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1-19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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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1. 도입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당신을 믿으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역전의 역사를 행하시는 분이 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게 합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서의 등장하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말살 위기에 있었던 유다 백성들을 역전의 역사를 통해 구원하심으로 한 번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도록 하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역전의 역사를 행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사실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기대하며 나가길 소망합니다.
2. 강해
2. 강해
하만의 간계로 내려진 왕의 조서로 인해 민족 말살 위기에 처해있던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세우신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서 역전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모르드개는 서기관들을 불러 먼저 내려진 칙령을 상쇄할 만한 조서를 다시 작성하여 왕의 이름으로 전역에 반포하게 했고, 이제 그 칙령의 명령대로 일을 행하고자 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더 9: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12월 13일에 앙의 명령에 따라 먼저 내려진 칙령의 내용대로 유다인들의 말살이 예고된 날이 이제는 오히려 유다인들이 합법적으로 그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그의 민족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없는 시험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심으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일정이 바껴서 급하게 생각지도 못한 일을 준비할 때가 있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 억울하게 모함을 당할 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감당못할 시험이 없습니다. 그분이 시험의 순간에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유다 민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이름으 한 번도 드러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새로운 살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억울한 죽음에서 구할 지혜를 모르드개에게 허락하셔서 이제 새로운 칙령으로 앞에 하만이 내린 칙령의 위협으로부터 벗날 수 있는 길을 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은 모르드개의 명성을 높이셔서 많은 고관들이 유다인을 돕도록 하였습니다. 3-4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더 9:3–4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 되십니까? 그것은 “감당할 시험을 주시고, 피할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 가운데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연단과 보호를 위하여 시험을 주시되 피할길을 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오늘 우리 삶도 인도하시고, 유다 민족을 인도하셨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을 때,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을 말살 위기에 몰아넣었던 하만의 자손들까지 모조리 죽였습니다. 7-10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더 9:7–10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유다 자손은 하만의 자손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재산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이 전쟁은 정복을 위한 야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원수와 싸우시는 전쟁이었고, 대적들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군입대를 하면, 부대를 개방하여 부모님을 초청하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군입대 후 모두가 머리를 빡빡 밀지만, 그래도 부모는 멀리서도 자기 자식을 찾아냅니다. 그만큼 자식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아시고 보호하십니다. 때로는 “이정도 까지 사랑하시나?”싶을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위협하던 하만의 자손을 모두 멸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모사랑의 결정타는 “편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같은 형제 자매 가운데서 편애는 잘못된 것이지만, 남과 내 자신 간에 편애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본문에 나온 하나님은 유다의 백성들과 그들을 위협하는 페르시아의 백성들을 확실하게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정도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느냐? 아들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이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이죠.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되시기에 우리는 어디서나 이 자존감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자존감의 근원이 되는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살아계시며, 무소불위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시며,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내 모습이나, 내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 자존감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유다 자손은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의 잔치를 베풀게 됩니다. 17-18절을 보겠습니다.
에스더 9:17–18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각 지방 전역에서는 13일에 모여 14일에 잔치를 베풀었고, 수도 수산에서는 13-14일에 모여 15일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둘의 잔치는 단순히 축하와 수고의 잔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방 땅에서도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잔치였습니다. 포로된 땅에서 하나님을 기념하는 잔치를 여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아무리 척박한 광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곳도 잔치를 장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도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유다 민족과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를 거류민과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본적은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살며 누구나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마치 포로생활을 하던 유다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그들 처럼 하나님께서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 승리를 기억하며 잔치를 열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나그네 삶에 잔치 공동체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늘 예배로 함께하시며,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자 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내 환경은 왜 이렇지, 내 모습은 또 왜 이렇지… 이런 생각은 접어 두고 어디서, 어떤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를 잔치를 초대하시는 하나님 앞에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유다 민족이 승리한 것과는 비교할 수는 없는 영원한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이루신 하나님께서 예배라는 잔치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3. 결론
3.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유다 민족의 위기 가운데 피할길을 내어주셔서 완벽한 승리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 인생의 시험이 다가 올 때, 오늘 본문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하는 것을 믿으며 우리의 자존감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나그네와 같은 우리도 승리하신 하나님으로인하여 잔치로 부름을 받은 예배자라는 것을 기억하길 소망합니다. 내 직장, 가정… 모든 것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어도 그곳에서도 우리는 승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