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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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창세기 11:1-9
“흩어지다”
19. 3. 24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기 위해서 탑을 쌓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언어가 달라지고 서로 세상 곳곳으로 흩어지게 된 역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가 일어났고, 홍수가 마른 후에는 노아의 아들들이 자손을 낳아 그 자손들이 나라를 이루고 온 땅에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라고 하신 명령을 착실하게 수행한 것입니다. 창세기 9장 1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이 세 아드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의 세 아들이 낳은 자손들이 온 땅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뒤에 10장 5절을 보면,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냥 사람들만 온 땅으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언어도 사는 지역에 따라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각 나라와 족속에 따라서 언어도 천차만별로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자손들이 사방으로 퍼져서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갑자기 온 땅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이 되어 버린 거예요. 왜? 어떻게? 수많은 언어가 다 사라지고 갑자기 하나의 언어만 남게 된 것일까요?
    성경에는 왜 갑자기 언어가 하나만 남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온 땅에 흩어져 사는 것보다 함께 모여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점차 무리를 짓게 되었고, 서로 소통하기 위해 하나의 언어로 통일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였다고 한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도 크게 상충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수가 모여 있으면 자기 목숨을 더 잘 보호할 수도 있고, 결혼할 짝을 찾기에도 더 쉬우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에도 더 적절한 듯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었을 때 이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한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했을까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을까요? 아닙니다.
    이들은 살고 있던 곳에서 동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하나님이 온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명령에 따라서 사방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다같이 동방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입니다. 다같이 짐을 짊어지고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에서 정착했습니다.
    정착하고 나서는 무엇을 했을까요? 오늘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도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이들은 서로 말하였습니다. 옆 사람과 말하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말하고, 밥 먹는 사람과 말하고.. 이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들 중에는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여기서 다같이 뭉쳐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명령대로 온 땅에 흩어져서 살아야 한다고, 이런 말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서로 말하였기 때문이죠. 누구 한 사람 하나님께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뭔지 아는 사람도 없는 이 세대는 자기들끼리 서로 말하여서 한 가지 의견을 냈고, 그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벽돌을 만들어서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되는 일이죠. 아니, 반대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악을 벌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벽돌도 진흙으로 만든 약한 벽돌이 아니라, 역청으로 만들어서 돌을 대신할 정도로 단단한 벽돌을 만들자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언어로 살다 보니까 벽돌을 만드는 법도 금방 개발이 됐는가 보죠. 그런데 그런 좋은 환경에서 조금만 선한 방향으로 생각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서로가 가진 지식이 쉽게 공유되고, 기술과 노하우도 간편하게 나눌 수 있는 이런 좋은 환경에서 왜 이들은 하필이면 벽돌을 구워서 탑을 쌓는 일에 삘이 꽂힌 걸까요? 
    4절에 보면, 이들이 두 가지 이유로 탑을 건설하기로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이름을 내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이들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아서 하늘의 권위를 손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오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기 위해서 선악과를 먹었던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기를 원했다면, 지금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하였습니다. 이름을 낸다는 말은 그들의 이름을 세상의 모든 만물이 알게 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나아가서 이름이 숭배받기를 원하는 욕망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이 세상에서 높임 받아야 함에도 이들은 감히 하늘에 닿을 만한 탑을 쌓아 그 권위를 탈취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거의 성공할 듯이 보였습니다. 그들이 굽는 벽돌은 견고하였고, 어떤 건축술을 가졌는지 그들의 탑은 아주 튼튼하게 세워졌습니다. 6절에 보면, 하나님도 이들의 실력을 보고 놀라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염려하실 정도로 이들의 기술과 능력은 급진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기술도 공유하고, 지식도 공유하면서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하나의 언어로 그렇게 좋은 것만 공유가 된 것은 아니었어요.
    또 무엇이 공유되었을까요? 바로 죄가 공유되었습니다. 온갖 사람이 말하는 죄가 필터링 없이 귀에 들려왔습니다. 옆 사람이 욕하는 얘기, 앞 사람이 도둑질 한 얘기,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사람이 친구랑 싸운 얘기, 누가 누구를 때린 얘기, 사기 친 얘기. 이런 죄가 하나의 언어로 이곳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서로 말한다면 과연 선한 말이 나올까요? 3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 환경에서는 그들이 서로 하는 말에는 오직 자기들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말이 흘러나올 뿐입니다. 벽돌을 구워서 높은 탑을 쌓자. 우리의 이름이 하늘만큼 높아지도록.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도록.
    하나님은 분명히 온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명령을 정통으로 거역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뭉쳐서 현재의 안정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죄가 더욱 발전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고 오직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 데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뭉쳐 있으니 그 도시에 어떤 선한 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대로 두고 본다면, 더욱 더 죄가 발전하고 타락하는 일만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도저히 이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의 죄를 씻어낼 가장 좋은 방법은 분명 노아의 때에 하셨던 것처럼, 홍수로 쓸어버리는 것일 것입니다. 죄가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처음부터 다시 사람이 번성하게 하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홍수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홍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하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이 더 이상 악한 생각을 공유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오직 악한 일만 말하며 의논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바벨의 주민들도 누가 하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는 모든 말들이 다 악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악함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셨고, 그 생각대로 행동하셨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잘 따르던 때처럼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온 땅에 퍼져서 살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셨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질병에 걸리는 심판도 아니었고, 흉년이 드는 심판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이 가진 언어를 혼잡하게 해서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도시와 탑을 쌓던 것을 중단하고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터를 잡아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하늘에 닿을 듯한 웅장한 탑을 쌓을 기술과 엄청난 노동력이 상실되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의 언어로 통일된 채 바른말 하는 이 하나 없이 오직 악한 말만 서로 말하다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던 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언어가 혼잡하게 도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로 물든 곳에서 속히 벗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흩어지라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서는 하나의 언어가 존재합니다. 불평, 불만, 원망의 언어만이 그곳에 가득합니다. 그곳에는 회개가 없고 찬양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아름다운 언어가 없습니다. 있는 것이라고는 원망하는 말과 남을 헐뜯는 말과 조롱하는 말과 속이는 말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곳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회개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선한 언어로 충분히 오해를 덮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의 자리에서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옮기시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사는 집을 옮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어떤 공동체를 그냥 막 탈퇴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것을 떨쳐내라는 것입니다. 나를 교만하게 만들고 나를 그리스도인의 자세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을 끊어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드라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게임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겠죠. 특히 친구를 우리 신앙 때문에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친구를 전도해버리면 됩니다.
    내가 사용하는 그리스도의 언어를 그 친구도 말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염려하셨던 악한 언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언어를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모든 공동체가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바벨과는 달리 선한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서로 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벨의 주민들은 악한 언어를 가지고 스스로 높아지기 위하여 탑을 쌓았지만, 우리는 선한 언어로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우리가 높이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높이 세우실 것입니다. 하늘문을 열어 우리를 영접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의 언어를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언어는 곧 사랑의 언어입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며, 용서와 위로를 건네고 용기를 주며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언어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말만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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