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기뻐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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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민수기 23:1-30
“혹시 기뻐하실까?”
2019. 3. 26
조 정 수
    오늘 본문인 민수기 23장은 지난 22장에 곧바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유명한 점술가인 발람을 초빙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발람에게 경고하셔서 발람이 모압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다시 모압 왕 발락이 더 높은 고관들을 보내서 발람이 와 줄 것을 청하였고,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뜻을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내가 하라고 하는 말만 한다는 조건 하에 발람을 모압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밤에는 가라고 허락하신 하나님이 날이 밝고 출발을 하려고 하니까 발람이 가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22장 2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발람이 가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발람의 길을 막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진노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말씀만 해야겠다는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룻밤새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조금만 함께 곁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를 초청한 사람들의 비위를 살짝 맞춰주고 큰 대가를 얻기 위해서 말이죠. 이 변질된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다시 한 번 강력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린 발람은 헛된 생각을 버리고 고관들과 함께 길을 가서 모압 왕 발락을 만나게 됩니다. 발락은 발람에게 아주 극진한 대접을 해줬습니다. 발락으로서는 어떻게든 발람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점괘를 말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발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하게 대접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발람은 그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예언을 합니다. 이스라엘 진영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바알의 산당에 발락과 함께 오른 발람은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처럼,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에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그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그런 발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발람의 예언을 통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부터 10절까지 말씀인데요, 이 예언의 핵심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이 저주 받을 민족이 아니라 복을 받은 민족이다, 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아멘. 여기서 야곱의 티끌은 창세기 28장 14절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나온 말입니다. 
    티끌과 같이 많은 이스라엘 자손을 누가 능히 셀 수 있을 것이며, 그 사분의 일만이라도 누가 셀 수 있을 것이냐, 라고 발람이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은 여기서 저주 받아서 망할 민족이 아니라 그 사분의 일도 제대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융성할 복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복이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이방 민족에게 한 점술가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돌보시는 특별한 민족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게 소개될 때 그런 복된 사람들로 소개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정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다!” “이 사람을 보면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말로 소개될 수 있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을 계속 살펴보면 발람의 예언을 싫어한 발락이 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발람을 데리고 장소를 옮겨서 비스가 산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의 진영이 끝부분만 겨우 보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이 이스라엘의 진영을 보고 하도 그 백성의 숫자가 많으니까 겁을 먹어서 그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했던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 진영이 끝부분만 조금 보이는 곳으로 발람을 데려간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전과 다른 예언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곳에 다시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찐~하게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발락으로서는 아주 기가 막히는 상황이죠. 그래서 25절에 보면 발락이 화가 나서 발람에게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고 말을 합니다. 축복만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냥 저주도 하지 말아라, 더는 예언하지 말고 아무 소리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발락이 어떻게 합니까?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부탁합니다.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또 하라고 해요. 그러면서 무슨 말을 덧붙이죠? 27절 후반에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을 모르는 발락이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혹시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을 합니다. 발람이 자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 말할 수 있다고 하니까 발락이 이제는 하나님 편에 희망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마음을 바꿔서 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기뻐하신다면 저주의 말씀을 발람에게 주시지 않을까. 이런 헛된 기대를 품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흔히 떠올리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에 한번 정하신 뜻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뜻을 세우셨다면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야곱에게 베푸신 복을 오늘 우리에게도 베푸시며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하고 형통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복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우리를 통하여 가족과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동일한 복을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신실한 삶을 살아낼 때,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놓지 않으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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