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는 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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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창세기 26:1-5
“복 받는 자 누구인가?”
2019. 4. 28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말씀은 이삭이 아브라함에 이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에 대한 약속을 받는 장면에 대한 내용입니다. 과거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모리아 산 위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창세기 22장 말씀인데요. 창세기 22장 17절, 1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독자까지도 아끼지 않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데, 그 복은 아브라함이 자기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또한 천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을 전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아브라함 한 사람만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걸로 끝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 아들의 아들의 아들.. 후대로 계속해서 복이 이어져서 점점 자손이 늘어나고 확장되어서 마침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복을 받았지만, 그 복이 가만히 머물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이어져 내려갑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들뿐만이 아니라, 18절에 뭐라고 하셨어요?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거죠. 아브라함 너만 받는 것도 아니고, 너네 식구들만 받는 것도 아니고, 천하 만민이, 세상의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1절에 “또 흉년이 들어서” 이삭이 그랄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흉년이 들었다” 첫번째 흉년이 언제였죠? 아브라함 때 흉년이 있었어요. 창세기 12장 10절에 기록된 내용인데요. 12장 1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내용의 배경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모든 소유를 이끌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가 남쪽으로 더 이동하던 중에 아브람이 머물던 땅에 기근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아예 더 남쪽,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오늘 본문인 26장 1절의 장면과 오버랩 되죠. 아브라함 때 흉년이 들었던 것처럼 또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삭이 머물고 있는 땅에 말이죠. 그래서 이삭이 거주지를 옮기게 됩니다. 어디로 갔는가 하면, 그랄로 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누구를 만났어요?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예요? 아비멜렉. 창세기 20장에 이 사람이 처음 등장합니다. 20장을 한번 볼까요? 20장 1절, 2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아비멜렉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아브라함에게서 사라를 데려갔죠.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잃을까봐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말해서 아내를 넘겨주고 목숨을 부지했어요. 물론 사라가 여동생인 건 맞아요. 이복 여동생이거든요. 당시는 부족 사회이기 때문에 근친결혼이 자연스러웠어요. 그래서 배 다른 남매였지만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고 부부가 되었어요. 아무리 자기 목숨 구하려고 한다지만 어떻게 아내를 넘겨줘버릴 수가 있을까요? 
    이것은 아무리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의 두려움에 꺾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위기의 순간이나 어떤 특수한 상황이 닥치면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행동하고 세상의 일반적인 방법대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자 미리 약속한 대로 사라를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믿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 거죠. 또 이것은 당시에 큰 부족에서 떨어져서 살아가던 소수부족의 생존방식이었습니다. 여자를 넘겨줌으로써 부족은 살아남는 거예요. 이런 세상의 방식대로 아브라함이 행동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이라고 하는 큰 권력자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도 잊어버리고 비겁한 행동을 해버린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이 나타나 사라를 아비멜렉의 손에서 건지시고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잘못을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거예요. 아브라함도 실수할 수밖에 없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큰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큰 실수든 작은 실수든, 살아가면서 한번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사람이기 때문에. 만약에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잘못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죠. 
    딱 한 사람,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에요. 죄가 없음에도 세상 죄를 지가 가신 어린양 예수님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를 짓지 않은 분이었어요. 
    예수님이 아닌 이상, 사람은 결국 죄를 짓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보면 그것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 비겁한 행동.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넘겨주는 이 사건을 성경은 버젓이 기록을 해놓았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20장에서 아비멜렉에게 넘겨준 것은 사실 두 번째였어요. 12장에서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옮겨 갔을 때 먼저 똑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에게 아내를 넘겨 준 거예요. 그때 한 번 넘겨줬었는데, 20장에서 또 넘겨준 거예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한 번의 사건으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아브라함의 모습이예요.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여전히 하나님이 기대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축복을 꺾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너의 자손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로 인해 정말로 아브라함은 진정한 믿음을 보이게 되는데, 그 믿음의 증거로서 자신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엄청난 순종을 보여주게 됩니다. 두 번이나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였던 아브라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신 결과 진정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에게 주시는 축복 역시도 이와 같습니다. 이삭이 어떤 위대한 믿음이 있든지, 아니면 어떤 비겁한 모습이 있든지 상관 없이 하나님은 그저 축복을 내려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이삭 네가 받은 축복이 네가 잘나서 받은 것도 아니고, 네가 큰 믿음을 갖고 있어서도 아니라, 단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 말에 잘 순종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들어서 번제로 바칠 때, 사실 이삭이 보여준 믿음과 순종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칼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서 내려오던 그 순간에도 이삭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내가 죽기를 바라시니 기꺼이 목숨을 내어드리겠다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런 위대한 순종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삭 너의 순종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순종 때문에 축복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의 순종과 믿음이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미 완전한 순종을 보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그때 한 순간 뿐이었고, 여전히 이삭 안에 있는 죄성이 이삭을 실수하게 만들고 잘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밑에 7절을 보면 이삭이 과거 아브라함이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참으로 아이러니하죠. 아브라함이 먼저 아내를 여동생이라 말해서 자기 목숨을 연명하는 잘못을 저질렀었지만, 이후에 아브라함은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 됨으로 인해서 자기 아들인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무사히 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축복을 받은 이삭은 아브라함과 똑같은 실수를 그대로 저지르고 있어요. 마치 피는 못 속인다는 듯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짓을 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아주 사소한 잘못에서 아주 큰 잘못에 이르기까지, 몰래 쓰레기를 버리거나 횡단보도 신호를 어기고 건너는 이런 작은 잘못에서부터 사람도 때리고 한 번 더 때리는 이런 범죄에 이르기까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정말 나는 죄가 없다 하시는 분이 있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이 아니거나, 예수님이거나.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은 안 계신 것 같아요. 그리고 몬스터도 없는 것 같애요. 다들 사람이시네요. 
    죄인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하나님의 커다란 축복을 받아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우리 모두 사람들이에요.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예수님을 처음 만나게 된 순간이 있죠. 그 전까지는 세상에 예수가 어딨어? 진화론이 맞지 무슨 창조론이야? 하면서 믿지 않던 내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격과 가슴 벅찬 감동을 통하여 정말로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고,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예수님과의 그 만남. 그때의 그 감격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간절히 나도 예수님과의 그 뜨거운 만남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때의 그 감격, 그때 가졌던 첫사랑을 저와 여러분이 꼭 체험하고,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때로는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삭이 보여준 모리아 산에서의 그 순종이 단지 그 한 순간으로 끝나고 후에는 실망스러운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며 비겁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를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별로 큰 믿음도 없고, 그나마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없는 나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기대를 갖고 계시고 소망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주님을 만나는 감격이 여러분에게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순종의 사람으로 거듭나 오늘 본문 4절의 말씀처럼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는 복의 근원이 되고 복의 전달자가 되어 나와 나의 가족과 나의 교회와 나의 모든 공동체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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