속상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믿기 힘들게도 모세는 하나님께 한 가지 간구를 하고 있어요. 무슨 간구인가 하면, 백성들을 위한 간구입니다. 27장 16절, 17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27장 16절, 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 
    참으로 놀라운 간구입니다. 자신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그 말을 들었음에도 모세는 자신을 위한 간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나도 제발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죽고 나면 백성들이 목자 잃은 양처럼 갈 바를 모르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러지 않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뒤이을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앞에서 모세는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거나 못다 이룬 꿈에 미련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이제 곧 인도자를 잃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걱정했습니다. 지금까지 40년간 모세라고 하는 인도자를 따라온 저 백성들이 이제 모세가 사라지고 나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혹시나 목자 없는 양떼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 않을까? 이런 걱정하는 마음만이 모세의 마음에 가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 간구를 들으시고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그를 데려다 안수하고 너의 존귀를 그에게 돌려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자 잃은 양이 아니라 여전히 믿을 수 있는 목자의 인도를 따라 약속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제사와 절기를 지키도록 가르치고, 미디안과 전쟁하여 승리하고, 전리품을 분배하고,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했을 때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까지도 다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는 신명기 32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어떻게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어떤 광대한 능력을 가지셨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우리를 돌보실 것인지를 노래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마쳤을 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 땅을 볼 것이나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참으로 냉정하시죠. 방금 하나님을 노래한 모세에게 정말 냉정하게도 너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들어가지 못하리라. 네가 여기서 죽으리라.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하는 그 말씀 앞에서 모세는 무엇을 했을까요? 그 냉정하고 매정한 말씀 앞에서, 신명기 33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모세의 다음 행동은, 놀랍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40년간 함께 울고 웃었던 이스라엘. 때로는 말도 안 듣고 사고도 치고 속도 많이 썩였던 이스라엘. 그래도 끝까지 함께 따라와 준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각 지파마다 축복하고 축복했습니다. 
    마치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과 그리고 제자들에게서 복음을 전해 듣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것처럼. 모세도 비스가 산에 올라가기 전에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축복을 마치고 신명기 34장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모세는 비스가 산에 올라가 요단강 건너 온 땅을 눈으로 본 뒤에 죽었습니다. 두 발로 밟을 수 없는 그 땅을 바라보며 그 땅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았습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그 밑에 드리워진 구름 그림자와 평원과 언덕과 강줄기와 나무들과 수많은 생명들.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짧은 순간이나마 그 땅을 정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을 겁니다. 길르앗에서부터 유다와 네겝과 소알까지. 그 땅에서 곡식을 수확하고 양떼를 기르고 날마다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며 찬양하는 모세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을 겁니다. 그리고 그곳엔 자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도 함께 있었을 겁니다. 
    그 짧은 행복한 상상을 끝냈을 때 모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숨을 거두었을 겁니다.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었겠죠. 왜냐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산에 올라오기 전에 다 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르쳤고, 모든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할 모든 준비가 끝난 거죠. 그 어떤 유언도 유서도 남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한 마디를 남겼다고 가정한다면 그 한 마디는 과연 어떤 말일까요? 제가 초등학교 때 썼던 것처럼 “억울하다” 이 말일까요? 아니요. 아마도 그가 한 마디를 남긴다면 바로 이 말을 남겼을 겁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3년간의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십자가 아래를 둘러보신 후에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죽으셨던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획하신 그 모든 일을 다 끝마치고 가나안 땅을 둘러본 후에 “다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성경에는 모세가 유언을 남겼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가정일 뿐이에요. 
    모세의 죽음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모든 것을 끝마치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위대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시각으로 본다면 참으로 초라하고 비참한 죽음입니다. 아무리 잘 포장한다 해도 모세는 그 힘들었던 40년의 수고와 헌신에 대한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BMW라도 한 대 몰아봤으면 모를까, 전혀 받은 상급이 없어요. 자식들이라도 잘됐으면 모르겠지만 모세의 아들들이 뭔가 어떤 업적을 쌓았다는 기록이 성경에 전혀 없어요. 그냥 모세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게르솜과 엘리에셀이었다. 이렇게만 나와요. 기록할 만한 어떤 특별한 내용이 없는 거죠. 그만큼 모세는 너무나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어요. 말 그대로 실패한 인생이죠. 더구나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모세의 무덤이 어디인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에 유다 왕국이 세워지고 그 나라의 최악의 왕이라고 손꼽히는 오므리 왕이나 아합 왕 조차도 죽어서 왕립 묘지에 묻혔어요. 그런데 민족의 영웅이고 위대한 인도자였던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도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가 다 무덤이 어딘지 알아요. 그런데 백성들을 430년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낸 모세는 어째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쓸쓸하게 묻혀야 했을까? 받은 것 없는 인생에 무덤 하나라도 남겨두게 하시지 왜 하나님은 무덤까지도 알 수 없게 만드셨을까?
    여러분, 그것은 모세의 무덤이 없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모세의 무덤을 우상화 하고,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모세의 무덤 앞에서 절을 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에이, 설마 모세의 무덤을 숭배하겠어?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도대체 왜 저래? 싶은 장면들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하지 말라면 꼭 하고, 하라고 하면 안 하는 청개구리 같은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에요. 모세의 무덤이 있으면 분명히 거기서 제사 지내고 절을 할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우상숭배 할 만한 가능성을 없애버려야 돼요. 과거에 모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숭배했던 것처럼, 여호수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드리고 절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래서 모세의 무덤을 아무도 모르게 했어요. 오늘까지도 모세의 무덤이 어딘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묻혀서 최후까지도 초라했던 선지자. 오직 백성들의 신앙에 유익이 되기 위해서 그는 그렇게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그가 초라한 최후를 맞이했다 할지라도, 그의 이름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밑을 보면 10절부터 마지막 12절에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아멘.
    모세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다. 모세 이후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일어났지만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문용어로, 클라스가 다르다, 라고 합니다. 클라스가 다르죠.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을 전달받은 사람이었고, 또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었어요. 이스라엘의 가장 큰 선지자. 그가 바로 모세, 입니다.
    그는 지난 40년간 청개구리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목표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모든 수고와 노력에 대한 대가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고, 전쟁에 승리하게 위해 노력했고, 흐트러짐 없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는 경주를 했습니다. 그 경주의 끝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아니라 이름 없는 무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해야 될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도 어쩌면 모세의 인생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하고 헌신해도 결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는 그런 실패한 인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화려하게 불꽃을 터트리지 못하고 허무하게 픽 꺼져버리는 실패한 불꽃놀이 같은 그런 인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록 내가 가고 싶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내가 기대한 성적에 못 미치고,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실패한 인생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생이 진짜 실패한 인생입니다. 부유하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인생은 낙엽과 같은 인생입니다. 생명이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인생은 비록 초라한 잡초 같을지라도 그 인생은 생명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음성에, 그 말씀에 거역함 없이 순종과 겸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이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실패가 아닌 진정한 생명과 영광의 인생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주와 함께하는 한 우리는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그날에 반드시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를 의지하며 주만 바라보며 담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의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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