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서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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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고등부>
창세기 22:1-14
“믿음에서 믿음으로”
2019. 4. 7
조 정 수
    오늘 말씀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고,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왜 아브라함에게 그런 일을 시키셨을까요? 1절을 보면, 그 이유가 뭐예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그런 명령을 하신 거예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네가 사랑하는 너의 아들, 너의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는 거예요. 
    레위기에 보면 번제를 어떻게 드리는 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번제. 레위기 1장 6절을 보면 제물을 죽이고 그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라고 나와 있어요. 여기서 각을 뜬다는 말은 조각으로 자른다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토막을 낸다는 거죠. 그리고 9절에는 물에 씻어서 그 시체를 다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된다, 라고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번제는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토막을 내서 또 물에 씻어서 제단 위에 올려서 불에 태우는 것. 이게 번제입니다.
    너무나 잔인하죠. 동물을 이렇게 끔찍하게 죽여서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동물로 번제를 드리는 것도 이렇게 끔찍한데, 사람으로 그것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죠. 이 잔인한 일을 하도록 강요당한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100살이 돼서야 마침내 아들을 얻었는데, 그 귀하고 소중한 아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슬픔과 충격과 고통을 이겨내고 정말로 아들을 그렇게 번제로 드리기 위해 아침 일찍 떠났어요. 3절을 보면 아침 일찍 나귀와 두 종과 이삭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집에서 출발한 지 3일이 지났을 때 목적지인 모리아 산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우리가 가서 예배하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을 해요. 이상하죠. 이미 이삭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으면서 이삭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내가 이삭과 함께 돌아올 것이라고 말을 했을까요? 혹시 이삭을 진짜로 죽일 생각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진짜 이삭을 죽게 하시겠냐?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여러분, 왜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그렇게 말했을까요? 히브리서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8절,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브리서 18절, 19절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뭐라고 생각했다고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는 거죠. 내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실 거야. 이런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셨거든요. 내가 아브라함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할 것인데, 그 일이 바로 이삭을 통하여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어요. 아브라함 너의 자손이 이삭을 통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려면 이삭이 지금 죽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이삭이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면서 많은 자녀를 낳아야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겠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종에는 ‘내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할 때 분명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삭을 살려주실 거야’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삭이 죽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이삭이 죽더라도 이삭을 말씀이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삭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삭을 다시 살리시리라는 믿음,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19절 말씀 후반부를 다시 보면,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을 죽은 자로 비유하고 있죠. 비록 이삭이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죽은 자와 다름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머릿속에서, 그의 마음속에서 이미 이삭은 죽어있었습니다. 
    단지 비유로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이미 이삭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완전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이삭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정말 불가사의할 정도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아무리 부활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아들을 그렇게 번제로 바칠 수 있을까? 칼로 찌르고 불에 태워버리는 그런 끔찍한 일을 어떻게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을까? 
    정말 순도 100%의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보는 이 사건은 언뜻 보면 아브라함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바로 이삭이 진짜 주인공이에요. 
    우리는 흔히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만 하는 아브라함의 가슴 아픈 스토리에 집중하는데, 그보다도 우리는 이삭에게 집중을 해야 돼요.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아침 일찍 아빠랑 함께 예배를 드리러 길을 떠나는 것이 이삭에게는 마치 소풍을 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배고프면 길가에 앉아서 도시락도 먹고, 밤이 되면 야영도 하고. 하늘의 별을 세다가 잠들고,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고.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이삭은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삼일째 되는 날에 아빠가 종들에게 여기 남아 있으라고 하더니 둘이서만 산에 올라가자고 그래요. 번제를 드릴 때 불을 피울 나무를 이삭이 지게 하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둘이서 모리아 산을 향해 가는 거죠.
    근데 둘이서 가다 보니까 이삭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7절을 보면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상하잖아요.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왜 정작 번제를 드릴 제물은 없는 걸까? 
    그러니까 8절에 아브라함이 대답하죠.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 준비하실 거니까 우리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삭은 아무런 의심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모리아 산을 올라갔어요. 아브라함은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이삭은 등에 나무를 지고. 
    이렇게 모리아 산을 올라가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브라함이 정상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알려주신 곳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삭이 지고 온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줄로 묶어서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놨어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죠. 어떻게 이럴 수가. 이때 이삭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여김을 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아무런 걱정근심 없이 해맑게 자랐을 거예요. 아버지는 항상 이삭에게 “하나님이 너를 통하여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거야.” 라고 꿈을 심어줬을 것입니다. 그랬던 아버진데, 갑자기 나를 묶고 제단 위에 올리는 거예요. 이게 뭐지? 응? 왐마, 나를 묶어뿌네! 처음엔 상황파악이 안 되다가 곧바로 깨닫게 되는 거죠. “아니, 하나님이 번제물을 준비하신다고 하드만, 내가 번제물이었구마!”
    꽝! 하고 머리에 충격이 오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찾아온 그 충격과 슬픔과 좌절이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을까. 그렇게나 나를 사랑하던 아빠가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두렵고 서운했을까.
    그런데 본문을 보면 이삭이 거기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다는 기록이 없어요. 울었다거나, 소리 질렀다거나, 살려달라고 빌었다거나, 몸부림 쳤다거나. 
    만약에 우리였다면 안 죽을라고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난동을 피웠을 텐데, 이삭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순순히 자기에게 주어진 죽음을 받아들였어요. 내가 죽는 것을 아버지가 원하시는구나. 그렇게, 그저 받아들였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듯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오늘 제목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이삭의 믿음으로 그 불씨가 전달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아버지에 대한 완전한 순종은 거울에 비춘 것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엇을 나에게 요구하든 그것을 나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나무를 지고 모리아 산을 올랐던 것처럼, 나무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예수님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바울이 예수님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죽음을 바라시기에 기꺼이 목숨을 내어드리는 위대한 복종이었습니다. 
    이삭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나를 죽여야만 하는, 죽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에, 칼을 찌르는 그 순간에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 지극한 슬픔이 담겨 있는 것을 보았기에, 기꺼이 그분의 뜻대로 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던 것처럼, 이삭도 살고자 하는 내 원대로가 아니라 나를 죽이시려는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라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삭을 향하여 칼을 지르던 아브라함과 이삭은 참으로 이 순간 이삭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아직 칼이 이삭의 몸에 닿지도 않았지만 찌르는 아브라함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이삭이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은 죽은 자였고, 이삭 역시도 자신을 죽은 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삭을 칼끝에서 구원하셨고, 그로 인해 이삭은 몸의 상함 없이 제단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는 이미 죽어있었고, 그가 하나님의 손으로 건짐을 받은 그 순간에 그는 부활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을 이루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비록 그것이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지워주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나를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물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살아감으로써 우리가 가진 믿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 믿음에서 믿음으로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모든 인생의 여정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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