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은혜는 흐른다
Notes
Transcript
<서광고등부>
창세기 32:24-30
“그래도 은혜는 흐른다”
2019. 5. 1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말씀은 야곱이 이름이 바뀌게 된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저저번주에 야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었는데, 그때 야곱의 이름이 무슨 뜻이라고 했었죠? 사기꾼, 속이는 자, 빼앗는 자. 이런 뜻의 이름입니다.
야곱은 그 이름처럼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속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기꾼이었죠. 형에게서 장자권을 뺏기 위해서 계획을 꾸미고 상황을 설계해서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가져와버리잖아요. 또 나중에는 형으로도 모자라서 아버지까지 속이고 축복을 가로채는 엄청난 사기를 벌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기행각을 벌인 야곱은 결국에 형의 손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치밀한 사기꾼이었던 야곱은 분명히 자신의 형이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을 죽이려고 날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단 한 번 주어지는 아버지의 축복이 형에게 가버린다면 영원히 축복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야곱은 성공적으로 축복을 빼앗을 수 있었고, 그래서 형의 분노를 피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며칠 동안 외삼촌 집에 피신해 있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의 집에 도착을 하게 되었는데, 외삼촌에게는 딸이 둘 있었어요. 언니는 레아, 동생은 라헬이었는데, 그 중에 동생인 라헬을 보고 야곱이 한눈에 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에게 딜을 합니다. “외삼촌, 제가 7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일할 테니까 7년 뒤에 작은 딸 라헬을 저에게 아내로 주세요.” 이렇게 딜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외삼촌이 “그래, 그러자.” 하고 같이 딜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원래는 며칠 동안만 와 있으려고 했는데, 무려 7년이나 거기에 머물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제 7년이 지나서 야곱이 외삼촌에게 약속대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대로 잘 신혼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보니까 야곱 옆에 있는 사람이 라헬이 아니라, 언니인 레아가 있는 거예요.
야곱은 당연히 라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레아였던 거예요. 야곱이 속은 거죠. 사기꾼이 사기를 당한 거예요. 황당한 일이죠. 형에게 사기를 치고, 아버지에게도 사기를 쳤던 사기꾼이 거꾸로 자기가 사기를 당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니까 외삼촌에게 가서 따졌습니다. “외삼촌, 내가 7년을 당신을 위해 섬겼는데, 어떻게 이렇게 속일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라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변명을 하였는데, 그럴싸하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습이 있죠. 요새는 거의 안 그러지만, 형이 먼저 장가를 가야 동생도 장가를 갈 수 있는 이런 문화가 있어요. 동생이 장가를 가려고 해도 형이 아직 장가를 안 갔으면 기다려야 되는 거죠.
라반이 사는 동네에도 진짜로 이런 풍습이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라반이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야곱은 라반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뒤에 라헬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 대가로 다시 또 7년을 외삼촌 밑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총 14년을 일을 한 거예요.
그래도 그 14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이 지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아내와 또 두 아내가 데려 온 두 명의 시녀를 통해 많은 자녀를 낳아서 큰 가족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들과 사랑하는 아이들, 14년이라는 시간동안 야곱은 이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14년으로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6년을 더 라반의 집에 머물게 됩니다. 14년은 아내들로 인해서 머물렀다면, 그 뒤에 6년은 품삯을 받기 위해 머물렀습니다.
야곱이 가족은 생겼는데 아직 재산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6년을 일했습니다. 라반의 양떼를 돌봐주는 일을 하면서 그 동안에 몸에 점이 있거나 얼룩이 있는 양들을 자기가 갖겠다는 계약을 하고, 열심히 양떼를 돌봤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있는 동안에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였기 때문에 양떼를 돌보는 일 역시도 술술 풀려서 순식간에 양떼가 몇 배로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점이 있고 얼룩이 있는 양도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6년 만에 수많은 양들을 품삯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곱은 사랑하는 가족과 엄청난 양의 재산을 모두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라반의 아들들과 불화가 생겨났습니다. 야곱이 자신들이 받을 유산을 다 빼앗아 갔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라반을 보니까 라반 표정이 별로 안 좋아요. 약속대로 얼룩덜룩한 못생긴 가축들만 가져갔는데도 자기 것을 빼았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안 좋은 거죠.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31장 3절인데요.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제 떠나왔던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계획하였던 며칠이 아니라 14년을 머물렀고, 또 6년을 더해서 총 20년을 살았던 라반의 집, 이 하란 땅에서 이제 그만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고향으로, 가족들과 모든 재산을 가지고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명령대로 모든 것을 이끌고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가라고 하니까 가기는 가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혹시 아직도 형이 화가 안 풀렸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여전히 야곱에게 있었던 거죠.
20년이나 흘렀음에도 형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는 거예요. 20년이면 잊혀질 법도 한데, 야곱은 여전히 그날의 형의 분노와 그 화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20년간 형이 나타나 자신을 죽이는 내용의 악몽을 계속 꿨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야 어쨌든, 야곱은 섣불리 형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심부름꾼들을 먼저 형에게 보냈습니다. 동생 야곱이 당신의 종으로서 은혜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전달하도록 심부름꾼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심부름꾼이 돌아와서 야곱에게 에서의 반응을 들려주었는데, 그것은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려고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야곱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니, 형이 왜 사백 명이나 거느리고 오지? 그 사백 명으로 뭘 하려고? 혹시 우리 가족을 다 죽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다시 다른 수를 냅니다. 이번에는 가족과 가축떼를 둘로 나누어서 한 진영이 먼저 가고, 만약에 이들이 공격을 당하면 뒤에 남은 한 진영은 도망치도록 한 겁니다. 그리고 이것으로는 안심이 안 되어서 암염소 이백 마리, 숫염소 이십 마리, 암양 이백 마리, 숫양 이십 마리, 어미 낙타 삼십 마리와 그 새끼 낙타, 암소 사십 마리,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이십 마리, 새끼 나귀 열 마리를 택해서 에서에게 보냈습니다. 형이 이 선물을 받고 화가 풀리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서 그들이 얍복강 가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과 가축들과 함께 강을 건너고 난 뒤에 야곱은 혼자서 다시 강을 건너왔습니다. 과연 야곱이 왜 혼자서 돌아왔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아마도 혼자 기도를 하려고 남지 않았을까, 아니면 혼자서 두려운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여러 추측들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야곱은 강을 다시 건너와서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말씀 본문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야곱이 홀로 남았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으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씨름을 하게 되었는지도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정보가 너무 부족해. 성경에 조금만 친절하게 상황 설명이 좀 기록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가 않아요. 갑자기 상황이 바뀌고, 갑자기 전혀 다른 사건이 시작되거든요.
지금도 보면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야곱과 씨름을 하는데, 둘이 다퉈서 씨름을 한 건지, 둘이 내기를 해서 시름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한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갑자기 나타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30절을 보면 야곱이 이렇게 고백을 하거든요.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자기가 방금 만난 사람이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죠. 내가 방금 씨름한 사람이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과 얼굴을 대면하고 씨름을 했는데도 죽지 않았구나! 이렇게 놀라운 감정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야곱은 이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요? 아마도 처음부터 알지는 않았을 겁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시비를 걸었든지, 아니면 어떤 감정적인 문제가 오고 갔었든지 해서 씨름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을 쓰고 기술을 사용해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날이 새기 직전까지 밤 새도록 씨름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야곱도 결코 그냥 질 수는 없었어요.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야곱은 이 별것도 아닌 씨름의 승리를 가져야겠다고 결심을 한 겁니다. 그래서 형에 대한 걱정도 잊어버리고 씨름에 몰두했습니다. 어떻게서든 이겨야겠다. 이 승리에 대한 집착으로 야곱은 날이 새도록 상대방을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야곱과 씨름을 하고 있던 사람은 야곱이 도저히 쓰러지지 않자 반칙을 씁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탈골시켜버린 거예요. 좀 더 바람직한 번역으로는 “엉덩이뼈”인데요, 말 그대로 엉덩이뼈를 쳐서 탈골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안 그래도 힘든데 이제는 뼈까지 탈골되는 고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뼈가 탈골되어 버려서 힘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텼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이제 승부를 내는 것을 포기하고 야곱에게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날이 새려고 하니까 이제 그만 나를 보내주라. 이렇게 요청을 한 거예요. 아마도 야곱은 이 말을 듣고 나서 이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날이 새든 말든 상관 없이 계속 씨름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댔을 겁니다. 힘이 드니 이제 그만하자, 라든지, 아니면 배가 고프니 그만하자, 라든지. 이런 인간적인 말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날이 새려 하니 나를 가게 해주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날이 새면 얼굴이 드러나고, 얼굴이 드러나면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보면 죽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날이 새기 전에 가려고 하신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게 붙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야곱에게 있어서 이 기회는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끈질기게 축복을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해가 뜨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목숨을 걸고 축복을 해달라고 조른 거예요.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을 해주기 위해서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축복은 반드시 축복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알아야만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얼른 자신의 이름을 대답했습니다. 자기 이름에 축복을 해달라고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굳이 야곱의 이름을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다 알고 계신데. 뭐 하러 물어보겠어요? 그것은 하나님께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의도는 바로 야곱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의 뜻은 사기꾼이죠. 야곱이 자기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고백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야곱입니다. 나는 속이는 자이고, 사기꾼이고, 빼앗는 자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고백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 대답을 들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28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축복을 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엄청난 일을 하신 거예요. 한 사람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꿔버리신 겁니다.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꾸신 것은, 사기꾼의 본성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의로운 사람으로 바꾸신 것과 같은 사건인 것입니다.
야곱은 실제로 하나님을 이긴 것은 아니었어요. 이기지도 않고 지지도 않은 상태로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야곱이 이겼다고 하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감히 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한낱 피조물이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에게 자신이 졌다는 말을 하신 겁니다. 그것도 사기꾼에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스스로를 낮추시고 굽히시면서까지 자신의 백성을 높여주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기나 치고 남을 속이며, 어떻게든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수를 쓰는 자에게 기꺼이 져주시고 그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그래도 은혜는 흐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어떤 불의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와 씨름하시며 날이 새도록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또 쉽게 씨름을 포기하고 돌아서더라도 하나님은 또다시 찾아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기를 바라십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려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내가 잘되고 싶은 축복, 이러한 것만을 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꺼이 그 모든 것을 가만히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새는 그때에 우리가 구한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은혜입니다.
그 어떤 복보다 귀하고 값진 은혜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또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 받게 됩니다.
세상에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이 은혜가, 우리 안에 흐르고 있습니다. 예배를 빠져도, 친구랑 싸워도, 여전히 은혜는 흐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놓아버려도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그 은혜를 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주 앞에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과 마주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큰 민족을 이루고 믿음의 조상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이름으로 불려지며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