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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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요한복음 11:23-26
“다시 살아나리라”
2019. 4. 21
조 정 수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하신 은혜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이 무슨 날이죠? 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기쁜 날이고. 또한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입니다. 죽으신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와 같이 호흡하고 살아 역사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오늘은 예수님께서 진정한 부활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신 말씀을 설교 주제로 잡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나사로의 죽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11장 1절을 보면, 이 나사로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1장 1절에 의하면, 나사로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2절을 보면, 1절에서 언급된 마리아가 소개됩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사람이고, 나사로가 바로 이 마리아의 오빠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오빠 나사로, 둘째 마르다, 막내 마리아. 이렇게 세 남매가 한 가족이었고, 그들이 한 마을에 함께 살고 있었다, 라는 것이죠. 과연 이들이 언제 어디서 처음 예수님을 만났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들을 사랑하셨고 매우 아끼셨다는 사실입니다.
3절을 보면 나사로의 여동생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소식을 전달하는데,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고 전달하게 합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나사로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죠. 5절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마르다와 그 동생 마리아와 오빠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들은 예수님과 이미 많은 시간을 보내며 교제를 나누고 또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많은 가르침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르다와 마리아는 서슴없이 나사로를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말할 수 있었고, 또 예수님이 여기에 오신다면 반드시 오빠를 치유해주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목격하였을 수많은 이적과 표적들을 통해 세 남매는 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었고, 그 능력이 나사로에게도 전해져서 병이 깨끗이 나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 때문에 곧 죽게 되었다는 말씀을 들으시고도 서둘러 나사로에게 가시기는커녕 오히려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셨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다는데, 당연히 한달음에 달려가야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이틀을 지체하셨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예수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데, 예수님이 여유를 부리시네? 아~ 나사로의 병이 그렇게 심각한 병이 아닌가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17절을 봐보세요. 뭐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이틀을 지체한 후에 나사로에게 와봤더니 이미 나사로가 죽어 있는 거예요. 그것도 4일 전에.
그런데 이 4일이라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 보면, 하루와 이틀과 하루로 나누어집니다. 나사로의 소식을 전달할 사람이 예수님께 오는데 하루, 그 소식을 듣고 지체한 시간 이틀,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가시는데 걸린 시간 하루. 이렇게 4일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계산대로라면, 나사로가 이미 언제 죽은 거예요? 나사로의 소식을 전달할 사람이 나사로의 집에서 출발한 직후에 이미 나사로가 죽은 거죠.
나사로가 이미 죽어 있는데,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말을 전달한 거예요.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그 말을 전해들을 때 나사로가 죽었다는 것을 아셨을까요~ 아셨을까요?
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틀을 더 지체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놀랍게도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봐볼까요? 23절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도착해서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죠?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나 지났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마르다는 진실로 이 말씀처럼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마르다가 이렇게 대답을 해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이런 말이 조건부로 붙어 있어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긴 살아날 건데, 언제 살아날 거라는 거예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러니까 지금 마르다는 나사로가 바로 지금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흔히 “종말”이라 부르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르다가 갖고 있는 이 믿음은 모든 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종말 사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그 날에 이스라엘의 모든 적들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세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위대한 나라로 우뚝 서서 온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종말 사상이었어요. 물론 이 사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두개인들이 있는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마르다 역시도 부활을 믿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나사로가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게 되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흘 이라는 시간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가 되었죠. 이 나사로의 죽음 사건에서 나흘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39절을 같이 봐볼까요? 3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 39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옆으로 옮기라고 하시니까 마르다가 예수님을 말렸죠. 이미 시간이 나흘이 지나서 시체가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데 왜 무덤을 열려고 하십니까? 이런 내용의 말씀이에요.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이는 장면이죠.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려고 하시는데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마르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예수님을 말리는 하나의 해프닝.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유대인들의 부활 신앙을 안다면 이 장면은 어쩌면 이 나사로의 사건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나흘이라는 시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부활 신앙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떠난 영혼이 3일 동안 그 시체 주위를 맴돈다고 합니다. 시체 곁에서 맴돌다가 다시 시체 속으로 영혼이 들어가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사흘이 지나서 나흘째가 되면 시체가 부패하여 얼굴이 검게 변하게 되고, 그것을 본 영혼은 영원히 떠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이미 나흘째가 되었기 때문에 이미 나사로의 영혼이 떠나가버렸고, 그래서 지금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나중에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르다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도 똑같이 생각했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조문객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철저히 무너트리셨습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리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마지막 날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사로가 부활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25절과 26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부활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죽어도 살아나는 부활이 되시며, 살아서 믿는 자에게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부활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진리를 잘못된 부활 신앙을 갖고 있던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가르치시기 위해서, 또한 제자들과 다른 모든 유대인들에게 가르치시고 그들 모두가 참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틀을 지체하시고, 나흘째 되는 날에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오신 것입니다.
참으로 나사로는 죽었으나 죽음이 그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권세가 그를 잠시 손에 넣었지만, 나흘만에 빼앗겨야 했습니다. 부활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음에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나사로에게 걸린 병은 나사로를 죽음에 완전히 넘겨주는 병이 아니라, 이 잠깐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위대한 표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는 놀라운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 안에서 우리도 나사로와 같이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며,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어려움과 고난이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마치 죽은 지 나흘째를 맞이한 유대인들처럼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완전한 절망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음만 잃지 않고 지킨다면,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믿으십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 “다시 살아나리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는다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를 쓰러트리고 좌절시키고 절망케 하는 모든 고난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다시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다시 소망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인하여, 우리가 영원한 죽음에 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 기쁨의 날에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우고 영원한 천국의 백성으로서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